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CHAT-SHIRE” 10주년 리뷰
아이유 “CHAT-SHIRE” 앨범이 지난 10월 23일에 발매 10주년을 맞았다. 이 앨범으로 시작된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는, 아이유보다 여섯 살 어렸던 10대의 내게 20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내 나이는 어느덧 ‘스물셋’을 넘어간 지 오래다. 숱한 어린 사람들에게 나이 먹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아이유의 첫 발짝을 그때와 지금의 시점으로 돌아보려고 한다.
“CHAT-SHIRE” 수록곡을 처음 들은 곳은 고등학교 기숙사 방이었다. 기숙사 스피커로 들은 ‘스물셋'과 ‘푸르던' 속 아이유의 목소리는 분명 ‘너랑 나’, ‘분홍신‘은 물론 ’너의 의미’와도 다른 지점에 서 있었다. 학교 친구들과 교실에서 ‘스물셋‘ 뮤직비디오를 보니 그가 과거와 멀어져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이내 찾아본 ’스물셋’의 가사는 무척 흥미로웠다. 듣는 사람을 약 올리는 듯한 말투로 여러 혼란을 늘어놓는데 자세히 읽어보니 이쪽도, 저쪽도 말이 되는 얘기들이었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겠다는, 그리고 자신을 보는 여러 시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는 짜증 섞인 가사가 수시로 오르내리는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던 열일곱의 내게는 생각보다 크게 와닿았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해, 입시 제도가 학생에게 주는 혼란을 주제로 ‘스물셋‘을 개사하고 교내 공모전에 출품하여 장려상을 받았다. 정시, 수시를 따지기 이전에 입시는 다 운이니까 조금만 가볍게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사에 담았다. 그때의 나는 스물 세 살이 꼭 되어보고 싶었다. 스물 세 살이 되면 노래 가사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갖게 되는 건지가 궁금해서였다. 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생각을 음악을 통해 전달하는 아이유가 너무 멋있어서, 얼른 그와 같은 나이가 되어 그만큼 멋있어지고 싶었다.
스무 살이 된 2018년, 단발머리 아이유 사진을 들고 미용실에 갔다가 영 딴판인 머리로 나온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되니 내가 그 나이가 된다고 아이유만큼 멋있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스물셋’은 고사하고 ‘하루 끝’이나 ‘분홍신’ 때의 아이유에 비해서도 모든 면에서 부족한 내 모습을 보며, 그는 나와 그릇 자체가 달라서 내가 발끝만큼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내 스물셋은 기대만큼 놀라웠다. 그 해는 사이버 캠퍼스의 대학생에 불과했던 내게 소속과 직함과 동료가 생기고 첫 청탁이 들어온 해였다. 음악을 좋아하고 그것으로 삶에 필요한 것을 구축해보려고 했던 지금까지의 내가 꽤 잘 살아왔구나, 싶은 순간이 그 해 내내 있었다.
그 해에는 표현으로 관심 받는 이라면 느낄 만한 모든 감정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누군가와 공적 관계를 넓혀가며 처음으로 프로페셔널 대접을 받아볼 일이나, 본격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볼 일이 생기니 짜릿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마냥 잘난 듯 우쭐하다가도 타인의 눈길은 유독 따가웠고, 많은 것에 대해 말하고픈 욕심이 났지만 내가 틀린 말을 할까봐 겁도 났다. 그래서 그 해 나는 종종 주변 멀지 않은 필자들의 결과물에 과몰입하다가도, 대형 아티스트가 내놓은 기대작의 리뷰는 부담스러워서 피해 다니곤 했다. 나는 관심이 좋은 걸까, 싫은 걸까? 아무리 들여다 봐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복잡한 감정 속에서 10월 23일을 맞아 “CHAT-SHIRE” 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나는 ‘새 신발‘ 속 앳된 목소리에 크게 당황했다. 그 해 “LILAC” 앨범과 ‘strawberry moon’ 싱글에서 들은 완성 단계의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던 내게, 그 앳된 목소리는 앨범을 낼 때마다 노래가 늘었다는 감각을 주며 듣는 재미를 배로 더해 온 그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러닝타임 내내 자신만의 표현 영역을 확보하려 애쓰는, 하지만 모든 면에서 미완성된 목소리가 들려오니 이 앨범에 쏟아진 모든 왈가왈부가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아이유의 창작물 중 가장 큰 논쟁과 반발을 낳은 결과물이 “CHAT-SHIRE” 앨범이었다. 수록곡 ‘Zeze’의 내용에 대해 국내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번역 출간한 출판사에서 항의한 것이 그 시작이었는데, 보다 시간이 지나니 ‘소아성애‘나 ’로리타‘ 같은 키워드가 등장하며 논쟁이 달아올랐다. ‘Zeze’ 가사가 가정폭력 피해자 캐릭터에게 섹슈얼리티를 덧입혔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부족하다고 볼 수는 있는데, 그건 그 사안에 대해서 해명하거나 사과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논쟁이 과열되니, 아이유가 사람을 죽이기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비난 수위가 심각해졌다.
