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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pr 15. 2024

피노키오가 원하는 자유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향한 자유일까?


실내에선 그렇게 졸라대고 양양대던 녀석이 마당에 내놓으니 말이 아예 사라졌다. 동종에겐 온갖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도 인간에겐 침묵모드 인것이 딱 인간을 믿지않는 길양이들 표정이다.


어리광 계속 받아주던 집사에게서 내쳐진 충격도 있을테고 중년넘어 갑자기 찾아온 야외에 대한 신세계와 자유에 대해 이건 모지? 아직 혼란스럽고 정리가 안되는것 같다. 그저 두려움반 호기심반 신세계를 탐방하는 기분이랄까..실내에 다시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 하는건 첫날 하루 잠깐뿐이고 둘째날 부터는 갑자기 찾아온 자유에 대해 정신이 팔려 실내생활은 관심밖이 된것같다. 가끔씩 쳐다보며 그리워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닫힌문을 보고는 이내 체념한다.


침묵은 나름 심오한 혼란을 의미하는것 같다. 연어주면서 이전처럼 빗질을 해줘도 몸은 내맡기면서도 표정은 냉담 반응이 없다. 집냥이로 혼자만의 사회속에 있던 녀석이 상처 받은건 분명하다. 자신이 해선 안되는짓을 저질러 실내에 들어가지 못함도 이해하고 있다.


흙바닥 뒹굴기 놀이는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탈 행위다. 온몸이 더러운 먼지에 물들어 흙갈색 털이 되는 경험도 처음일테고 한두번도 아니고 점점 빠져들어 습관화 되는 본성의 끌림을 자제하려면 녀석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댓가로 실내의 안락함을 포기해야만 하는것임을 알아야 한다.



시골인지라 밤이야말로 고요한것이 고양이들에겐 온 동네전체가 최상의 놀이터다. 마당만 거닐면 정말 좋겠는데 야행성 동물답게 밤이되니 더 활동적으로 변해 온 동네를 쏘다니고 노느라 이삼일 간은 나의 부름이나 제재따윈 안중에도 없이 한밤의 자유를 만끽한다. 낮에는 겁나서 못 돌아 다니던 온 동네가 자기것인양 신세계 별천지 놀이터에 빠진거다.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녀석은 분명 삐뚤어 지고 있다. 말 안듣는 피노키오다. 녀석은 공생의 규칙을 모른다.


뭐하나 따라가보니 흙바닥 뒹굴기에 빠져 남의집.텃밭 화단등을 마구 짖밟고 뭉개고 다닌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조만간 이웃집들에서 욕과 항의가 들어올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웃집 화단과 텃밭을 마구 짖밦는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것을 알면서 방임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길양이들 먹이 주는것도 이웃에 피해를 주어선 안된다고 본다. 공생에 대해 아무런 규칙을 모르고 덩치만 커진 이 피노키오 같은 녀석을 어찌해야 하나.



마당에서 생활하는 녀석의 밤은 화려하다. 모든 등이 태양열 센서로 작동하는지라 여름내내 놀이동산에 놀러온 기분일거다. 날씨에 따라 원하는 곳에 머물라고 집도 세채나 준비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모든 휴식과 놀이가 갖춰진 리조트라 할수있겠다. 날씨가 더워지니 깔아논 담요를 걷어 차는것이 여름엔 더위를 피하는 것이 너에겐 최우선 과제가 될것같구나. 털까지 수북하니 오죽 하겠니.


다시 실내에 들이면 어찌될까..  지금 상태선 녀석이 계속 나가게 해달라고 점점 삐뚤어지겠지. 녀석이 다시 고개 수그리고 규칙을 지키겠노라 약속하고 목욕하고 실내로 돌아오길 바라는것이 나의 바램이다. 현관문 앞에서 들어가고 싶다고 낑낑대기만 해도 알아듣는데 녀석은 그러지 않는다. 달라진 환경이 조금 불편하긴 해도 아주 싫지는 않은것이다.


말은 사라졌지만 기죽지 않고 꼬리 살랑 흔들어 대며 지내는것 보면 오 이거 신기해 아직은 새로운 야생 생활에 재미를 느끼는게 확실하다. 흙밭을 마음껏 뒹굴며 거지꼴이 된채로도 호기심에 온 동네를 마구 휘젖는꼴을 보니 서글프기도 하면서 너를 어찌해야 하니 한숨만 나온다.


녀석은 새벽 생애 처음으로 비오고 태풍 부는 야외의 두려움을 느낀다.


녀석이 나에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한것은 야외 생활 4일째 되는 날 새벽부터다. 비가오고 으슬한 아침인데 내가 밤새 이런저런 생각하며 잠못들다 아침에 커피와 흡연이 땡겨 그냥 일어났다.


