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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Oct 15. 2017

생사에 관한 오해와 소통불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음의 경계선에서 다차원속을 해매던 시간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현실을 냉철히 구분하기 시작해 어느정도 정리가 된 싯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생각하는 내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각자 자신들의 사고의식안에서 내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다 보니 친척 지인들 가족들 모두 한번씩 찾아와 이야기를 나눠도 결국은 마지막 순간이 올때까지도 철저하게 나 혼자일수 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일단, 우리나라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죽어가는 사람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방식 속에 대부분 의식이 고정돼 있음을 알수있다. 그렇게도 인간들은 죽음이 두려운걸까... 이야기를 나눌수록 답답해 한숨이 나올수 밖에..


죽었다 살아난 아니타 무어자니 이야기를 하는 지인도 있다. 나는 그런 바보같은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걸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그게 참 좋아보이나보다. 죽는다는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모르기 때문인데 죽기전에야 안락사가 허용 안되니 어쩔수 없이 일단 생사를 운명에 맡긴다쳐도 일단 한번 힘들게 죽고나면 다시 돌아오는 멍청한 짓은 99프로의 영혼들은 하지 않는다는걸 이해하지 못한다. 죽음은 그렇게 쉽게 맞을수 있는게 아니다. 기껏 힘들게 관문을 통과해 죽었는데 다시 살아오길 원하는 사람들은 아니타 무어자니 처럼 상류층의 축복받은 환경속 사람들외엔 없다.


 아니타 무어자니는 가난한 나라 인도에서도 세상 부러울것 없는 상류층에 속한다.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 젊음, 병마만 없으면 충분히 인생이 아름답고 축복받은 삶을 영위한다고 할수있을 것이다.


그런경우는 당연 다시 살아날 기회가 주어지면 더할나위 없는 행복한 삶을 누릴수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련한 한국의 일반 서민들의 일반 노년이나 중년의 삶들은 죽을 기회에 죽지 못하면 더 큰 고통과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어야될 사람이 살아나면서 가정파탄과 가족 전체의 경제적 몰락은 흔하게 일어난다. 가족중 한명이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돼면 주변까지도 힘이 든다.끝나지 않는 고문의 통증은 안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사람들 눈에는 내가 자연스럽게 죽을 타이밍을 놏치고 지금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담보 상태로 있는것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으로 보이나보다. 절대 그런것이 아님에도 내 상황이 되어보질 않았으니 내말을 이해하기는 불가능 하다.



일단 장파열로 배를 갈라논 상태에서 비장 위장. 췌장 대장등 내장을 전부 도려내는 대수술을 하기도 애매하고 죽으라고 그냥 덮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솔직히 내장이 하나도 없이 뱃속이 텅빈채 멀쩡히 잘 사는 사람이 있다는걸 아직 본적도 들은적도 없어서 수술한다고 해도 멀쩡하게 산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병원 입장에서는 어차피 죽을 환자이기 때문에 내가 죽거나 살아도 어찌되는지 하나의 선례 데이터가 되는것일 뿐이다..


내가 두려운것은 죽음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인간의 형상이 아닌채로 죽지도 않고 정상으로 살지도 못하는 지옥같은 삶이 진짜 두려운거다. 지인들이 소식 물을때마다 " 아무래도 나 ㅈ 된거 같어..." 농담처럼 얘기하니 다들 내말은 듣지않고 그냥 수술하면 멀쩡하게 살수있다고 믿는듯 하다. 아니면 죽음의 두려움에 겁먹고 있다라고 착각하던지..


요 며칠 낙이라고는 병원 바깥까지 주렁주렁 부속들을 몸에 매달고 스탠드를 밀고 나가서 햇살쬐고 줄담배 피는게 유일한 낙인데 남들 눈에는 멀쩡하게 걸어다니고 줄담배 펴대니 얼굴 좋아보인다고 남의속도 모르고 답답한 얘기들만 한다. 사고가 나서 장파열 된 날도 내가 그날 죽는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긴 나도 CT찍어보기 전까지는 장파열이 된지도 몰랐다.



본능적으로 곧 죽을것임을 감지한 내가 방에서 죽으면 괜히 주인아줌마 놀랄까봐 새벽에 119전화걸고 혼수상태 되기전까지도 아무도 내가 그날 죽을것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사고내고 좀 누워있나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정말 혼자 방안에서 죽으면 주인 아주머니 놀랄까봐 119 연락한건데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기에 결국은 죽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세군데 병원을 거쳐 결국 나를 받아주는 유일한 병원인 국립 암센터가 나를 지금 이렇게 살아있게 만들어 놓았다..감탄이 나올정도로 대단한 시스템일수 밖에...전남에서는 알아주는 가장 큰 대학병원 에서도 더 큰병원 가라고 거절하는 바람에 밤새 전국을 다니면서 앰블런스 비용만 백만원 가량 나왔다.


내가 그냥 멀쩡히 농담하고 놀다가도 그날 죽을수 있다는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적인 죽음을 맞는 사람들 패턴과는 내 패턴이 상당히 차이가 나서일텐데 나같은 경우는 곧 죽을 상황이 와도 남보기는 멀쩡하게 농담하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일수 있다. 거기서 많은 오해들이 생기고 주변에서 내말을 믿지않는 현상이 지속되는것 같다. 다들 찾아와 나를 보고는 "멀쩡하네 걱정할거 없네" 식이다.


일단 주변에서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니 제대로 마음 터놓고 상담할 사람도 없다. 어찌해야할지 당장은 그저 하늘만 쳐다볼수밖에... 살것인가 죽을것인가.. 살 경우에 벌어질일. 죽게돼면 벌어질일.. 냉철히 판단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일단 오늘은 시골에서 찾아온 지인에게 자동차 폐차를 부탁했으니 하나씩 주변 마무리를 해야 결정이 좀 홀가분해질것 같다..내가 죽고 사는 일인데도 감정적으로는 마치 나에게는 남의일같다. 그동안 내가 피하고자 했고 가장 두려워했던 내몸을 내가 맘대로 움직일수 없는 상황인지라 어떻게 마무리를 져야 남에게 민폐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될지 업무처리(?) 하는 기분이다..


몸도 못 가누는 상황이지만 보호자도 없으니 당연 병원비 처리나 각종 사무적인 일처리도 내가 해야만 한다.보험 처리도 내가 해야만 했는데 나같은 경우는 내가 낸 사고라서자동차 사고로 상해 처리하는것보다 질병으로 산정특례 처리하는게 개인부담에서 더 이득인지라 다 알아보고 결국 의료보험으로 처리했다. 어쩔수 없이 내가 움직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걸 이해못하고 혼자서 잘 돌아다니고 움직인다고 죽을 고비는 아니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내 입장이 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께 소변 주머니를 빼서 그나마 병원안을 돌아다니는데 좀 홀가분해 졌다. 똥오줌 받아줄 가족이 없고 병수발 들어줄 간병인이 없는데 혼자서 움직여야지 달리 방법 있는가.. 배를 갈라 호치키스로 찍어논 상황(진짜다..요즘은 바느질이 아니라 호치키스가 사용되나보다.) 에서도 열심히 병원비 알아보러 돌아다니고 배에 복수차는 주머니를 끌고다니며 빨빨거리고 하루종일 병원안을 돌아다닌다... 햇살과 줄담배 외에는 나를 위로해줄만한 일거리 자체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살것인가 죽을것인가... 쉽게 결정 내릴수 없는 고뇌만 남았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SISSEL & GEORGE ZAMFIR Summer Snow

https://youtu.be/QjvkskFZq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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