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퇴근 이후, 장거리 운전을 함께하는 음악
이번 주에는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으니, 일상 속에서 음악을 듣는 몇 가지 순간들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내 기상 시간은 새벽 6시다. 아이폰 기본 알람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서는 옷을 고르고 머리를 다듬으며 출근 준비를 한다.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캡슐 커피를 마시고 집을 나서면서 귀에 에어팟 프로를 꽂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오늘 아침 듣고 싶은 노래를 소중하게 고른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집을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여 사무실 문을 열기 전까지 딱 30분이다.
스무 살 이후로 등하교길, 출퇴근길에 음악 아닌 다른 것을 들은 적이 거의 없다. 주로 그 시간을 음악 듣고 관련 컨텐츠를 찾아보는 것으로 채우다 보니, 게임, 쇼츠, 팟캐스트 같은 다른 매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이 습관이 처음 생긴 것은 7년 반 전, 대학 첫 학기였다. 광역버스에 지하철을 갈아타고 인천 송도에서 서울 강북까지 가는 길은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지루했지만, 그때만 해도 버스에 공공와이파이가 없었다 보니 영상을 보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음원 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앨범이나 아티스트를 하나 집어 들으며 음악 소식과 반응을 찾아보는 게 가장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는데, 그 학기에 30분 이상 집중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다.
이동 시간에 가장 음악을 많이, 깊이 들을 수 있던 시절이 바로 그 대학 첫 학기였다. 그 다음 학기부터는 인천을 떠나면서 통학, 통근 거리가 확 짧아졌으니까. 대학 첫 학기 통학 시간은 편도 1시간 반이었는데, 그 이후 대학 통학이나 회사 통근은 1시간 정도였다가, 회사 근처에 사는 지금은 통근 시간이 도어 투 도어 30분쯤 된다. 대학 첫 학기에는 나얼의 “Sound Doctrine” 같은 기나긴 앨범에 내내 몰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앨범을 틀면 중간에 끊고 사무실에 들어가야 한다. 너무 좋은 앨범을 중간에 끊을 때는 가끔 피눈물이 나는 것 같다.
내가 케이팝을 가장 많이 듣던 시절은 부모님 댁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코딩 학원과 인턴 직장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숏폼 보급 후 케이팝 아이돌 EP는 15~20분, 정규 앨범은 30~40분 정도 되니까, 1시간 정도 되는 통학, 통근 시간을 아이돌 앨범 두 장으로 채우면 시간이 얼추 맞았다. 곡 전체를 꽉 채운 화려한 사운드는 덜컹거리는 소음을 가리고 안무를 위해 의도된 비트는 발에 부스터를 다는 것 같아서, 홍대입구역 환승통로를 다닐 때면 거의 대부분 과잉이 가득한 케이팝을 틀었다. 얼마나 시끄러운 노래만 들었냐고? 데뷔 직후의 뉴진스를 지하철 소음에 묻힌다며 외면할 정도였다.
그런데 비역세권 지역으로 독립하면서 내 출근시간은 케이팝 앨범과 멀어졌다. 지하철과 멀어지면서 가려야 할 소음이 줄어들다 보니, 에어팟 볼륨을 한두 칸씩 줄이고 맥시멀한 소리를 조금 덜 찾게 되었다. 통근 시간이 짧아지니 흐름 유지가 필요한 앨범보다는 곡 단위 청취를 더 많이 하게 되기도 했다. 요새는 주로 듣고 싶은 아티스트를 애플뮤직에 검색하고 인기 곡 리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들으며 통근 시간을 채우곤 한다.
최근 가장 기억나는 출근길은 9월 15일 아침이다. 호시노 겐 내한공연 다음 날이자 요네즈 켄시의 ‘IRIS OUT’이 발매된 그 날이었다. 집 문 앞에서 애플뮤직으로 그날 0시에 나온 신곡 ‘IRIS OUT’을 틀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노래를 들으며 도파민을 맞고 황홀해진 표정을 지었다. 1층에 내리니 가슴이 벅차게 뛰어서, 셔틀버스 정류장에 간만에 실컷 뛰어갔다. 미친 듯 피식거리는 2분 30초를 몇 번씩 반복하며 회사에 가는 내 모습이 3년 전 ‘KICK BACK’ 나온 날과 참 비슷했어서 이번 노래도 잘 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잘 될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일이 다 끝나면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퇴근길에는 출근길과 비슷하게 음악을 찾아 듣는다. 예전에 6시에 퇴근하던 시절에는 그날 나온 신곡을 퇴근길에 찾아듣곤 했는데, 요새는 5시에 퇴근하다 보니 신곡을 바로 찾아듣기가 좀 애매하다.
