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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ul 12. 2020

'자존심'으로 위장한 '동물적 방어본능'..

지기 싫은 '보호본능'은 '자존심'이 아니다.


에고들의 가장 어리석은 착각중 하나가 자신의 지기 싫은 아이들의 막무가내 식  '고집'을 '자존심' 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착각은 나이를 먹을수록 고착화 되고 강화되어 대부분의 노인이 된 에고들이 갖고있는 본인 스스로 '자존심' 이라고 믿는 감정의 본질 대부분은  단순한 어리석은 '고집(아집)' 이다. 인이 틀린것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못은 사과 하는것이 진정으로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범죄자들이 본인의 잘못을 사과는 커녕 범죄 욕망을 존중해 달라고 떳떳하게 항의하는 것처럼 동물적 욕망을 존중해 달라는 에고들의 다수결 요구는 그들끼리 지키면 되는 '룰'의 문제로 자존심과는 무관하다.


하는짓은 쓰래기 짐승과 같으면서 그것을 지적 당했을때 거부하고  화내는것은 자존심이 아니다. 



돼지가 게걸스럽게 아무거나 먹는걸 막아보려고  막대기로 찔러서 돼지가 화내는걸 돼지의 자존심 이라고 볼수는 없다. '내 성질을 감히 건드려?' 그런것은 자존심이 아닌 단순한 '동물적 방어(보호)본능' 이라고 한다. 인간들 중에서도 동물적 방어본능을 자존심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옳지 않은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세상이 원래 다그런거야' 라며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물러서지 않는 고집이 강하다. .


특히나 사회적 억눌림이나 가난에 찌들어 자격지심이 가진자들에 대한 분노가 되면 '동물적 보호본능' 을 자존심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더 강해지는것이 일반적 중생 에고들의 특성이다. 그런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갖게돼면 자신이 당한것보다 남에게 더한 갑질로 한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영성계에서 겉으로만 도를 닦는다는 사람들도 이런 무식 경향이 강한것이 그런자들은 애초 마음 닦는다며 영성계 뛰어든 이유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금전으로 억눌린 삶에 대한 '보상심리' 였기 때문에 그 결말은 항상 돈과 존경 성적 착취등을 구걸하는 쪽으로 귀결된다. (석가모니 모든 물질적 유혹을 뿌리치고  남보다 붓다가 쉽게 될수 있었던 점은 태생이 왕자로 이미 모든 물질적 부와 권력의 정점에서 그 허망함을 깨닫고 진리를 향해 정진한 때문이다. 티벳 불교의 창시자 '파드마 삼바바' 역시 왕으로 예정된 왕자 출신다.)


돈과 힘이 있어야만 자존심을 지킬수 있다라고 믿는다면 자존심의 본질을 착각하고 있는것이다. 


그런 착각속에 빠지면 옳고 그른것 보다는 경쟁에서 뒤지는것과 건드림을 당하는것이 무조건 싫고 상대의 말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격 당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분노를 표출하곤 한다. 칭찬과 긍정이 부족할때 발생되는 일종의 정신병 증세이다. 그저 누가 단지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것 만으로도 살인을 저지르고 여자들은 치한으로 죽일놈처럼 몰아가는 더 한 가해를 저지르면서도 자신이 피해자라 항변한다.


한국의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런 피해의식 망상속에 사로 잡혀 있다. 가끔씩 외부로 터져 나오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잠재적인 묻지마 범죄자들이 사회 곳곳에 양성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단순히 무시당했다 라는 감정을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다 라고 착각한다. 진짜 자존심이 무엇인지 이해를 못한 때문이다.



자신이 옳은 사람, 정도를 가고 있다 라는 자부심이 있을때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심' 이란 단어가 성립이 된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저급한 동물적 욕망(대부분 타인에겐 범죄가 되는)쫒으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한 존중을 바란다는 것이 모순이란 사실을 인지할만큼 에고는 현명하지 못하다. 성인에게 올바르지 못한 동물적 분노는  스스로가 동물과 닮은 존재임을 주장하는 부끄러운 짓이다.


자신이 신성으로 올바르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자라고 자부하는 자들은 양심에 비추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따르지 않으며 실수로 잘못한 일에는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위해 상대가 아무리 약자 일지라도 진심으로 사죄하는 법이다.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무조건 자신이 공격 받았다고 물어뜯는것이 아니라 아닐땐 물러설줄 알고 잘못과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만이 지킬수 있다. 무작정 동물적 보호본능에 얽매여 있는 자가 아닌 옳고 그름, 고집과 자존심을 엄격히 구분할줄 아는 자가 지킬만한 진짜 자존심을 지닌 현명한 사람이다. 


무시 당했다고 한탕 해먹기 경쟁에서 밀렸다고 자존심이 상처 받았다고 아우성 치는 소리들을 들어보면 대부분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심이 아닌 피해의식과 동물적 보호본능에 충실한 분노의 표출일 뿐이다. 단순한 피해를 넘어서 여성들에겐 성추행이란 단어가 아무데나 남성들을 공격할때 갖다 쓰이는 살상 무기가 됐고 범죄자들 인권과 자존심(?)지켜주기 위해 상식에서 납득 불가한 솜방망이 처벌이 남발된다. 사회틀을 유지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공직자들이 부끄러움을 망각하고 개인 탐욕에만 몰두하고 에고들의 난장판이 벌어지는 지금의 탁한 시대는 누가봐도 확실한 말세의 끝자락이다. 중생들은 각자의 욕망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흐름에서 정신을 제대로 차리면서 살기가 힘들다.


서로 물고 뜯고 존엄이라 주장하는 그 모든 욕망들이 카르마의 격랑속에 휘말려 허우적대는 에고들의 비명처럼 들린다.. 진작에 치유 되었어야할 내면의 상처들이다.  불타의 자비를 구하는 자가 없고 행하는 자가 없는데 자비가 나온들 자리잡을 데가 없고 쓸데가 없다. 슬프면서 안타깝고 애련한 마음이 이런것이리라..


Cecilia - The Prayer:

https://youtu.be/Id1OSUexk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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