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줄기 다른 만남에서 역사의 방향이..
"클레오 파트라의 코가 한치만 낮았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가들 사이에서 나온 무척이나 유명한 말이다. 이것은 카이사르가 클레오 파트라를 이집트의 여왕으로 세운것이 단순히 클레오파트라의 미인계에 넘어간 결과라고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를 움직여 역사를 바꿔 버리고 세기의 미녀 아이콘이 되어버린 클레오 파트라 이야기는 시대마다 계속해서 재해석 되어 리메이크 되는 단골 소재다. 헐리우드 에서는 비비안 리.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등.. 당대 최고의 미녀배우들이 클레오 파트라를 연기했고 전부 제각각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해 역사를 바꾼 세기의 로멘스로 꾸미기 위해 각색들이 일어난다.
지금의 관객 입장에서 보면 그 신파적 구조에 실소를 금할수 없는 비비안 리 주연의 1945년작 시저와 클레오 파트라.. 달빛 스핑크스 아래 갑돌이와 갑순이가 만나듯 클레오 파트라가 카이사르의 정체를 모른채 로멘틱한 만남을 보여주는데 희곡이 원작이라 그런듯 하다. 지금 관객 눈높이 에서는 하품 나올만큼 신파적 이지만 고전은 시대를 감안하고 봐야 한다.
실제 역사는 정치적 위기에 몰린 클레오 파트라가 최후의 수단으로 이집트를 방문한 카이사르를 유혹하기 위해 양탄자에 쌓여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야밤에 몰래 007작전을 벌였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 들여진다. 그리고 실제로는 클레오 파트라가 썩 미인이 아니며 지적 매력으로 카이사르를 사로 잡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클레오 파트라는 과학,수학에 능통하고 7개국어를 구사 했다고 한다.)
카이사르의 경우 근대의 유럽 문명을 디자인 하면서 개인적으로 카르마가 될만한 일은 벌이지 않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하늘이 맡긴 완벽한 공적 업무에 유일하게 인간적으로 오점을 하나 남겼다면 그것은 내전을 종식 시키고자 도망가는 폼페이우스를 쫒아 가다보니 뜻하지 않게 동양의 이집트에 들어선 것이고.. 클레오 파트라 와의 만남은 서양과 동양의 이집트, 두줄기 다른 역사 라인을 엉켜 꼬이게 만든다.
클레오 파트라를 이집트의 여왕으로 내세우면서 간섭해서는 안될 남의 집안인 이집트의 역사를 뒤틀어 바꿔 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카이사르 행적의 공적 라인이 아닌 궂이 안해도 되는 외전에서 잠깐 막간 외도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집트는 보통 아프리카로 분류 돼지만 고대 로마 시대때는 세상을 동서로 나눠 이집트 부터 동양으로 구분했고 태양신인 파라오의 뿌리가 동양이다.)
단순히, 클레오파트라의 미색에 휘둘려 냉철한 카이사르가 그런 오지랍 결정을 내렸다고는 볼수없고 형제끼리 결혼하고 서로 파벌로 죽이는 막장 왕가 싸움을 보고 카이사르가 한심해서 정리를 해줬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적이 되었을 지언정 로마의 영웅인 폼페이우스를 처형한것에 대한 같은 로마인 으로서의 복수 차원도 있었을거라 본다. 이집트의 어린왕은 카이사르의 적인 폼페이우스의 목을 선물로 바치면 카이사르가 좋아할 것이라 착각했지만 카이사르는 자신의 전 사위이자 영웅의 어이없고 불명예 스러운 최후를 알고는 분노했다.
물론, 카이사르 개인 판단으로는 망조가 들은 왕조의 철부지 어린 동생들 보다 똑똑한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를 통치 하는것이 이집트의 발전을 위해 맞는것 같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이집트는 파라오라 불리는 구역 신들의 관리속에 원래의 계획이 있던 법이다.
