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팝이 좋아? 네.

평론은 주로 대중과 상관이 없는데도?

by 예미

“왜 평론가는 유명한 음악을 다루지 않나요?” 평론가들이 주로 참여하는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 역사상 최고의 앨범이나 노래 같은 리스트들이나, 아니면 한국대중음악상 같은 곳의 선정작 면면을 보면 그 질문이 왜 나오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곳의 선정작 치고 차트에서 눈에 보이거나 주변에서 이름을 들어본 작품이나 아티스트는 거의 없다시피 하니, 혹자는 그런 것을 보며 ‘대중성과 작품성의 괴리’ 혹은 ’그들만의 세계‘ 등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 의문을 막연히 가지던 나는 이후 시간이 지나 팝을 다루고 팝스타를 좋아하며 평론에 발을 올린 사람이 되었다. 평론가가 보다 마이너해보이는 음악과 가까운 직책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내가 기록하고 다뤄보고 싶은 토픽은 여전히 널리 이름을 날리며 기억되는 음악과 그 기억되는 과정이라는 것도 나날이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내가 몸담은 직군의 속성과, 그 속성을 매일같이 접하는 환경 안에서 내 영역을 고민하던 과정을 조금 풀어보려고 한다.


마니아는 전문가가 된다

먼저 전문가의 전제조건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 주변의 여러 분야 전문가들을 살펴본다면, 비전문가 이상의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평론가도 전문가의 일종이므로 비전문 청자의 관심사 바깥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 평론가의 전문성은 어떤 방식으로 쌓일까? 내가 지켜보기로는, 대중음악평론가의 전문성은 대체로 ‘덕질’을 통해 쌓인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문화상품을 주로 다루는 분야의 특성상, 이 평론가들도 다채로운 문화상품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탐닉하며 자신의 세계를 쌓아 올리며 성장한다. 이 마니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어 자신의 견해를 교류하고 지식을 쌓으며 실력을 키우는데, 이런 사람 상당수가 음악 및 문화산업 종사자로 성장한다. 이 종사자 직군에는 가수나 작곡가도 있지만 평론가도 포함된다.


평론가 대부분이 마니아로 시작하는 만큼, 접근성 낮은 음악까지 관심 갖고 열광하는 건 당연할 테다. 그리고 평론가로 살다 보면 보다 소규모의 뮤지션과 연결 지점이 많아지게 된다. 아이유나 임영웅같은 사람들이 평론 한두 마디를 잘못 받는다고 생계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앨범 발매 비용이 필요한 인디 뮤지션이라면, 지원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평론가는 당신의 커리어를 좌우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평론가를 필요로 하는 영역은 주로 창구 확보가 절실히 필요한 작은 뮤지션 및 소규모 업계인과 맞물리는 곳에 있으며, 이런 뮤지션들의 열악한 상황을 잘 아는 만큼 평단에서는 유명세가 부족하지만 실력 있는 뮤지션을 발굴하는 것을 일종의 책무로 접근하기도 한다. 이러한 직업적 현실이 평론가의 관심 분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팝이 좋아

여기까지가 일반론이라면, 이제부터는 내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평론가 직함을 단 사람 치고 팝으로 통용되는 음악과 뮤지션을 무척 좋아하며 그것을 주 탐구 주제로 다루는 사람이다. 평론에 많이 등장하는 보다 소규모의 뮤지션에게, 이 분야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큰 관심이나 열광을 보내지는 않는 편이다.


