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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un 17. 2017

의식 확장의 가장 큰 적, ‘나’ E go

Ego 의 생존본능이 모든 기적을 가로막는다..


인간의 육체가 단순히 하나의 피지컬 바디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세가지 육체와 그에따른 의식의 통합을 말하는 나의 이야기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헛소리 일수밖에 없음을 안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해 가는 사람들은 항상 그런 에고들의 저항을 받게 마련이고 외톨이가 됨은 각오해야만 한다.


3차원의 에고와 4차원의 심령체의식, 5차원의 이지체 의식을 개인적으로 내가 통합해야만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즉, 정상이고 건강한 에고를 가진 일반 사람들에겐 살아가는데 하등 필요없는 불필요한 작업이다. 그냥, 에고로서 주어진 삶에서 행복을 찾으며 사는날까지 무탈하게 사는것이 그들에겐 정답이다.



'에고' 란 의식의 기본 성질을 완전히 간파한 나의 경우는 필연적으로 에고의식을 다른 차원의 의식과 통합하려 시도하고 있는데 이유는 , 무엇을 하던 '에고' 의 방해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에고가 극심한 통증을 못이겨 죽거나 가사상태에 빠지지 않는한 에고는 절대 항복하는일이 없다.


모든 다차원 의식이 시도하는 육체의 기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언제나 외부에 있는것이 아니라 본인 자신 즉, '에고' 이다. 에고는 그 딱딱한 경직성으로 인해 절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현상이나 의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에고가 막 형성되기 이전의 어린 아이들이 다른나라 언어를 아무 노력없이 쉽게 습득하는것에 비해 에고가 완전히 형성된 어른은 다른나라 언어를 배우는것이 어마어마 하게 힘든것을 보면 바로 알수있다.


에고는 나약해 자신이라고 하는 틀을 절대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에고가 강할수록 자신의 언어체계를 고수해 낮선 외국어 습득은 쉽지 않으며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것들은 인정하지 않는 경직성이 강해 어떤 기적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게 된다.


본인이 에고가 없다고 자부하는 분들은 아이들처럼 자연스례 외국어 습득을 시도해 보라..그 믿음이 진실이라면 일년정도 외화를 보면 별다른 노력없이도 꺼리낌없이 아이들처럼 외국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할수 있을것이다.


나는 영어공부를 따로 한적이 없음에도 몇년간 영화 드라마등을 보고나서 외국인들과 영어로 소통하는데 별다른 제약은 못느낀다. 나는 머리가 좋아서 어학은 학원이나 다른 어른들이 시도하는 공부 방식이 아닌 간단하게 아이들처럼 놀면서 하면 된다라는 매카니즘을 처음부터 간파했기 때문이다. 의식의 진화도 마찬가지 방식이 바른길이다.



생명의 기적을 다루는 마법을 독학으로 배우려 하는데 있어 언제나 내 발목을 잡는것도 바로 나의 에고이다..


다스칼로스 같은 경우도 제자들을 받고 교육시킬때 '에고' 를 항상 경계하고 에고를 없애는 훈련을 먼저 중점적으로 한다고 하며 에고에게 감춰진 마법의 비밀들과 지식들이 새나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언제나 모든 마법의 진실과 지식은 그렇게 대중적으로 공개되지않고 승인받은 제자들에게만 비밀리에 전수되어져 왔다. 에고의 욕망을 채우려 영성공부를 해서 흑마법사로 전락하는 경우도 아주 흔한가보다.


에고는 스스로가 죽어 사라져야 함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항상 자신이 영적성장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적 지식을 탐구하게 되는데 지식은 에고를 도리어 강화시키는 최대의 무기가 된다.


지식으로 무장해 깨달은 원숭이를 자처하는 에고는 이미 의식의 경직성에서 손쓸수 없는 상태로 넘어간 말기라서 건드리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이타심이 배제된 에고의 지식습득은 이기심을 더욱 부추기고 강화시켜 타인을 무시하고 혼자만의 독단적 마이웨이에 빠질수 밖에 없다.


에고는 지식으로 아는 모든 기적을 단순히 '안다.' 상태에 머물며 실제로 스스로가 그런 기적을 행하려 할적에는 어김없이 본능적으로 저항 한다.

에고는 이원법에 철저하게 익숙한 의식으로 집단의식을 선호하며 스스로가 만들어논 틀을 고수하는 성질로 인해 어김없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것을 본능적으로 당연시 받아들이게 된다.


'육체의 죽음이 인간에게 꼭 필수적인 항목은 아닐수 있다.' 라는 나의 생각에 에고는 자신을 규정하는 틀에서 벗어난 이런 모든 새로운 시도들에 의심하고 저항한다. 원숭이를 훈련시켜 바나나를 무시하게 할수는 있어도 언제든지 주인이 없음 본능은 살아난다. 즉, 에고의 본능을 거스를수는 없다.


입으로는 인간이 육체를 제어할수 있다고 에고는 말하지만 실제로 에고는 육체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말뿐이다. 플라시보나 최면등이 치유에 효과를 보는 경우는 에고를 멋드러지게 속였을때만 가능하다.


에고에겐 깨어있는 상태에서 절대 양파를 과일처럼 맛있게 먹는 최면효과를 기대할수 없다. 사과라고 아무리 강요해도 '이건 양파야' 라는 고정된 경직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모든 기적의 마법 실행에 있어 방해물로 저지하면서 버티고 있는 에고를 어찌해야 할까.. 에고가 완전히 죽으면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고 놔두면 항상 진화로 나아가려 하는 육체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모든것을 고려해 볼때 나에겐 의식의 통합만이 답이다 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원숭이 에고가 나의 결정에 발목을 잡는일을 되풀이 하지 않게 하기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에고가 사라져도 사는데 지장없는 고립된 유령과 같은 삶을 선택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현실적으로 현재는 가족들과 어울려 살려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기에 내린 결론이다. 어차피 에고들과 어울려 살수밖에 원숭이 우리안 이니까... 원숭이 흉내를 내야한다.


* 검색으로 근래들어 찾아오는 뜨내기들이 많아져 제목을 바꿨습니다. 검색에서 제외되는 기능이 없는것이 브런치의 한계.


Falling Leaves:

https://youtu.be/T1C2U48XD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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