자기들끼리 싸우다 망하건 말건 간섭하지 말아야할 남의 구역 일이었다. 어쩌면 카르마가 될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옳다고 판단했고 순간적 사랑에 눈이멀어 기꺼이 카르마를 감당하리라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클레오 파트라가 대담하게 작전을 잘 세운것이고 여왕 자질이 돼 보이기에 카이사르가 그런 판단을 했으리라 본다.
클레오 파트라가 여왕이 됨으로 인해 프톨레마이오스 집안의 어린 남동생 (클레오 파트라의 동생이자 남편)왕과 손잡고 원래 여왕이 될 운명 이었던 아르시노에 공주는 역사속에서 이름없이 비운의 운명으로 사라지게 된다.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원래 이집트 역사의 주역은 죽이되건 밥이되던 간에 어린 남동생이 왕이 되던지 짝을 이룬 아르시노에 공주가 됐을것이다.
아르시노에 공주는 카이사르 에게 맞서다 메두사 신전에 갇혀 운명을 마감 했다고 알려지는데 이것이 카이사르가 2천년전 남긴 유일한 오점이자 동양과 연결되는 카르마가 된다.
그 일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간섭해선 안되는 남의 역사이고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일에 개인 에고가 끼어들어 벌인 일이라 그렇다. 아르시노에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나타나 다 된밥에 원래의 운명을 빼앗아간 이방인 카이사르가 철천지 원수처럼 느껴 졌으리라..
클레오파트라 역시 여왕이 되고 난 이후 한때 불장난이 아닌 정식 연인이자 카이사르와 로마 에게 자신이 낳은 카이사르 아들을 로마의 후계자로 인정 해달라고 무리수를 둔다.
그렇게 로마에 정치적 부담감을 주다 카이사르가 죽으면서 카이사르의 후계자들 사이에 내전을 일으키게 만들고 패해 비극을 맞는다.(카이사르의 정식 후계자 옥타비아누스가 아예 클레오파트라 일가 씨족을 전부 멸족 시켰다고 전해진다.) 카이사르가 왜 자신의 친 아들을 공식 후계자로 인정 안했는지 그 깊은 뜻을 클레오 파트라는 몰랐던 것이다.
거대한 로마제국을 관리 통치 하려면 인척으로 될 문제가 아니란걸 카이사르는 알고 있었다.. 카이사르 본인도 황제가 되려 한다는 오명을 쓰고 원로원에 살해 당했고 (아이러니 하게도 단 한순간도 황제가 되지 않았음에도 카이사르가 죽고나자 그의 이름은 각 나라에 황제를 뜻하는 고유명사' 카이저,캐사르, 차르,시저..'가 돼어 버렸고 사람들은 카이사르가 태어난 7월달을 줄리어스 이름을 따서 July 라고 한다. )
클레오파트라와 아들 카이사리온, 그리고 아르시노에와 프톨레마이어스 이집트 왕가.. 새로운 문명의 기틀을 세우는 신들의 위대한 역사 틈새에서 벌어진 이 세기의 로멘스는 누구도 해피엔딩이 되지 못했고 동서양 풀어야할 카르마만 남겼다.
역사가들이 남아있는 기록과 흔적을 통해 2천년전 서양 문명의 건설중에 일어난 세기적 사건인 카이사르와 클래오파트라 의 진실을 계속 연구 한다지만 내막은 아카식 레코드를 통해 아는것이 사실은 가장 간단하고 정확하다. 단지, 인간들 세상에서는 증명할 길이 없고 증거가 없으므로 지나간 모든 역사가 그렇듯 개인 추측 내지는 내 개인 관점일뿐이고 진위 여부가 중요한것도 아니다. 인간들이 알건 모르건 신들의 역사는 지나가고 있으니까..다른 역사학자 들의 가설들 처럼 그런 썰도 있을수 있다 라고 알고 지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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