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양이들의 대대적인 세대교체
어제 밤새 비가오더니 오늘도 주말임에도 날씨가 장대비 쏟아지고 천둥 우르렁 대고 바람불고 나들이할 날씨는 아니다. 커피와 음악감상 하며 널부러지기 딱 좋은 날이다. 문밖을 보니 오늘도 어김없이 길양이 새끼들이 문밖에 쪼그리고 앉아 먹이주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지라 귀찮음을 무릅쓰고 밥그릇을 씻고 사료를 채워준다.
이 길양이들 사회에 가장 늙은 거대한 순검정 1세대 녀석이 있는데 이녀석이 언제나 골치다. 그래도 나름 족보있는 순종이라 새까만데다 늙고 뚱뚱해 몸집도 거대하고 생김새도 태생이 외국에서 온 놈인지라 딱 악당처럼 생겼다. 아마 처음부터 길양이는 아니었으리라..대부분 고양이들은 본능에 의거해 사료가 얼마나있건 자신의 양만큼만 먹고 더이상은 안먹는게 정상인데 늙은 이 대빵은 치매가 걸린것 같다.
가끔 해외화제로 무절제하게 먹어대 비정상으로 비만인 고양이들이 소개되곤 하는데 이녀석이 그런 녀석들과 같은 증세인것 같다. 얼마나 먹으랴 하고 그릇을 비우고 사라지면 다른녀석도 먹으라고 또 리필을 하는데 다른 길양이 열마리 분량을 먹고도 주는대로 바로 또 나타나 계속 그릇에 달라붙는다. 다른 새끼들은 안중에도 없다. 완전 깡패도 이런 깡패가 없어서 새끼들이 밥달라고 해서 밥을 내주면 어디선가 나타나 자기가 다 내쫒고 밥그릇을 차지하는데 그녀석 한놈을 먹이려고 내가 이짓을 하나 화가 치민다. 이녀석 한놈만 쫒아내면 새끼들 열마리는 배불리 먹일수 있기에 그녀석 만큼은 눈에 띄면 쫒아버리기로 했다.
쫒아내면 왜 나만 미워하냐고 양양 우는데 다른 고양이들을 내쫒느라 싸움질까지 하는 소리가 들리고 자기구역 이라고 내방 툇마루 밑에 자리를 잡는지라 다른 새끼들을 먹이려면 그녀석을 쫒아내는 방법외엔 없다. 먹이를 탐하는게 본능이란건 알지만 넌 그렇게 몸집이 커질만큼 살았고 다른데 가서도 잘 뒤져먹으니 새끼들한테 자리좀 양보해..
요즘 주말마다 피서철이라 펜션 주위가 시끌벅적 고기들을 굽기 때문에 그런날이면 길양이들은 내방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아마도 사람들 파티하는데 얼쩡거리면 사람들이 귀엽다고 한점씩 던져주는거 먹는 재미가 있는것 같다.
오늘은 날씨도 꾸적꾸적 모기장을 열어도 되겠다 싶어 방문을 열고 새끼들을 방안으로 초대해 눈앞에서 사료를 먹인다. 큰놈들 방해없이 차례대로 들어와 지들 먹고싶은만큼 먹고 차례를 바꾼다. 몇주전까지만 해도 조금 큰 다람쥐 만했던 녀석들이 무럭무럭 잘도 큰다. 게다가 어디선가 막 태어난 동생들까지 새롭게 등장한다. 며칠전에 배가부른 녀석이 이번에 새끼를 또 낳은것 같다. 또다시 큰 다람쥐만한 녀석들이 보인다.
올봄에 나에게 끈질기게 밥달라고 졸라대 결국 내가 항복하고 사료를 대게만든 녀석이 어느새 삼형제의 어미가 됐는데 그래도 이 녀석은 자기새끼들을 먼저 챙긴다. 아빠 고양이와 엄마 고양이와 차이가 큰데 이 엄마 녀석은 혹시라도 자기 새끼들한테 어떤 위해가 될까봐 내가 조금만 액션을 취하면 그냥 도망가는게 아니라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 표정을 짓는다. 몇달간 밥주는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내는게 괘씸해서 이녀석은 밥주지 말까 생각도 했는데 엄마라 그런거니 이해 하기로 했다. 엄마가 잘먹어야 젖도 잘나오고 새끼들도 젖을 충분히 먹을테니..
어쨌든 이동네 길양이들은 사람을 너무나 두려워해 절대 정을 주거나 하는일 없고 막무가내로 먹이만 달라고 졸라대는 뻔뻔한 녀석들이다. 작년 겨울을 떠올려보자면 이상태로 녀석들에게 계속 밥을 줄 경우 한겨울에 눈발 휘몰아치는 혹한에 방문앞에서 먹이 달라고 밤새 기다리는 사태가 다시 벌어질텐데..20kg 대형 사료가 거의 떨어져 가는데 계속 먹이를 줘야하나 알아서 생존하라고 무시해야 하나 또다시 고민에 빠진다.
지금이야 여름이니 문을 열고 생활해 밤이건 낮이건 눈에 보이면 먹이를 리필해 주지만 겨울에는 방문 여는것조차 자주있는일이 아니라서 녀석들이 밤새 눈맞아가며 밖에서 먹이 달라고 보채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먹이를 줘도 추운데 내가 밖에서 감시할수도 없고 깡패같은 큰놈이 나타나 다 차지하는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어떤 교류감을 형성할만큼 정을 주길하나..먹이를 주는 나를 무서운 괴물 취급하며 일년이 되가도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 녀석들을 위해 내가 해줄수있는 한도는 어디까지 일까..
얼마남지 않은 사료자루를 보면서 여기까지야.. 일단은 있는것만 다 먹이고 그다음 부터는 쌩까는쪽으로 생각을 잡아본다. 나부터 통증으로 밥을 못먹고 이틀에 한번꼴로 라면이나 빵등을 조금씩 간신히 먹고 버티는데 그런 상태로 길양이들 식사까지 신경쓰는건 오만이고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비오고 천둥치고 종교와 상관없이 경건해지기 놀이하기 딱 좋은 날씨다. 마음이 경건해지면 자신이 원숭이가 아니라는 자각이 강해져 마음이 편안해진다. 요즘 하루한번씩 경건해지는 재미로 듣는 볼레로 느낌의 곡인데 동영상을 보니 예수영화 삽입곡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