나를 평단까지 이끈 주된 탐구 주제는 팝의 영역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이를 넓혀 나가는 데에 기여한 뮤지션이었다. 내가 살며 가장 오래 좋아했을 뮤지션인 타블로를 예로 들자면, 그는 팝, 록, 가요, 힙합을 들으며 성장한 뒤 한국 힙합이라는 서브컬처 씬에 투신하여 뮤지션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팝 싱어송라이터이자 힙합 뮤지션으로 탁월한 역량을 통해 다수의 청자를 매료시키며 국내 힙합 청자와 종사자의 수를 늘리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나는 그의 앞에 놓인 수많은 의견 경합을 접하며 평론가로 성장했다. 에픽하이 같은 팀은 힙합 서브컬처를 파고드는 스페셜리스트와 팝, 가요 전반을 다루는 제너럴리스트, 아이돌팝을 다루는 또 다른 스페셜리스트를 한 데 끌어모아 논쟁을 일으킨다. 에픽하이 앨범에 이즘리드머가 상반된 논조로 리뷰를 다는 건 결국 이 여러 견해 간의 경합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놓는 것에 가깝다.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팝과 서브컬처를 같이 배웠고, 여러 관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논쟁적 뮤지션이 오랫동안 활동하며 끝끝내 자신의 족적을 대중음악사에 남겨놓는 모습을 보며 그를 오래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에픽하이를 검색하다가 블랙뮤직 커뮤니티와 씬의 존재를 접했지만, 그 씬에 천착한 내부인 중 타블로만큼 마음에 드는 뮤지션을 찾지는 못했다. 이센스 “이방인”이나 스월비 “Undercover Angel” 앨범을 마르고 닳도록 들었지만 이들을 타블로만큼 사랑하지는 않았다. R&B 보컬리스트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로, 탁월한 완성도로 찬사를 받으며 한국대중음악상을 들락거리는 명반을 만들어내는 이들보다는 휘성이나 크러쉬같은 대중가수로서의 정체성을 겸비한 이들에게 더 큰 관심이 갔다. 해외 아티스트를 대할 때도 비슷하다. 프랭크 오션과 위켄드 중 위켄드를 훨씬 좋아하는 거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나?



이런 고민을 거치며 내가 팝 특유의 활력과 압도감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나는 음악과 음악가의 여러 미덕 중 지금-여기의 이 세상을 대하는 치열함, 이에서 기인한 생동감과 그로 인한 몰입감을 유독 좋아한다. 완벽주의가 빚어내는 경이로운 완성도나 씬을 대하는 공동체의식 같은 것도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앞서 말한 팝의 몰입감보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광범위한 청자를 불러모으기 위한 안배의 과정이 미학적으로 색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현상에 유독 관심이 많다 보니, 결국 마니아 세계의 대가보다 너른 청자를 아우르는 팝스타에게 주로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팝의 생동감과 몰입감은 일정 부분 주류 음악이기에 가능한 규모와 퀄리티, 이를 가능케 하는 자본 투여에서 기인한다. 이 자본 투여의 결정 과정에는 거의 반드시 부조리가 있으며, 그 부조리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내 취향이나 관점이 자본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이 불쾌감을 알면서도 자본의 결정을 순순히 따르는 나를 볼 때면, 나도 결국 친주류적인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주류라는 정상성, 그 밖을 알려준 사람들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 진로를 고르는 관점도 음악 들을 때와 비슷했다. 음악을 들을 때도 주류이기에 가능한 활력을 좇던 만큼, 인생 진로도 주류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픈 욕망을 담아 골랐다는 이야기이다.


대중음악평론가는 사회적으로 큰 지위를 갖는 직업이 아니다. 사실 아주 큰 성공을 하지 않는 이상 문화예술을 다루는 직업 대부분이 그렇지만, 평론은 대성공을 거두어 부자가 된 사람이 나오기 특히 어려운 분야다. 대형 가수나 스타 작곡가는 1년에 수십억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벌지만, 평론가가 그렇게 돈을 버는 사례를 한 명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는가? 혹시 이동진을 떠올린다면, 이동진 같은 사람은 음악보다 저변이 넓은 영화 평론계에도 딱 1명 뿐이라는 걸 덧붙이겠다.


내가 전업 평론가가 아닌 회사 취업을 택한 데에는 음악평론가라는 직업의 불안한 입지가 크게 기인했다. 전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만큼의 수입이 극히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분야의 특성상, 평론가 대부분은 직장생활과 평론을 겸업한다. 좋아하기도 하고 잘할 자신도 있는 이 일로 내가 원하는 만큼 풍족하게 먹고 살기 어렵다는 점을 처음 알았을 때, 전업 평론가나 전업 필자의 풀이 더 넓은 미국이나 일본이 괜히 부러워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평론 업계에 전업 필자 시장이 좀더 넓었어도 프리랜서 필자보다는 월급쟁이의 삶을 택했을 것 같다. 오랫동안 지극히 보통의 삶을 간절히 원했던 걸 돌이켜보면 그렇다. 어릴 때부터 친구와 무던히 어울리는 평범한 여학생의 일상과 제대로 살고 있다는 인정을 원했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다. 날 유별난 사람으로 보는 불편한 관심과 고립이 지겨웠다. 유별나게 못난 사람 취급도 싫었지만 유별나게 특출난 사람 취급도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예술 근처에 으레 도사리는, 멋진 취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도 평범을 원하는 갈망보다는 언제나 작았다.



