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말하는 자유란?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세계를 휩쓸더니 그보다 노골적으로 자본주의 머니게임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가 [더 에이트 쑈] 다. 자본주의 정점에 선 계층에서 돈으로 인간본성을 가지고 구경꺼리로 삼는다는 오징어 게임도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라이어게임] 등이 원조인데 더 에이트 쑈는 오징어게임 + 더 플랫폼을 혼합한 구조다. 거기에 [인타임]을 시즈닝으로 뿌렸다.
더 플랫폼은 스페인 영화로 끔찍함에 있어서 너무 충격적인 작품이라 일반인 관람엔 무리가 있다. 더 에이트 쑈는 층마다 계층이 구분되고 차별화 한다는 형식은 플랫폼에서 차용했고 내용은 플랫폼만큼 호러 스럽진 않다. (먹을것이 위에서 부터 내려오는 플랫폼에선 최하위 계층은 먹을것이 없어서 서로를 잡아 먹어야 한다.) 카피라고 하기보단 요리라고 하겠다. 웹툰 원작 두개를 합친것 이라는데 이것저것 날것을 가져다 먹기좋게 손질한 드라마다. 돈이 되는쪽으로 카피하며 계속 진화하는 자본주의 속성을 그대로 드라마도 보여준다.
그래도 오징어게임에 비해선 기괴하다는 느낌을 주기엔 충분하므로 대중적 확장성은 오징어게임보다 제한적일수 밖에 없겠다. (완전한 성인용이다.)
[더 에이트 쑈] 를 보는 현대 관중들 반응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잣대가 된다. 상류 계층은 아무런 저항없이 기득권이 가진 지배 권리를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이고 가장 하류 계층도 착취 당하며 사는방식을 그대로 체념한채 받아들인다.
세대별로도 반응이 구분되는데 자본주의가 정의라 맹신하는 노년층일수록 그 모순적 구조로 인해 세상이 지금처럼 막장에 지옥이 됨을 당연한 진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너도 노력하면 부자가 된다’ 라는 믿음이 자본주의 지옥만들기 게임에 적극 동참하게 만든다. 애초에 공평하지 못한 플랫폼이 존재함을 모르거나 알지만 자신이 속한 계층에 만족하거나 순응해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것이다.
70년대 학생운동에서 주사파( 주체사상파) 사상은 자본주의의 이런 단점을 지적하며 지식인층을 선동했는데 자본주의가 자유 민주주의 처럼 둔갑하게 되는 변이 과정에 이념전쟁이 있다. 남북 대립 관계에서 마치 자본주의가 선이고 반대하거나 비난하면 악이다 라는 이분법 논리가 한국인들에게 자리잡은것은 정보차단이 불러온 역효과로 보면 된다. 정보가 차단될수록 사람들은 음모론에 쉽게 빠진다. 반대 의견은 무조건 악으로 규정한 결과, 자본주의를 비난하거나 맹신하지 않으면 빨갱이다 라고 한국의 노년층은 반응한다.
50대 이상 중년층은 계층별로 다양하게 갈리는데 한국사에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20-30대 젊은시절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했던 (최류탄 직접 맞아본 ) 유일한 세대다. 젊은 혈기에 플랫폼 구조의 불공평함에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만 자신이 기득권 층에 올라서면 또 바뀐다. 없을때는 비난했어도 자신이 기득권 되어보니 졸부의 그 맛이 쏠쏠한거다. (정치권에선 그런 부류를 수박이란 용어로 지칭한다.)
지금의 젊은층은 플랫폼 적인 구조에 대해 의외로 하위계층도 분노 지수 보다는 순응지수가 더 높다. 경쟁사회에서 무난하게 사는것을 어릴적부터 목표로 커온 결과다. 어떻게 해도 자신들이 바꿀수 있는건 없다라고 순응모드로 자랐다. 집 고양이들이 대부분 매사 순응하고 얌전한것과 같다.
더 에이트 쇼에서는 자본주의 착취 플랫폼이 마치 신이 짜논 균형인듯 피보나치 배열을 등장 시키는데 한마디로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단순 떡밥이자 궤변이다. 그럴듯하게 착취의 정당성을 주장하듯 갖다댔는데 머리나쁜 사람들은 진짜인줄 알겠다.
현 자본주의 플랫폼을 설계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최상위층은 신이 아닌 유대인들이다. (달러를 미국정부가 아닌 그들 민간은행이 결정해 찍어낸다.) 피보나치 배열은 크기 상관없이 적용되는 균형과 조화의 자연법칙으로 착취개념과는 전혀 무관하다.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의 악마성을 들쳐내 반대 대칭점으로 삼았던 이념이 막스 레닌의 공산주의 인데 이미 몰락해 현재는 중국 러시아도 공산주의가 아닌 신 자본주의 국가다. 그렇다 해서 마치 자본주의가 선이고 진리라고 할수는 없는것이 자본주의 역시 공산주의 뒤를 따라 한계에 부딫쳐 스스로 막장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뭐든 사상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닌 구성원들의 성향이 문제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이념이나 논리가 잘못이 아니라 인간들의 욕망과 성향에 안맞을 뿐이다. 마냥 천국타령 하는 종교가 흥하고 신자가 넘쳐나도 세상은 점점 지옥으로 변해가는것 보면 알게된다.
지금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논리를 두고 맞냐 틀리냐정의를 논할 시대가 아니다. 상류층 일수록 바뀌는것이 싫어 보수가 되고 하위층일수록 변화를 원해 진보가 된다. 에이트 쇼의 층수가 보여주는것이 바로 그것이다. 혁명을 해도 자리바꿈만 있을뿐 플랫폼은 건재함으로 인해 마찬가지 문제를 겪는다.
플랫폼 자체에 대한 모든 문제점들은 이미 다 드러난 상태다. 자본주의 플랫폼이 가져다준 최종 결과는 지금 사회 모습 그대로다. 지금의 사회구조가 자신이 보기에 천국인가 지옥인가 방향성만 따져보면 된다. 갈림길이 그런것 아니겠는가.?
기득권이 자본주의 플렛폼을 자유 민주주의 라고 둔갑시켜 계속 옹호 하려는 이유는 과거처럼 신분제가 형식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눈에 안보이는 신분제를 자본주의 체제를 이용해 만들고 싶어한다. 노예 해방을 주장한 링컨이 얼마나 미웠음 전쟁까지 했겠는가?
누군가에겐 지옥이 누군가에겐 천국인 사회다. 인간이 바라는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펼쳐진 자본주의 플랫폼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현실이 곧 [더 에이트 쑈]다. 천국이다 한표 지옥이다 한표 투표로 결정짓는 민주주의가 그나마 박스안에서 기대할수 있는 최선의 타협안이다. 무엇을 선택하건 어차피 플랫폼 박스안이라.. 박스가 한계치에 부딫쳐 부서지려 하는데 지금시기 치고박고 해봤자 그까짓게 뭐가 대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