근래 퇴근길에 듣는 음악 선곡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콘텐츠는 XSFM에서 제작하는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다. 전직 래퍼 출신 시사 팟캐스트 제작자 유승균 PD (예명 UMC/UW)가 김영대 평론가와 이현파 크리에이터를 불러, 주제를 정해 음악을 틀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이 방송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에 업로드되는데, 나는 퇴근하면서 방송 썸네일과 선곡표를 보고 종종 그에 맞춰 음악을 예습해 간다. 예를 들어 10월 15일 업로드된 썸네일에 백예린이 나왔으니, 백예린의 신보 “Flash and Core” 를 들으며 집에 가는 식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이승환 4집 “Human” 과 넥스트 3집 “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 듀스 3집 “Force Deux”도 이 앨범들을 다룬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 업로드 날 예습 삼아 들었다.
친구는 이 팟캐스트가 음악 가지고 헛소리하기를 좋아하는 내게 최적화된 콘텐츠라며 작년부터 강권했는데, 내가 그 친구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휘성 추모 편이 올라오고 나서였다. 추운 날씨에 험악한 시국 속에서 무척 좋아했던 아티스트를 갑자기 떠나보내려니 참 황망했는데, 그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얻었다. 그 뒤로 한동안 매일 저녁 그동안 쌓인 회차를 복습했고, 지금은 이들의 언어와 논리를 음악과 함께 재고 따지는 재미로 수요일 저녁을 보내고 있다.
이 세 사람은 역할을 나누어 담론의 깊이와 비전문 시청자 대상의 너른 접근성을 한꺼번에 잡아낸다. 한 예로, 이현파 크리에이터가 ‘차트시간’ 코너에서 라디오헤드의 ‘Let Down’이 틱톡의 힘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91위에 랭크인한 사건을 다루자, 유승균 PD는 아티스트의 맥락과 전혀 상관 없이 숏폼의 바이럴로 인기를 얻는 음악을 ‘벽지’에 비유하고, 그것을 보는 김영대 평론가는 사실 “OK Computer” 앨범이 나왔던 당시에도 톰 요크가 하는 고뇌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을 거라며 대중성의 형성 구조를 논했다. 그걸 밥 먹으며 보는 나는 ‘여러분처럼 그 고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화 산업계에 종사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틱톡에서 음악을 벽지로 쓰는 세대에도 오타쿠는 있을 거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 시간 뒤에는 스트레이키즈의 “KARMA” 앨범을 들으며 집 근처를 한 바퀴 뛰었다.
요새는 이 팟캐스트의 다음 회차를 예상하고 희망하는 데서 재미를 찾기도 한다. 다음 회차는 10월 20일에 녹화하고 22일에 공개될 텐데, 아마 지난 14일에 하늘나라에 간 디안젤로를 추모할 것 같다. PC통신 시절부터 블랙뮤직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온 유승균 PD와 김영대 평론가가 올해도 슬라이 스톤 추모 방송을 했던 걸 생각해보면, 디안젤로를 안 기릴 리가 없다.
그리고 국내외 차트를 돌아보는 ‘차트시간’ 코너에서는 꼭 한국 유튜브 차트를 가져와서 봤으면 좋겠다. 한국 유튜브 차트 꼭대기에 일본 음악이 올라가 있는 모습은 처음이라 기록해 둘 가치가 있어서다. 사실 나는 내가 꼬박꼬박 CD를 사며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이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 메인 코너에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둘 중 하나가 ‘차트시간’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져서 속으로 기뻐하는 중이다. 그… 한국 사람보다 일본 사람의 등장 확률이 더 높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지.
작년부터 운전을 시작하여, 휴일에는 종종 부모님 댁에 차를 몰고 간다. 별로 즐거운 경로는 아니다. 우리 집에서 부모님 댁 가는 길은 70km 정도인데, 서울을 포함하여 수도권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길이다 보니 1시간 반에서 2시간은 기본으로 각오해야 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막히는 70km가 이 길일 것 같은데, 서울 시내의 악명 높은 정체구간을 무조건 여럿 지나야 하다 보니 나는 이런 운전을 종종 ‘브레이크 밟기 연습’이라 부른다.