흔히들 안 알려진 음악을 들으며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굴고 싶어하는데, 반대로 학창 시절 나는 남들처럼 살고 싶어서 주위에서 들리는 케이팝에 귀를 기울였다. 그 나잇대 여자 청소년이라면 으레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나도 좋아해보려고 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건 원하던 만큼의 일상이 아니라 뜻밖에 필자로서의 밑천이었다. ‘I NEED U’ 부터 ‘DNA’ 까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케이팝의 성장 과정을 본 경험이 지금까지 이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지금껏 봐온, 음악을 다루는 주변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평범과 인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 만큼 이 중에는 음악 안팎에서 비주류의 영역에 나보다 훨씬 더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았다. 글을 통해 이런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서 기쁨과 혼란을 같이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환대해준다는 게 처음에는 마냥 감사했는데, 글 쓰며 만난 사람들과도 종종 가치관의 차이를 느낄 때면, 내게 어떤 사회나 공동체에 아무 이질감 없이 섞여드는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글로 내 세계를 넓혀가는 경험이 쌓이면서 알게 된 것은, 조금 모가 나 있어도, 온전히 어딘가에 녹아들지 못해도 아끼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되도 않는 애를 쓰지 않아도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역이 생기고 그걸로 조금씩 성과를 내 보니 삶의 질이 확 올라갔다. 그렇게 성과와 기회가 찾아올 때면 때로 ‘살길 잘했다’ 같은 날이 오는데, 이런 걸 느끼게 해준 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이 영역에 가능하면 오랫동안 의미 있는 것을 남기고 싶다.


참고 문헌 벽돌 쌓기

앞으로 어떤 음악이 팝으로 어떻게 통용되는지에 대해 꾸준히 기록을 남기고 싶다. 어디까지가 팝일 수 있는지, 어떤 음악이 어떻게 팝이 되는지는 계속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으니까 그걸 전공 분야로 삼으면 될 것 같다. 유명한 음악을 굳이 더 기록할 필요가 있느냐고? 아무리 음악이 유명하더라도, 어떤 종류의 팝과 향유 방식은 의외로 기록이 잘 안 된다.



4년 전 내 글에 ‘김나박이’를 다루려다가 이 밈을 가장 잘 다룬 출처가 나무위키의 김나박이 항목이라는 것을 알고 당황한 적이 있다. ChatGPT가 나오기 이전 대학에서 가장 많이 들은 주의사항이 바로 ‘참고문헌으로 나무위키를 쓰지 말 것’ 이었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창조한 지식이 정설로 둔갑하는 그 곳을 웬만하면 인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창을 파고드는 음악 청자의 밈이 웹진 같은 곳에 적히기는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보컬 감상이 음악 듣기의 큰 줄기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정작 참고할 만한 음악 매체에 그 줄기가 잘 적혀있지 않은 것이 놀라울 수 있다. 하지만 음악과 음악 청취 중 매체에 기록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매체나 책을 주로 읽으며 작품과 장르의 계보를 주로 다루는 언어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 밖의 영역을 쉽게 간과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비평 언어의 영역을 약간 벗어나 있어서 그동안 간과되어 온 음악과 청취의 영역은 아주 많이 있다.


이런 매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성향 상, 내가 관심 있는 팝의 영역이 기록 과정에서 간과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다. 이왕 참고 문헌으로 쓸 만한 창구에 닿을 기회를 얻었으니, 앞으로 음악과 음악 듣기에 대해 참고할 만한 기록을 많이 남기고 싶다. 적어도 나무위키보다는 참고할 만한 곳에 여러 기록을 남겨서, 훗날 나와 비슷한 분야를 다루려는 사람들이 나무위키를 보고 혼란스러울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내 방식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기여를 음악과 평론의 세계에 해 나가고 싶다. 그만두지 않고 계속.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8화10년이 지나 돌아보는 스물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