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때 보면서 많이 울었다.
지금 영화나 드라마속 청춘들은 재벌2세가 돼야 제대로 된 연애를 할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70년대는 일단 여자가 백혈병 걸려줘야 사랑 받는다고 여겼다. 하나같이 여자들은 다 죽을병 걸린 병자들만 사랑받는것 처럼 소설 영화들이 꾸며댔던 시대가 70년대다.
그전까지는 남자들이 (주로 전쟁 나가서) 적당히 죽어주는 추세였는데 러브스토리 ‘Love Story (1970)’ 를 필두로 여자가 병걸려 죽는 내용이 70년대 로멘스계의 흐름을 장악한다. 그 뒤를 이어 라스트 콘서트 션샤인 필링 등등 주제가와 함께 대히트 했던 영화들과 그 외 기타 아류작들이 (얼마 제작 되지도 않았던 영화 편수속에서) 같은 70년대 로멘스 장르의 흐름을 주도했다.
일단, 영화속 여주인공이 되려면 창백한 얼굴에 아무거나 시한부 병 하나쯤은 걸려 있어야 했고 남자도 그에 필적하는 정신병적 강박증 하나쯤은 기본으로 탑재해야 했다.
똑같은 영화내용들 요약해 보면 여자가 병원에서 백혈병 판정받고 얼마 못산다는걸 알자마자 남자를 찾아 나선다. 순진하면서 어딘가 음울한 정신질환 앓던 남자랑 눈이 맞아 눈 던지고 햇살쬐고 자전거 타고 나잡아봐라 몇번 시연해준다음 ‘사랑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시간되서 냅다 쓰러진다. 객관적 시각에선 순진한 남자가 병든여자 에게 꼬심을 당해 무료로 병간호를 하다 (심지어 션샤인에선 남의 애까지 떠안고) 남은 인생 막막하니 조진다는 한결같은 내용이다.
https://youtu.be/hz8aaLmgeQI?si=7Tsc1NNgxKqlbLqF
사람들은 사랑을 하려면 왠지 아무거나 시한부 병들어야만 할거 같았고 가장 낮설고 고급져 보이던게 당시로서는 실생활에서 누구도 들어보기 힘들었던 혈액암 종류인 ‘백혈병’ 이다. 그 희귀한 백혈병이 러브스토리 따라서 여주인공들에게 감기처럼 아주 흔하게 유행하던 시절이다. (남자가 병걸리면 주로 피 토하는 폐병이다.)
영화보면 그냥 멀쩡히 생활하다 시간차면 고상하게 병원에서 눈을 감고 죽으면 주제가 울려 퍼지고 크래딧 자막이 오를때 관객들이 때지어 운다. 붕어빵처럼 똑같은 패턴의 백혈병 다큐 흉내낸 로맨스 영화 소설등이 80년대 까지 쏟아져 나왔는데 당시 작가들도 실제 백혈병이 어떤병인지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들 (당시엔) 희귀병명이라고 찾아내서 꾸며낸거다.
나 어릴때 TV 에서 여자는 시한부에 남자는 정신병 (대부분 울적증) 을 앓는 [라스트 콘서트] 보고 펑펑 울었던 사람이다. 당시엔 암은 그냥 죽는병 이었던지라 그런 설정을 남발했겠지만 현실에선 그럴리 만무하다. 요즘은 암도 치료받는 환자들이 많아져서 항암치료 받는 환자들보고 영화속 내용들이 다 사기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80년대는 브룩쉴즈의 [엔드리스 러브] 피비캣츠의 [파라다이스] 소피 마르소의 [라붐]등 성인식을 앞둔 신인 여배우들의 등장과 함께 세계적으론 청춘 로멘스가 대세였고 한국영화는 여배우 벗기기로 승부하는 에로영화 전성시대를 맞는다.
90년대 들어서면서는 너무 식상했다 여겼는지 작가들이 여주인공 죽이기 대신 변화를 주기 시작했는데 …
이번엔 남자들이 죽는다. 라스트 콘서트를 뒤집어서 마지막에 여자가 노래 불러 제낀다. 어때 신선하지? 70년대 유행의 끝물이라도 짜내려는 이런 속보이는 아류들도 넘쳐난다.
수억짜리 외제차 모는 재벌2세들만 등장하는 요즘의 대중문화 로멘스들 보면 과거 가난하고 병든 연인들이 죽는걸 보면서 울었던 70년대 청춘들을 그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해진다. 나에겐 그때 그시절 클래식 이지만 요즘 청춘들은 꼰대 감성이라고 비웃을것 같다.
70년대 여자죽는 외화 로맨스물 보고 눈물흘리던 청춘 세대 다음이 바로 90년대 청춘이었던 586세대다. 여자들 다 죽이던 유행을 지나 클래식 감성을 지닌 세대다. 80년대 이현세 만화책 보면서 중고시절을 보낸지라 엄지가 아니었던 여자들에게 까치식으로 들이대다 많이 까이기도 했다. 그런 순진함이 지금의 재벌들 2세들만 득세하는 로멘스보다 우리 세대에겐 훨씬 정감이 간다.
70년대 식으로 과하게 눈물 짜내는 형식을 대략 ‘신파’라고 한다. 당시엔 영화 편수도 그렇고 극장 자체가 귀해서 평생 극장 한두번 나들이 가본 사람들이 수두룩 하던 시대다. 굉장한 이야기가 아니면 극장 나들이가 쉽지않던 시대에 관객들을 로멘스 장르로 극장으로 오게 하려면 남자건 여자건 둘중 하나는 죽어줘야 했다. 요즘 관객들은 옛날 70년대 처럼 극장 가는거 만으로도 아무 영화나 보고 감동받는 인간종이 아니다. 접한게 있는만큼 그때처럼 순진하지가 않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연애는 대부분 중매로 때우고 (평생 극장 한번 갈까말까 하면서 봤던) 영화속에서 나마 사랑에 울고 불고 하던 러브스토리 감성 세대고 우리 세대는 건축학개론, 클래식, 유열의 음악앨범 세대다. 연애도 현실로 돌아와서 실제 울고 웃는다.
https://youtu.be/QCaIoa6hvHY?si=YtQ0F7YpApdZxXKC
https://youtu.be/ZHUQwXHjSQg?si=dKg_1PWK5VOKMZ7H
확실히 요즘 재벌남만 등장하는 청춘들 드라마 보다는 우리세대 현실적 감성 연애가 586에겐 더 맞는다. 꼰대라 그렇다해도 그 시대에 청춘이 있었으니 어쩔수 없는것 아니겠는가. 세대차이란게 그런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