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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pr 04. 2024

인간과 함께해도 외롭다.

채우지 못한 ‘행복의 빈자리’ 동료


모든것이 만족스러움 같은데 녀석에게 채워지지 않는 마지막 한가지는 바로 동종의 동료 친구다. 공간의 여유가 있는집에선 두마리 이상 같이 키우면 된다. 중성화 당한것도 안쓰러운데 친구마저 없으면 생존은 보장 될지라도 완벽한 행복조건을 다 충족 시켰다고는 할수 없다. 그것은 녀석의 행동을 보면 확실해 진다.


나이 먹어 처음 접하는 외부세상에서 녀석은 길양이들에게 왕따다. 중성화를 시키고 집안에 고립된 집양이의 경우 오래는 살지언정 성묘가 돼도 사회성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반면 인간의 손길이 닿지않는 야생 길양이 들은 6개월만 되도 아무 이성이나 이리저리 붙어서 새끼가 새끼를 낳으며 2-3년 짧은 순환 주기를 이어간다. 새끼들은 털색으로 족보를 가늠할수 밖에 없다. 둘다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밤중에도 현관문 앞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망부석 놀이 녀석도 길양이들이 내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전 기록을 보니 3년전 동거했던 녀석의 친구가 이녀석인데 수명을 다해 장례식 치루고 지금은 없다. 녀석처럼 길양 출신이 아닌 페르시안으로 만화같이 생겼다..


녀석의 본능이 슬슬 동종에 대한 호기심과 외로움으로 드러난다. 동료와 함께 지내다 사별로 떠나 보내고 혼자 남아서 몇년간 해볼수 있는건 전부 경험한 녀석이다. 올 여름 녀석의 마지막 남은 행복의 과제는 다시 동종 ‘친구 사귀기’ 가 될 전망이다. 온통 관심이 그것에 집중돼 한밤중에도 마당에 나가게 해달라고 시위를 한다. 연어같은 특식을 내주어도 별 관심이 없다.


녀석은 조금씩 금단의 선을 넘나들며 가출의 유혹과 규율 사이에서 눈치를 발전시켜 나갈것이다. 제 아무리 학습시킨들 본능을 이길수는 없다. 사고나지 않게끔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실내 들어올땐 먼저 발을 닦는 스크래치 습관이 그렇다.)


가련한 행색 녀석에게 사료대신 별식 꽁치 통조림 까서 먹인다. 그루밍을 포기한것 보면 건강싱태가 극히 안 좋다.목욕이라도 시켜주고 싶지만 녀석이 사람을 피한다.
큰 녀석들은 기싸움을 벌리지만 어린 녀석들은 스쿠르지 영감인 녀석이 다가오면 줄행랑을 친다. 놀자고 다가오는것을 내쫒는다고 생각한다.
겨울내 나와 실내에서 뒹굴며 즐기던 꾹꾹이도 이제는 해도 되는지 눈치보며 한다. 내 팔목대신 이불로.. 익숙치 않은 봄날 야외라는 신세계를 경험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고양이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같이 놀아주는것엔 한계가 명확하다. 새끼는 장난감 하나로 놀림이 충분하지만 성묘는 아니다. 노인에게 인형 안기는 꼴이다. 인간이 마냥 고양이 흉내를 낼수 없음에 녀석이 인간의 취향을 같이 따라줘야 놀아도 재밌는 법이다. (고양이 언어 기본적인거 몇가지는 배웠다. 내가 알려주마 야웅이야웅옹옹)



이 따뜻한 봄날에 녀석이 나와같이 집근처 호숫가 산책이라도 즐기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런 동지적 나눔을 동물과 나누려면 고양이가 아닌 개를 키워야 한다. (개는 반대로 의무적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 사람과 놀기를 좋아해 달라붙는 개들과 달리 고양이는 사람 손길을 피한다. 특히나 낮선곳에 동행 산책등은 질색한다. 집안에서 애교 부린다해서 낮선곳에 데려가 내놓을 경우 겁먹고 달아나 잃어버릴수 있다. 매사 낮선것엔 의심이 많고 겁이 많다.


