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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May 21. 2024

구충제를 먹어다오 제발

사랑이 얼마나 쓴맛인지는 알수가 없어..


나는 녀석을 살리려 함인데 녀석은 내가 자신에게 사약을 먹이려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구충제를 안 먹겠다는 녀석의 저항이 목숨 내놓은듯 필사적이다.


이싱한거 먹이려 들려면 가까이 오지말란 말이다.


여름이 되자 녀석은 밤에도 마당텐트 안에 있는걸 좋아하고 낮에는 햇살속에 어슬렁 거리고 뒹굴기로 시간을 보낸다. 한마디로 8년간 지내왔던 갑갑한 실내에 갇히기 싫다는것이다. 나도 그런데 너라고 다르겠냐.


이상한 놈이 신선한 물이 충분함에도 마당 바닥에 고인 빗물, 변기물등 더럽고 찝집한 물만보면 할짝거리는 짓을 한다. 우리가 이상한 소다 음료 마시듯 처음 접하는 신선함이라 별미라 생각한듯 하다.


게다가 마당 뒹굴며 온갖 먼지 뒤집어 쓴걸 햇살 쬐가며 자기가 그루밍으로 다 핣아 먹는짓을 한다. (고양이들의 주 업무다.)길양이들이 왜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은지를 잘 알수있는 행동들이다. 꾸준히 단속하고 마당청소 열심히 하고 빗질해주고 주기적으로 구충제와 약이라도 먹여야 조금이나마 위험율을 줄인다. 그런데 문제는


약이 쓰다.


감히 나에게 사약을 먹이려 드느냐 녀석이 또 이기고 내가졌다.


녀석에게 약을 먹이려는 전투는 내가 번번히 진다. 온갖 유투브 동영상 보고 따라하려해도 이미 뼈대가 다 커서 기골이 장대한 녀석의 반항은 동영상에 나오는 고양이들의 수준이 아니다.


동영상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만 살랑살랑 싫어해도 결국 얌전하게 약을 먹는데 녀석은 거품을 물고 으르렁 대는것이 경기 일으키듯 한다. 발버둥 치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결국 억지로 밀어 넣어도 녀석은 퉷 뱉어내고 도망치고 나는 또 뒤쫒고 반복 반복이다. 나는 아직 고양이 발톱도 못 깍고 약도 못 먹이는 초초초보 집사인것이다.


로켓배송으로 일요일 새벽에도 총알처럼 배송된 약 투여기


원주인 에게 도움을 청하니 약 투여기를 알려줘서 알리에서 주문하려 했더니 바로 쿠팡 로켓배송으로 쏴 주신다. 동영상 보고 시도해 봤으나..


결론은 또 실패다. 원 주인은 별 문제없이 주기적으로 약을 먹였다는데 나는 이미 다 큰녀석을 맡은데다 처음이라 그런지 도저히 안된다. (얌전한 새끼때부터 약을 먹였던 집사들은 커서도 무난히 먹이나보다.) 대신 녀석과 그동안 쌓아올린 신뢰는 박살나고 녀석은 나를 자신에게 사약을 먹이려드는 관군 대하듯 한다. 그런 대치전선 기류가 내내 이어진다.


https://youtu.be/UjjAQcKTqZw?si=SM0aGx2WgtB6bqM0


유투브 보면 고양이가 집사를 엄마라고 따르는 행동 15가지를 소개한다. 녀석은 이 모든걸 다 하면서 거기에 더해 잔소리와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춘기적 응석까지 부린다. 분명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보호자로 받아들인건 맞는것 같은데 약 투여가 번번히 실패하면서 관계는 점점 대립 전투 대치 분위기로 흘러간다.


방문까지 뜯어내 움켜쥐고 버티는 명연기를 펼쳐주시는 혜수님이다.


 ‘이딴것을 나에게 먹이려 한단 말이냣!‘


쓴 약맛을 본 녀석이 처음으로 진짜 화를 내며 거품물고 물려고 한다. 가루를 내서 추르 연어에 섞어주면 귀신같이 냄새를 맏고 외면해서 다 버린다. 동영상처럼 숟가락에 물과함께 먹이려니 약이 풀어지며 쓴물이 되서 더 안먹으려고 필사적이다.


이녀석 기백을 보아하니 원래는 겁쟁이가 아니다.


녀석에게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 시키기는 불가능 하다. 나는 녀석을 보호 하고자 함이고 녀석은 자신을 괴롭히는 고문으로만 받아들인다.


인간의 불행과 제약도 그런 경우 많다. 신의 사랑도 인간에겐 정말 쓰다. 그런경우 신의 사랑을 이해 시키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녀석의 나에대한 원망과 거부를 보면서 나의 지난날을 되새겨 본다. 너도 나랑 똑같구나..  


제발 약을 먹어다오. 이해와 설득이 불가능하니 억지로 너에게 약을 먹일수 밖에 없노라. 변기물과 꾸정물 먹는것을 눈으로 본 이상 나 역시 주기적 약 먹이기를 포기할수가 없노라. 나의 행동에 상처받고 깨물어도 어쩔수가 없구나. 내 기꺼이 원망과 미움을 받겠노라. 너가 괴롭다해도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어설프게 실패할수록 점점 어려워지므로 원주인과 상의한후 결국 동물병원에 가서 해결했다. 확실히 전문가는 다르다. 내가 한달동안 전투를 치뤘어도 해결 못하는 것을 단 3초만에 끝낸다. 다 큰 녀석을 가방에 담고 병원까지 데려가는것이 번거로울뿐 계속 난리 피느니 매달 전문가 도움받는것이 낫다는 결론. 내가 익숙해 지겠다고 계속 약을 먹일수는 없을테니.. (병원에 데리고 갈경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인지표와 목줄은 필수다. 실제로 병원에서 진료도중 도망가서 잃어버려 분쟁 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강하게 뒷목을 콱 움켜쥐고 녀석이 이거뭐야? 당황할때 입에다 기구로 쏙 끝이다. 나처럼 설득하고 달랜답시고 계속 깐작깐작 비위만 거슬리는 어설픈 시도보다 강한 임팩트 한방과 타이밍이다. 녀석이 어리둥절해서 야옹 소리도 못낸다.


환경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한후 다시 안정화 됐다.


상황을 모르는 녀석이 가방안에서 얼마나 징징 울어대던지 집에 오자마자 처음 왔을때 행동처럼 서랍속에 숨는다. 잘했어 끝났단다. 확실히 겁보는 겁보구나. 다른곳으로 이첩되는것이 두려운 녀석은 가방안에 들어감을 극도로 겁내한다.



한참을 서랍속에 숨어있던 녀석이 상황을 파악한후 다시 안정감을 찾기 시작한다. 다시 관계 회복이 이루어진다. 여름이 됨에 구충약 외에도 예방으로 챙겨야 할것들을 하나하나 살펴 나가는 중이다. 하나하나 해보자꾸나.


https://youtu.be/Dy6MpsDPKts?si=LgnTmfZVLtle48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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