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Ah Dec 26. 2019

인간 의식 장벽의 한계 '깨달음'

장벽에 도달해 하는 선택..


50넘어 인간의 육체라는 틀에 갇혀 노화, 질병과 고통으로 막장까지 내몰리다 내장까지 다 잃고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 있다.


요즘 같은 50중반대 지인들을 만나면 여기저기 삐걱대는 육체에 대한 대화를 인사처럼 나누곤 한다. 그럴때마다 내가 해주는 말이 있다.

 

"육체를 에고가 억지로 통제하려 하지 말라" 이다.


에고가 육체를 지배하고 통제할만큼 똑똑하고 지성을 갖춘 의식이 아니라는것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육체를 원활하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면에 있어서 에고가 인위적으로 하는 통제와 노력은 대부분이 프로그래밍된 몸의 세포들 본능이 가려는 방향과 어긋나 삐걱대기 일쑤이다. 의학계가 말하는 건강 상식 이란것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만능 레시피는 아닌것이다.


인간들 개성을 무시한채 전체 수치에 맞춰 레시피화 된 건강 수치와 상식들은 자신의 육체가 운 좋으면 스탠다드로 잘 들어맞고 아닌 경우는 도리어 역 효과를 내기 쉽다. 그것을 부작용 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육체를 에고의 욕망이 이끄는대로 무책임하게 방관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진정한 육체의 지배를 원한다면 에고의 동물적 욕망들을 다스려 세포들의 진화를 올바른쪽으로 인도할줄 알아야 한다. 세포들은 사고하는 지능보다는 프로그래밍 된 생존본능에 의해 환경과 자극이 주는 방향대로 무작정 나아가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군대를 이끌지 못하듯 미숙한 에고 의식이 육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것은 당연하다.


결론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흉내내는 억지가 아닌 에고 의식 스스로가 실제로 성숙하게 진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가 하고 싶은것을 참아가며 억지로 점잖은척 어른흉내를 내는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식이 어른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성숙한 의식을 흉내 내는것과 자연스럽게 성숙한 의식 자체로 존재하는것은 완전히 다르다.


'균형과 조화'


의식과 육체의 조화에 관해 인간으로서 50년을 실제로 살아보니 조금씩 인간시스템 윤곽을 알겠다. 지난 3년간의 고통은 깨달음을 얻기위해 지불해야 할 수업료 라고 속편히 퉁친다.

 

'깨닫는다' 라는 의미가 껍질을 깨고 끝에 닿는다 라는 말이다. 무엇이던지 한단계 진화를 이루어 내려면 끝까지 가봐야 그 한계의 벽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것을 깨고 나가는가 그저 닿기만 하는가 차이가 깨닫는것과 진화의 차이이다. 단순히 깨닫는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수 없다. 깨달음을 얻고 아! 그렇구나 알기만 하고 삶은 끝나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간에게 깨달음이 힘든것은 에고의 생존 본능이 항상 알수없는 끝을 보기를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삶이 자신의 의식이 감당할수 있는 중간의 안전지대를 서성대며 즐거움이 가득하기 만을 원한다. 아래로 끝을 보던지 위로 끝을 보던지 인간이란 의식 장벽의 끝까지 도달하는 사람은 인류 역사상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끝까지 파헤쳐 도달하는 깨달음도 극소수 인데 그것을 넘어 스스로 진화를 택한 인류는 아직은 전무하다고 하겠다. 붓다도 그러하지 못했고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성인들 대다수가 깨달은뒤 젊은 나이에 비명 횡사해서 인류에게 하나의 진화 샘플 모범이 되어주진 못했다.


그들이 남긴 경전이라는 그 가르침 레시피가 수준미달의 인간들에겐 얼마나 엉터리 이고 원시 토테미즘적 인지는 공부하고 믿는다는 그 제자들이 수천년간 결과물로 증명해 오고 있다.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흐의 악보를 들고 열심히 음표만 눈으로 외우는 식이고 앞서 실패한 수많은 전철을 수천년간 계속 똑같이 반복하는 에고의 무지를 보고 있음이다.


악보 그림은 보는데 연주를 못한다면 그 악보가 무슨 음악인지 알수가 없는법이다. 대부분 영성 단체나 종교 단체들이 전부 말로는 깨달음을 논해도 같은 취미를 즐기는 독서모임 내지는 동호회 수준 이라는 것을 보면 알수있다. 악보는 있다고 계속 공부한다고는 하는데 음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랫동안 공부했다는 그들의 품성이나 행태들을 봐도 전혀 본받을만 하지가 않아서 그 가르침 이라는 말들이 나에겐 전혀 와 닿지가 않는다. 인류 평균 지능이 아인쉬타인이 죽고나서 많이 하향된것 같은데 단순히 종이 가진  IQ 문제만은 아닌것 같다.


인간들이 왜 그런 원숭이 같은 무지함 의식의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직접 살아보고 이해가 된다면 인간을 드디어 제대로 알게된 것이다. 그렇게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기까지 50년이 걸렸다. 인류 평균 수명이 50년 넘은지는 얼마 안됐다.


50년, 짧지않은 시간이지만 극과극의 계층별 경험을 한 생에서 전부 겪어보고 이해하기엔 정신없이 바빠야만 가능하다.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기 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낙하 하는편이 더 가능성이 크고 빠르다. 위로 갈수록 자만하고 안하무인 (개골이 올챙이 쌩까듯) 되는것이 에고의 성질임을 알게되면 깨달음을 위해선 위에서부터 훝어서 낮은곳으로 내려 오는편이 확률적으론 더 유리하다.  



허약한 에고 의식은 그 무지를 '절망'과 '두려움' 이라고 표현한다. 아주 작은 한 단계 내려 오는것도 두려워 한다. 그러나, 안전 지대만을 서성이며 즐거움 만으로 깨달음의 장벽에 도달하려 하는것은 복권당첨 보다 힘든 확률로 무일푼에서 돈을 벌어 빌게이츠 급의 거부가 되는것과 마찬가지 확률이다.


위기는 곧 기회란 말이 있다. 생존본능에 의해 한계를 깨닫고 미지의 세계로 조심스레 한발을 내딛을때, 스포츠 기록이 계속 새롭게 쓰여지는것 처럼 한종이 새로운 의식과 육체로 진입 하는것을 우리는 '진화' Evolution  라고 말한다.


위기를 두려워 하지 말라. 바닥이라고 해서 절망하지 말라.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듯, 한계를 극복하고 작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식확장 으로 나아갈수 있는 기회임을 아는것이 곧 '깨달음' 이다. 지금이 그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진화의 한발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Andrea Bocelli - Blue Christmas:

https://youtu.be/82RJjL1CYmM


매거진의 이전글 과한것 보다 조금 부족함이 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