안정된 공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 생활하는것이 고양이와 동거하는 법이다.  일일히 규제할수 없으므로 자율에 맏기고 녀석이 안정권 구역인 마당을 거닐고 일광욕을 즐기던 뒹굴던 간에 커피한잔과 함께 간섭없이 지켜보는 여유를 누릴수 있다.


너희들 언제 오는거냐..오매불망 길양이들 오기만을 기다리는 녀석. 외부의 호기심 이라는 금단의 선 앞에서 항상 갈등한다. 넘으면 목욕 고문을 당해야함을 알기에..


다른 모든 생존에 관련된 여건들이 충족되고 나면 충족되지 못한 부분에 관심이 집중된다. 녀석에겐 이제 빗질도 관심없고 먹이도 관심없고 오로지 오매불망 마당에 나가 다른 고양이 방문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다. 녀석이 다가가면 길양이는 도망간다. 나처럼 녀석도 사교기술이 없어 방문하는 길양이들 꼬시질 못하는건지 길양이들이 무지해 그런건지 어쨌든 녀석은 고양이들 사이에선 왕따다.


이미 안락한 생활을 아는 녀석은 호기심에 따라갔다가 목욕을 참아내야 하는것 뿐만 아니라 길을 잃을경우 다른 길양이들 처럼 그지꼴이 된다는것을 잘 알기 때문에 금단의 선을 넘을수가 없다. 녀석은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짊어진 숙명적 고양이들의 카르마를 아는거다.


인공지능이 날이 갈수록 일반화 사람들 그림보다 월등한 그림들을 몇초만에 그려낸다.


아침마다 녀석은 침실에서 내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양양 노래하기 시작한다. 들킨거다. ‘너 일어난거 다 알어! 나 밤새 외로웠다옹 마당 나가놀게 빨랑 나와서 문을 열란 말이야옹’ 그런 다그침이다. 이전까진 빨랑 일어나 빗질해주고 놀아달란 말이다 였는데 요구가 바뀌었다. 너가 아무리 재촉해도 모닝커피가 더 빨랑 내려지는게 아니란다. 웅야옹 내가 고양이 언어로 대답한다.


아침에 눈뜨면 커피를 들고 마당에 나가 오늘의 날씨를 살핀다. 하루의 날씨가 녀석의 하루를 결정짓는다.자기전 채워논 사료 그릇이 밤새 비어있다. 도둑 고양이처럼 야밤에 방문해 사료만 먹고 사라지는 길양이들 위해 빈그릇에 다시 사료를 채워 넣는다. (녀석의 특식 사료는 전주인이 주고간 것으로 넉넉하고 길양이들 사료값은 대용량 포대로 사면 한달 몇천원 안 든다. 내가 자장면 한그릇 안 먹음 된다.)


마당 구석의 길양이 전용 휴게소 겨울내 한 녀석이 쓰더니 봄날돼서 사람이 나오니 비었다. 겨울에도 내가 지나가면 자다가도 튀어 나와 도망가던데..


먹이는 너희들 원하는만큼 항상 충분하다. 먹이를 두고 다투는것도 아니고 영역권 싸움도 아니다. 내가 해줄수 있는선에서 판은 다 깔아준거니 알아서들 콩닥대거라. 똑같이 식량을 내주어도 도둑질 하듯 얻어먹는 녀석들과 특식을 내주어도 관심없는 배부른 녀석으로 갈린다. 나는 달라는걸 내주고 얻어가는건 각자 자기들 선택이다. 동종임에도 각자 입장이 다른 녀석들끼리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관찰한다.


너희들의 행복을 위해 잠자리와 식량 공간은 내주어도 관계까지 내가 관여할수는 없는지라 무엇이 너희들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인지 각자의 생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다.


https://youtu.be/wLlFAlxeL1Y?si=YGIyfB33FJS9Iw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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