부모님 댁에 차를 끌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선 출퇴근 시간에 운전했다가는 시간이 무한정 늘어나기 때문에, 막히지 않을 시간을 고른다. 운전 시작 전에는 커피와 당분을 먹어서 에너지를 채운 뒤 화장실에 꼭 다녀온다. 2시간 동안 차 세울 곳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출발 직전에 러닝타임이 긴 앨범을 골라 튼다.
좋은 앨범을 들으며 운전하다 보면 확실히 길 막히는 게 덜 짜증나고 운전 만족도가 높아진다. 어느 날에는 서울에 있는 치과에 갔다가 집에 오면서 휘성 4집 “LOVE.. LOVE..? LOVE..!”를 틀고 출발했는데, 빗길에서 듣는 ‘일년이면’이나 ‘하늘을 걸어서’는 황홀했다. 그 위태로운 듯한 감정선에 감긴 채로 달리다가 집이 한참 남은 서울성모병원 앞에서 앨범이 끝났다. 그 다음 앨범을 틀기 위해 “시리야, 에픽하이의 “Remapping the Human Soul” 앨범을 틀어줘!”를 외쳤다. 보다 힘이 붙은 비트와 고속도로의 속도감이 합쳐지니 앞서 느끼던 차분한 우울이 다이나믹한 격정으로 변했다. 2CD 후반 ‘Love Love Love’가 나온 뒤에야 집에 도착했으니, 가는 길이 참 오래 걸렸다.
또 하루는 부모님 댁 가는 길에 미세스 그린 애플의 베스트 앨범 “Inferno & More Hits” 를 들었는데, 그날따라 고속도로가 안 막히다 보니 운전의 상쾌함을 더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미세스 그린 애플을 음악보다 성과로 먼저 접했는데, 일본 스트리밍 차트를 도배하는 위력이 어디서 나오는 지 압축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또 ‘JANE DOE’가 나오기 직전 주말에는 우타다 히카루의 베스트 앨범 “SCIENCE FICTION” 을 들으며 부모님 댁에 갔는데, 비가 올 듯 말 듯 흐린 날씨와 앨범 전체를 감싸는 우타다 히카루 특유의 멜랑콜리한 목소리가 어울려서 기막힌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 두 앨범의 공통점은 앨범 끝나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점인데, 이처럼 끝날 기약이 없는 장거리 운전에 기나긴 러닝타임의 베스트 앨범은 꽤 괜찮은 선택지인 것 같다.
나는 장거리 운전할 일이 생기면서 영미권 음원 사이트에서 자동재생 추천 기능, 플레이리스트 기능, 라디오 및 팟캐스트 기능을 강화한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에서는 노래 3분 듣다가도 손이 심심해서 수시로 검색창에 손을 대게 되는데, 운전할 때는 휴대폰을 세세하게 조작하기 어려우니 좋은 노래가 많이 나열된 플레이리스트가 간절해진다. 스트리밍 이전 시대에 이 ‘좋은 노래가 많은 플레이리스트’의 역할을 한 게 라디오와 베스트 앨범이었을 것 같은데, 장거리 운전할 일이 흔한 미국에서 이 둘이 얼마나 소중한 매체였을 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일상 곳곳에 음악을 새겨넣는 건 내 오랜 습관이었다. 아마 나를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뭔가 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분명 생활습관이 90%쯤 될 거다. 그런데 이리저리 음악 틀고 다니는 똑같은 생활 패턴 속에서도, 귀에 들어오는 음악의 감흥이 관성 이상으로 크게 느껴지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
내게는 음악을 관성적으로 듣던 시절이 작년, 그 이상의 감상을 느낄 수 있게 된 시기가 올해다. 돌이켜보면 작년 6월에 에픽하이, 8월에 요네즈 켄시가 모두 풀 렝스 작품을 가져왔는데도 나는 지금보다 훨씬 무덤덤했다. 그들의 결과물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새로운 생활에 정착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는 걸 올해 그 작품들을 다시 들으며 알았다. 좋은 음악에 다시 열광하며 말을 꺼낼 수 있게 된 건 첫 집의 계약 기간이 반절 이상 넘어간 뒤였다.
스무 살 이후 내게 지금처럼 여유로운 생활 속에서 뭔가를 깊이 느끼고 환호할 수 있게 된 시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요새 미래 계획을 고민할 때면, 이 달콤한 안정을 당분간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이 생활이 영원할 리 없겠지만, 당분간은 이 안정을 기반으로 일상을 풍성히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그 풍성함이 먼 훗날 나를 보다 행복한 삶으로 데려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