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속을 살아간다는것은 항상 즐겁고 멋진일만 맞이하는것이 아닌 때로는 거지같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지나야 함을 의미한다.. 매일같이 즐겁고 멋진 경험들을 맞게되는 현실의 삶은 아무 걱정없는 어린시절, 그리고 팔자 좋은 운명을 타고난 극소수만이 인생의 봄날 잠시 누리는 행운이다.
비록 싫지만 피할수 없는 운명의 흐름이라면 각오를 다지고 덤덤히 맞이 하는것이 좋다. 오늘 조금 있으면 퇴원수속을 밟게된다. 보호자는 누구세요? 란 질문에 " 나요"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위 췌장 비장 대장을 모두 절제해야 하지만 당장 수술을 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이곳 의사들도 결국 시도 할수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내장을 다 들어내고 환자가 살길 바라는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냥 살인행위가 될 확율이 큰 수술은 의사들도 결국은 포기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종양의 크기를 (의사 표현으로는 축구공만한) 줄인후 절제 부위를 최소화 시킨후 시도하는것이 그나마 생존 확율을 높일수 있기에 일단은 종양 크기를 줄이는 항암치료를 먼저 받는것이 순서라고 한다. 장파열로 배를 갈라논채 살수는 없으므로 나에겐 선택권이 없다. 의사가 해보자는 대로 간다.
항암 치료는 이주에 한번씩만 주사를 맞으면 되므로 궂이 입원이 필요치가 않다. 입원실은 워낙 대기인원이 많아 병원 방침이 일반 병실 입원일수를 20 일로 규칙을 정해놨다.
이미 20일이 꽉찬 나같은 경우 남는 자리도 없으면서 아무런 치료도 없이 계속 버티기엔 눈치가 보이고 구차한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됐건 말건 4인 병실에서 움직일때가 된건 맞다.. 계속 병원에서 버티려면 일인실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봐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별다른 치료없이 자리를 쉽게 내주진 않을것이다. (1인실은 가격도 하루 30만원선이다. )
최소 한시간 이상 산책하고 커피 아이스크림 껌까지 씹으며 무지 노력했음에도 담배 냄새 나는것을 간호사가 눈치채서 경고도 몇번 받은 상태인데 병원 입장에서는 별다른 치료도 없이 담배까지 피워대는 골치덩이 환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병원 방침을 전하면서 통원치료를 권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미룬다고 답이 아닌지라 그 자리에서 바로 퇴원 결정을 해버렸다. 갈데는 없지만 될대로 되라지..
내가 응급실 왔을때 죽을줄 알고 지갑과 입고있던 옷까지 엄마가 싹 치워버려 퇴원하자니 입을 옷이 없다. 환자복을 입은채로는 퇴원 불가라는 말에 어제 낮에 점심을 먹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평상복을 챙겨왔다. 차로 움직이면 이십분이면 되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택시비만 왕복 3만원이 나온다.
일단은 집으로 들어가 향후 일정을 생각해 보는게 순리에 맞는것 같다. 환자복을 입은채 집에 들어가 중환자처럼 밥도 못먹고 눈감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처한 현실이 막막한게 한숨이 절로 난다. 같이 죽어야 될 자식이 살아 돌아온게 전혀 반갑지가 않은게 티가난다.
작년, 처음 암진단 받았을때 당장 수입도 없을테고 치료비도 해결해야 해서 대출받아 예비자금을 마련해 논게 있는데 작년까지는 내가 죽을둥 살둥 해매고 어머니는 비교적 눈도 보이고 정신도 건강하셔서 엄마가 보호자를 하겠다고 자신이 보관하고 있겠노라 했었다. 그리고 일단 나는 천만원 정도만 비상금으로 가지고 생활비는 따로 구해서 그동안 생활하고 쓰고 했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도리어 내가 어머니 보호자를 해야할 상황이 돼서 내가 돈을 보관하는게 맞는것 같았다. 현재 배를 갈라논 상황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무리고 택시로만 움직이려니 콜 부르고 가까운 거리만 이동해도 몇만원은 기본인지라 향후 감당이 될것 같지가 않아 움직이려면 당장 차가 필요할듯 해서 보관해논 돈을 달라고 했는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됐다.
엄마가 의사말대로 내가 몇개월 안에 죽을거라고 철저하게 믿고는 자기도 깔끔히 마무리 한답시고 치료비로 마련해 논 돈을 요 근래 한꺼번에 다 써버린 것이다.
동생 미국에서 왔을때 결혼식때 아무것도 못해준게 걸렸다면서 목돈을 쥐어주고 아버지 집 옥상 방수공사도 그돈으로 아낌없이 8백만원 이란 초대형 바가지 써주고 그동안 생활비로 쓰고 손자손녀들 사달라는거 먹는거 푸짐하게 인심 팍팍 쓰고 ..내 치료비 목적으로 마련한 돈이지만 어차피 나도죽고 자신도 곧 죽을거라고 철저하게 믿고 주변 정리 한다며 벌린 일이다..