지금껏 일어난 수많은 사이버불링 사건을 되짚어 보면, 누군가의 소소한 약점을 빌미 잡아 비난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한번 도출되면 그 괴롭힘 수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논리가 누군가를 괴롭히고픈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자신이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는 명분을 부여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유에겐 이런 괴롭힘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한없이 빈약한 정당화 논리로 아주 큰 괴롭힘을 만들어 내곤 했다.
아이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면 그가 초인이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스무 살이 넘으면 멋진 어른이 될 거라 믿을 나이라면, 무려 스물 세 살이나 된, 아이유라는 완벽해 보이는 어른에게서는 작은 흠결도 크게 보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 과열 논쟁에 아이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꽤 많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아무래도 분노하게 됐다. 다들 복잡하고 미숙했을 그 나이를 지나왔을 텐데, 그 중 대부분이 스물셋의 아이유보다 능력도 인격도 부족했을 텐데, 그런 자신의 미숙을 기억할 만한 사람들이 자기보다 어린 사람의 흠집에 열광하며 달려들었다는 점이 화가 났다. 정말, 타인의 그 정도 흠결도 봐주지 못한다고?
그래서 언젠가는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에 대해 아이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의 관점을 남겨두겠다고 다짐했다. 아이유보다 나이가 많거나 그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주를 차지한 담론장에, 그를 보고 뒤따라 나이 먹는 사람의 관점을 반드시 남겨두고 싶었다. 그러나 스물 세 살의 내게 아이유는 도저히 제대로 이야기를 꾸려나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존재였다. 앨범을 낸 당시의 아이유보다 한참 나이를 먹고 나서야, 간신히 그의 지나간 시간에 대해 정리해서 이야기해볼 엄두가 나기 시작했다.
어느덧 내 나이도 ‘스물셋’을 넘어 “Love poem”을 냈을 때의 아이유의 나이, 스물일곱이 되었다. 공개한 글, 만나본 사람, 벌어본 돈, 들어본 음악과 가본 공연까지 4년 사이에 모든 게 늘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앨범을 들으면 청년 여성이 작게는 연예계, 크게는 사회에서 서는 위치가 어디인지 선명히 보인다. ‘청년 여성‘과 ’연예인‘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아마 아무나, 아무 소리나 한 마디씩 얹어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자리라는 점일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청년 여성을 대표하는 위치에 서 있던 아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그 ‘아무 소리‘를 정말 아무렇게나 맞았다.
