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Ah May 28. 2018

아날로그 적인 삶을 누리고 싶은..

비효율적이지만 매력적인 삶의 방식 아날로그..


지금의 젊은 세대는 태어날때부터 디지털 문화를 접하며 커온지라 아날로그 삶에대해 공감을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우리 세대는 20대 청춘일때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고 PC 보급이 되면서 정신없이 모든 생활들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가정마다 쌓여가는 종이 신문지가 점점 사라졌고  연인들의 관심사 삐삐 호출기는 몇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고 요즘은 컴퓨터 카메라 비디오 녹화기 MP3 플레이어 까지 전부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주는 형국인지라 혁신적인 디지털 기기들도  수명이 얼마가지 못했다. 그것이 불과 이십 몇년전에 한번에 불어닥친 변화이다.


이십년전에 누군가 하나의 기기로 전화도 주고받고 화상통화도 하며 인터넷에 음악플레이어 동영상 녹화 계산기 등등 지금의 스마트폰을 이야기하면 정신나간 헛소리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십년전 까지는 각 가정마다 세탁기 크기만한 컴퍼넌트 오디오가 대부분 하나씩 있었는데 맨위에는 LP 턴테이블 그리고 증폭앰프에 대형 스피커가 딸려있어 음악 감상 이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나역시 그러하여 엄청난 분량의 LP들을 사모았다. 30년전 물가로 원판 중고 재즈 LP가 새것은 5만원 중고 만원 이었으니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원판 LP한장에 십만원 이상 한다는 이야기 이다..


요즘은 턴테이블에 수백만원 상당의 아날로그 진공관 앰프로 LP 를 듣는다는 것은 여유있는 사람들의 사치스런 취미가 돼어 버렸다.


얼마전 자기집을 장만하고 거실에 턴테이블과 진공관 앰프를 마련했다는 후배에게 창고에 박혀있던 나머지 LP 수백장을 줘 버렸다.. 나에겐 과거 사모았던 LP 와 CD, DVD 등은 공간만 차지하는 짐덩어리가 된지 오래다.. 공간에서 여유롭지 않은 나같은 일반인은 SD카드에 MP3 를 담아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는것 정도가 딱 적당하다.


만화책의 경우도 마찬가지.. 작은 msd 메모리에 수천권의 만화를 담아 타블랫으로 보는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아날로그 책으로 그만한 분량을 지니고 있으려면 넓은 서재는 필수이기 때문에 현재 여건상 가능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종이를 직접 만지며 책을 보는것에 대한 갈망 이랄까..


결국 진열할 공간도 없으면서 ‘원피스’ 만화책 전권 모으기를 저질러 버린다.. 하루만에 소장용으로 60권분량을 사모았다..



이치적으로 따지면 관리 곤란에 흥미가 사라지면 또다시 내버려야만 하는 짐 덩어리를 사모으는 행위인지라 정말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짓들인데.. 아날로그 적인 감성을 취하고픈 갈망이 이런 감당할 형편도 안되는 일들을 저지른다. 지금 내 형편에서 아날로그 서재가 갖고싶다니..


인간의 육체가 아날로그 이기 때문에 디지털 컨텐츠 보다는 비효율적인 아날로그에 더욱 친숙하다. 내용은 같을지라도 형태가 없이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수천권 분량의 파일들 보다 보관이 어려운 아날로그 종이책들을 사모으는 행위는 주거 공간에 여유있는 층이 누리는 특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아날로그의 감성을 향한 갈증.. 직접 실물을 만져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이런 쓸데없는 낭비(?) 를 알면서도 저지르게 만든다..



오늘은 햇살이 따뜻한데다 이틀간 잠을 안자 노곤노곤 달콤한 졸음을 즐기면서 포트소독을 위해 병원을 들렀다.. 그리고 14년을 알고지낸 지인이자 친구로 부터 손으로 직접 짠 여름용 비니를 선물받고 아날로그적 봄나물 밥상과 숲속에 위치한 목가적인 카페를 찾아가 후식과 진한 커피를 즐긴다..


숲속에 감춰진 외진 카페인데도 직접 빵에다 쿠키등을 구워서 파는데 파리바케트 빵보다 고급지고 맛있다.. 커피와 음식들도 제대로 된 쉐프 매니저를 갖추고 있음이 확실해 손님들이 여기저기 카페에 가득하다. 비니를 선물해놓고 친구는 제대로 된 내 머리 사이즈를 잰후 눈앞에서 또다른 맞춤형 비니를 짜기 시작한다.. 단순히 바늘하나와 실만으로 뚝딱뚝닥....신기하다 신기.. 암환자용 여름형 수제 맞춤 비니다.. 참으로 땡큐..


만족스러운 음식과 제대로 된 아날로그 목가적 분위기 인지라 나중에 다시찾아 오기위해 주소를 알아둔다..



아직 제대로 진열할 공간도 없이 쌓아두는 원피스 만화책들.. 몇달에 걸쳐 며칠밤을 세워 830편 달하는 애니메이션을 현재 연재분량까지 다 보고난후라 다시한번 종이책으로 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오늘밤도 제대로 잠자긴 글렀다.. 아날로그 육체는 역시 돌아다니고 햇살 쬐주고 맛있는거 먹여주고 직접 물리적인 행위들을 위해 필요한것이다.


이미 몸이 망가진후라 더이상 건강에 신경 안써도 된다는 점이 더 홀가분하게 만든다.. 건강은 있을때 지켜야 그 의미가 있다. 지금와서 건강에 신경쓰고 노력해봤자 잘려나간 장기들이 다시 생길리는 없고 병은 낫는다란 기대감이 있지만 없는 장기는 다시 생길꺼라는 기대감이 안생긴다..


즉, 장기가 없어서 괴롭고 힘든 부분은 감수하고 극복해야될 사안일뿐이다.. 이유없이 무작정 괴롭고 힘들기만 한 삶은 절대 강요해선 안된다.. 괴롭고 힘들어도 육체를 자니고 살아있는 순간까지는 이유가 있을거야.. 살다보면 알게되겠지..


환자라는 생각이 육체를 지배하게 되면 현재 내가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체중45킬로 뼈만 남고 안에 중요장기들이 사라진 텅빈 육체지만 디지털 의식이 아날로그 육체의 제한들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래서 이틀동안 잠안자도 멀쩡하고 이것저것 안가리고 아무거나 먹어대고 책 구하러 하루종일 싸돌아 다니면서 커피마시고 이것저것 할수있는것 같다.


햇살속에서 운전하면서 조금씩 달콤하게 졸았더니 이젠 그다지 졸립지가 않다.. 수술한 이후로 침대에 누워 편하게 자는 즐거움이 사라진 지라  자는것이 나에겐 그다지 즐거운 행위가 아니다.. 오늘밤은 원피스의 즐거움을 아날로그 종이책으로 다시한번 시간제약 없이 즐겨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을 살아보자. 햇살 비치는 봄날 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