커피를 마시러 나오니 녀석도 자기집에서 빼꼼 나와서 “이제 그만 나 들어가게 해주면 안되냐오옹” 한다. 비가오고 아침 분위기도 음울 쓸쓸한데다 왼만큼 돌아다녀 보니 이제 호기심이 어느정도 충족된듯 하다.


꾀죄죄하고 처량한 모습에 내가 안아주자 녀석 얌전하게 한참을 품에 안겨 꼬리를 살랑댄다. 서로가 따뜻하다는걸 느낄만큼 밀착해서 위로해주니 녀석이 며칠 서운했던 마음을 푸는것 같다. 다시 나긋하니 꼬리를 살랑살랑 야옹거리며 밀당을 걸어온다. 다큰 녀석이 징그럽게 배시시 눈뜨고 얼굴 부비기 까지 하며 숙 치고 들어온다.



녀석의 이야기에 갑자기 수천명 사람들이 몰려들때가 있다. 이번에도 갑자기 쏟아지는 방문객으로 다음 메인에 소개 됐음을 알게된다. 사람들이 주로 보기 원하는것은 동물들 재롱피는 이야기로 우리 댕댕이 냥이 너무 귀여워요 이뻐요 일색이라 지금 다 자란 녀석이 겪고있는 해적모험은 대중들 관심권이 아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사람들 몰리나 안 몰리나 녀석이나 나나 달라질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너가 진심으로 사정을 깨닫고 실내를 택하면 언제든 다시 받아줄것이다. 너의 선택이다. 아침마다 문앞에서 일어나라고 조르던 너의 노래소리가 나에겐 작은 행복 이었는데 그 시간들이 그립구나.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고작 이정도 놀다 다시 들어가면 똑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될뿐이다. 너도 죽을맛인 목욕고문 나도 힘들어 못한단다.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피노키오 처럼 야외 캠핑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깨닫고 어차피 치뤄야만 할테니 목욕도 얌전히 수긍할때 다시 실내로 들어 가자꾸나.


나무인형인 피노키오도 그러다 사람까지 됐다는 새빨간 거짓말도 있단다. 거짓말 하면 코가 커진다면서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믿으라는 어른들이 양심없는거지. 난 어릴때 믿었던가? 제빼토? 할아버지 불쌍해서 말 안듣는 피노키오를 막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재밌게는 본 기억이 나네. 귀뚜라미도 불쌍했고 디즈니 피노키오는 어릴적 내 기억속에 진짜 나쁜놈 이었어. 멋대로 행동하는 너 역시 지금은 그때의 피노키오 같구나.


올 봄날에 즐기는 해적놀이 얼마를 더 살지 모르는 너의 묘생에서 멋진 경험과 추억으로 남게 되기를 바라노라


* 모닝 커피를 다 마실때쯤 갑자기 태풍과 소나기가 세차게 몰아친다. 예보를 보니 오늘 하루종일 비온단다. 난생 처음 무서운 태풍 소나기를 본 녀석이 황급히 비명을 질러대며 집안으로 뛰어들고.. 결국 녀석의 해적 모험은 3박4일로 끝이난다. 나는 반가워서 형아가 미안해 따뜻한 물로 목욕시키고 츄르 먹이고 다시 집과 화장실 원위치.. 이번이 마지막 목욕이기를.. 나는 제빼토 할아버지 아니란다. 너도 이젠 피노키오 하지마라 제발..


목욕하고 빗질 당하고 따뜻한 난로가에 누워 아이 행복해 꼬리가 난리를 친다. 집안의 안락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을 것이다.
녀석은 그래도 철없는(?) 새끼가 아닌 성묘인지라 자신을 돌봐주는 나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한다. 돌봐줘 고맙다옹 말은 줄었어도 눈빛으로 말을한다.


예수도 집나간 양새끼가 귀가하면 벌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 들인다는 말을 한다. 대부분 부모 마음이 그러하다. 다른 형제들이 심통나서 왜 쟤는 잘못했는데 벌대신 환영해 주냐 따지는데 벌을 주는 목적도 그러하다. 스스로 집에 무사히 돌아오게 하려는것이다.


https://youtu.be/_s0DHwhNxak?feature=shared


*녀석이 집안으로 사라지자 소나기가 옴에도 해적중 거친 한 녀석이 궁금한지 현관문앞을 기웃대다 도망간다. 텐트까지 뒤집어 놓은걸 보면 너 녀석이 부러웠구나. 마냥 왕따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녀석이 다른애들 관심은 끌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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