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엔 다들 뭔가라도 ‘목적[目的]’ 을 갖고 산다. 심지어 구도 한답시고 목적이 없는것을 목적으로 삼기도 한다.
목적[目的] 이루려고 하는 일이나 방향
성공하려는 목적이 뚜렷해 공격적으로 살아가는 스타일을 보통 ’야심가‘ 라고 하며 이래도 그냥 저래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흐리멍텅한 스타일을 보통 얼빠진 사람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얼’ 은 목적과 무관하다. 얼이 무엇인지 모름에 그런 표현을 하는것이고 삿된 욕망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얼이 빠진 인간들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목적은 적어지고 얼은 더욱 또렷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듯 하다. 술을 자제할수록 얼을 차리는데는 유리하다.
별다른 목적이 없이 그냥저냥 고양이 얘기나 맛있는 커피마시기 처럼 가벼운 일상 이야기를 쓰면 포털 메인에 소개되고 수만명이 몰린다. 사람들이 원하는것이 그런것들이다. 반면, 목적을 가지고 쓴 기록들은 철저히 인기가 없게 되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글이 아니란 말이다.
쉽게 할수록 인기를 얻고 가볍고 유치할수록 대중들은 좋아한다. 대중문화 란것이 그런것이다. 항상 그래왔듯 나로선 착잡한 기분 들게 하는 현상이다. (수만명 몰린들 지하철역에 몰리는 군중들이라 커피한잔 응원해 주는 사람도 없다. 브런치는 방문객 많다해서 광고수입이 생기는것도 아니므로 방문객수가 별 의미가 없다.)
이제 그런 대중들 비위 맞춰가며 끌려다닐 나이도 지났고 흥미도 없으니 목적이 생기질 않는다. 나이 먹을수록 웃을일보단 울고싶은 일들이 더 많다. 요양등급 받은 노부모 양쪽다 부양해 보면 안다. 내용은 아이들 돌봄과 똑같은데 감정은 정 반대다. 물가가 몇년새 두배로 치솟음에 갑자기 두배로 가난해지는 경험도 만만치는 않다.
요즘은 응어리가 생겨 글을 적어도 공개 발행대신 말을 삼키는 경우가 더 많다. 대신 주시를 한다. 말세기를 맞이함에 막바지 치열한 질문들이 쏟아지는데 에고 입장에선 최종 결론을 향한 마지막 최후변론의 시간들이다. 어찌해도 바꿀수 없을땐 그저 판결을 주시할수 밖에 없는거다. 언젠간 지나가리라.. 앙드레지드가 드나들던 문 보다 좁은문을 통과해 나감에 그저 노닥노닥.. 위안꺼리 주변과 나누며 세월을 주시 하노라.
https://youtu.be/LmmLur3dMXY?si=MztFLGkRvE3c2v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