"누가 이렇게 오래 살아있을줄 알았나.. 의사가 그때 분명히 6개월 말했는데.." 의사탓을 하면서 "난 몰라.. 나 죽으니까 괴롭히지마...니가 뭐라 말하는지도 하나도 안들려.." 신경 쓰기 싫다는듯 무심하게 나오는데 정말 울고싶은데 뺨을 이리저리 찰싹 찰싹 때리는듯 하다..
내가 수술하고 전화했을때부터 엄마가 그다지 반가워 하지 않는 태도가 비로서 이해가 간다. 치료비로 마련한 돈을 다 써버렸으니..자기 계획에 어긋나는 일만 벌어지는게 엄마도 짜증나고 피곤한가 보다..
이번에 응급실 실려오면서 엄마가 내 지갑에서 현금이랑 카드랑 싹 빼버린것 자체가 내가 살아난다는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말이다. 병원에 있으면서 현금이 없으면 군것질을 못하고 매점가는 재미가 없으면 병원 생활은 버티기 정말 지겹다. 다시 채워 놓으라고 말하고 그동안 제과점과 편의점에서 커피랑 불량식품 사먹는데 돈 정말 아낌없이 썻다.
이미 벌어진 일 가지고 속상해 하고 제정신이 아닌 엄마를 원망하고 탓해봤자 부모 자식간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일단, 앞으로 일을 어떡게 수습해야 하나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새로 차살돈 여유가 없다는걸 듣자마자 우선적으로 시골에 폐차를 맡긴 선배에게 전화를 건다. 부탁 받아놓고는 미적미적 미루는 성격이 이럴땐 도움이 된다. 아직 폐차 맡기진 않았다고 한다. 일단 폐차 진행을 스톱 시키고 내가 며칠안에 내려가 짐정리도 할겸 수리를 하겠다고 해 놨다. 운 좋으면 마후라 터진것만 교체하면 당분간은 타는데 지장 없을 것이다.
다행히 병원비는 이번에 입원비 처리 하면서 앞으로 무슨일이 닥칠지 몰라 향후 수술비까지 지원금 알아보고 미리 세이브 해놨다. 수술을 하게돼면 대수술이 될테니 그때가서 막 수술마친 중환자가 지금처럼 돈마련 하러 돌아 다닐수도 없을테고 일단, 지원금 가능한건 당장 타서 사용하기 보다는 모조리 병원에서 쓰게끔 세이브 해놓는게 지금 상황에서는 심적으로 안심이 된다. 적어도 곧 죽을지도 모르는 환자가 병원 치료비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집에가서 일단 돌아가는 사태를 파악하고 시골에 내려가 차를 고쳐서 타고 올라오기로 당장 급한 일정을 잡는다. 당장 내일부터 똥차라도 굴러다니는 차가 있어야 요양병원을 가건 통원치료를 다니건 거동 할수 있게된다. 다행히 후배가 시골까지 가게문을 닫고 내일을 봐 주겠다고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아니었음 대중교통을 타고 터미널까지 나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창자를 끄집어낸 현재 상태에서 그게 가능할것 같지는 않아 고민중 이던 참이다.
항암 치료가 빠르면 3개월 일반적으로는 6개월 걸린다는데 최소 그동안은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낸 이 상태로 버텨내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수술하게 돼면 죽던지 살던지 그때 결판이 나겠지만 그 전까지의 시간은 정말 짜증나고 고약한 삶의 고행 시간이 아닐수 없다..항암 받다가 죽는 경우도 있을테니 이래저래 ㅈ 된건 확실한듯 싶다..
엄마가 치료비로 마련해논 비상금까지 전부 의사말만 믿고 당연히 죽을거라 생각하고 정리차원에서 다 써버렸다는 말을 들으니 이야 울고싶은데 뺨을 찰싹 찰싹 때리는구나..ㅋㅋㅋ 삶이란게 정말 이래저래 고약 스럽기가 끝이 어딘지 막가는지라 감탄이 절로 나온다..거동이 힘든 환자에게 돈이란 곧 생명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아무래도 돈이 없으면 심적으로 위축될수 밖에 없다.
대단해.. 너 삶이란거 말야..이 고약한 시간들을 어떡게 다루어야 잘했다고 할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냥 일상적인듯 받아들이는 삶의 마스터가 되는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지옥이 편안하게 느껴지려면 그곳이 집인 악마가 되면 되는건가?
무엇이 됐건 나를 통과해 가는 고통과 불행에 궂이 힘들여 맞설 필요는 없을것 같다.. 그냥 통과 되는걸 무심하게 지켜보면 된다..억지로 죽을 필요도 없고 살려고 억지 필 필요도 없이 그냥 삶이란 흐름에 맡기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고 통과 되기만 기다리기로 한다..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가 한말인지.. 정말 나에게 딱맞는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