“CHAT-SHIRE” 앨범은 그 당시 아이유가 자신이 선 위치와 처한 상황에 대해 느낀 바를, 그때까지의 자신의 음악적 관심사를 녹여내어 기록한 결과물이다. 그가 표현하고픈 것의 무게는 그가 들어온 ‘아무 말’의 양에 비례했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당하는 행위에 대한 피로감과 이로 인한 혼란이 앨범에 짙게 드리운 가운데, 군데군데에서 사랑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아이유의 표현 방식은 명확했다. 그는 혼란스러운 내면 속 무엇이 맞는지 굳이 정하려 하지 않았다. 싫은 걸 좋다고 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않았으니 지금 보면 명쾌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만 그 싫은 대로, 모르는 대로의 마음을 규정이나 확정 없이 그대로 표현하는 접근은 지나치리만큼 신선했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던 이들에게 시선을 받는 자에게도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 느끼는 바와 할 말이 있다는 그 사실은 아무래도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지점에서 이 앨범이 동화의 외피를 따온 이유가 보였다. 아이돌 아이유는 디즈니풍 음악과 동화나라에 사는 듯한 이미지로 기억되었기에, ‘분홍신‘으로부터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당시에는 감상을 풍성히 넓히는 동시에 청자와의 거리를 줄일 수 있는 선택이었으리라 본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시무시한 소재, 이를 대하는 강렬한 감정과 익숙지 않은 화법이 논쟁을 과열시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청자에게 익숙하게 다가가려는 외피를 굳이 한 겹이라도 씌운 이유가 납득이 된다.
이러한 동화의 차용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을 결국 스물 셋 아이유의 아이덴티티로 기억되게 하는 것은, 음악가 아이유의 관심사를 적극 반영한 소리의 사용이다. 그는 20세기 음악과 아날로그 감성을 사모하는 동시에, 세련된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청년이다. 이 두 면모를 한 작품에 동시에 녹여내는 것이 프로듀서 아이유의 오랜 과제였다.
본작은 재즈, 스윙, 디스코 등 레트로 사운드를 통해 세련미를 도출하는 지극히 동시대적 접근을 취한다. 중간중간의 어쿠스틱 넘버는 “꽃갈피”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세계 속 아이유를 소환한다. 한편 레트로 사운드는 “Modern Times”에 비해 규모와 볼륨을 줄이고, 어쿠스틱 넘버는 ‘푸르던‘처럼 현대적 접근을 곳곳에 가미하여 소리 차이에 따른 간극을 줄이는 동시에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리얼 세션과 아이유의 목소리를 축으로 삼아 다양한 접근을 한 작품으로 묶어내는 것은 이후 아이유 디스코그래피 내내 이어지기에, 본작은 아이유의 음악적 영역을 구축하는 시작점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헌데 “CHAT-SHIRE”의 만듦새는 시작점 치고 수상하게 빼어나다. 이 정도로 가사의 정서를 명확히 전달하는 소리를 골라내는 안목은 일반적인 신인의 것이 아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음악적 역량을 쌓아야 닿을 수 있는 영역에 있다. 가사 역시 필자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직시하고 그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졌음을 전제로 하는데, 이 전제를 채우려면 적지 않은 시간의 사회 경험과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처럼 이 앨범의 완성도는 당시 아이유가 경력 8년차의 베테랑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나는 스물셋이 한참 넘어서야 이 앨범이 베테랑의 공력 없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 청년 직업인의 사회적 위치나 창작자가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이해하기에 스물셋의 나는 경험이 부족했다. 몇 년에 걸쳐 앨범의 전제를 성립시킬 만큼의 경험을 채우고 나니 이 앨범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 세상 보는 눈이 넓어지면서 아끼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만큼의 시야가 생기는 것을 보면, 나이 먹기를 계속 기대해보게 된다.
스물셋 이후로도 아이유의 나이 먹기는 뒤따라 나이 먹는 내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스물다섯이 넘었는데도 나를 좀 알 것 같지 않은 걸 보면 역시 그만큼 멋있어지긴 글렀지만, 스물일곱 아이유가 ‘빅 사이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는 약간 알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좀 더 키워보고 싶다는 고민을 경험이 조금 쌓이면 하게 되나 보다.
나이를 먹으니 어린 사람의 작은 흠결에 열불 올리고, 시선 속에 타인을 아무렇게나 속박하는 어른이 날이 갈수록 추해 보인다. 30대의 아이유가 사랑과 자유를 외치게 된 게 그래서인가 보다. 사랑과 포용을 첨예하게 다뤄야 하는 시대를 맞이한 그가 앞으로 어떻게 날아다니며 나이를 먹을 지 지켜보고 싶다.
그의 나이먹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으니, 듣는 나도 허투루 나이 먹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