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즈 켄시로 보는 한국에서의 일본 콘텐츠

한국에서 일본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찾아다니는 이야기

by 예미
각각 유튜브 뮤직 주간 차트, 멜론 곡 정보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 편>이 글을 올리는 오늘부로 국내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였고, 삽입곡 ‘IRIS OUT’은 유튜브 뮤직 한국 차트 주간 1위, 멜론 일간 차트 82위를 기록하며 대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요네즈 켄시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그가 참여한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그가 만든 삽입곡이 한국 시장에서 이만큼의 호응을 얻는 모습이 처음에는 감격스러웠는데, 이젠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상황 파악이 안 되어서 무서워질 지경이다.


이번 <체인소 맨>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 요네즈 켄시의 커리어는 ‘타이업'의 개념 없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 ‘타이업'은 한국 드라마의 OST와 비슷한 듯 다른 개념이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중간에 가수의 노래가 삽입된다는 점은 한국 드라마의 OST와 비슷하지만, 한국 드라마의 OST가 해당 드라마의 이름을 단 OST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발매되는 것과 달리 일본 작품에 타이업된 삽입곡은 그 곡을 부른 가수의 싱글이나 앨범에 수록되어 발매된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광고 등 작품의 공개 시점과 삽입곡의 발매 시점을 맞춘 뒤 작품은 가수의 이름값을, 가수는 작품의 이름값을 빌려 홍보 측면에서 윈-윈을 추구하는 것이 일본 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타이업'의 양상이다.


요네즈 켄시의 대표곡은 거의 대부분 이 ‘타이업'을 통해 알려졌다. 그는 오타쿠 문화 기반의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만큼, 콘텐츠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수많은 타이업에 명분을 부여하기에 적합한 캐릭터를 가졌다. 콘텐츠의 내용과 정서를 생각지도 못한 발상으로 정확하게 해석해 내는 그의 작법은 콘텐츠와 큰 시너지를 이루는데, 이 콘텐츠 향유자들이 만들어준 명성이 ‘타이업'을 산업의 주된 동력으로 삼는 일본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요네즈 켄시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제는 요네즈 켄시가 참여한 콘텐츠가 한국에 수입될 때면,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 예고편에도 그의 이름이 나온다. 나는 꽤 오랫동안 요네즈 켄시를 지켜보면서, 그의 참여작이 한국에 유통되는 창구를 여러 차례 찾아다녔다. 평소에 영화도, 드라마도 그리 열심히 보지 않는 나지만 삽입곡 한번 들어보겠다고 소규모의 개봉관을 찾아다녔으니, 그를 통해 내 경험의 폭이 넓어진 듯 하다. 그래서 이제 요네즈 켄시를 중심축으로 삼아, 일본 콘텐츠의 한국 유통과 파급력 형성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내가 그를 처음 안 시기에는 일본 콘텐츠가 영역을 불문하고 대부분 비주류 취급이었기 때문에, ‘극장판 애니메이션 한국 100만 관객'이나 ‘유튜브 뮤직 주간 1위' 같은 건 이 덕질을 시작할 때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미리 말해 두겠다.



시작은 일드계의 바이블, 노기 아키코 유니버스

2020년 8월, 요네즈 켄시의 앨범 “STRAY SHEEP”을 몇 주째 돌려 듣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거하게 ‘입덕'해버린 나는 그의 곡이 수록된 작품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하며 일본 드라마 (이하 일드)에 입문했다. 내가 처음으로 보기 시작한 일본 드라마는 ‘Lemon’이 삽입된 <언내추럴>, ‘감전'이 삽입된 <MIU404>였다.


각각 법의학자와 경찰을 다룬 <언내추럴>과 <MIU404>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주인공들이 각 회별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아픔과 극복을 보여준다. 두 드라마는 공통적으로 일본의 사회문제를 소재로 드라마 속 사건을 만들고, 인물들이 자신과 엮인 사회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조금씩 나은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를 통해 드라마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고, 드라마를 만드는 이와 보는 이가 모두 같은 세상을 산다는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 두 드라마와, 이 두 드라마를 써낸 노기 아키코 작가의 특징이다. <언내추럴> 1화의 메르스 병동 장면이나 <MIU404> 5화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 장면처럼, 드라마가 채택한 소재가 한국 사회에서도 고민해볼 지점이라는 점은 한국 시청자들에게 두 드라마가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노기 아키코 작가는 각 회별 적재적소에 삽입곡을 활용하여 극과 노래의 감정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데에 능하다. 법의학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언내추럴>과 가수 본인의 외조부상을 배경으로 죽음에 대한 애도를 그린 ‘Lemon’은 꼭 잘 맞는 한 쌍이었다. 한 회마다 죽음 속 의문이 풀리고 남겨진 이들이 감정의 절정을 마주할 때 ‘Lemon’이 흘러나오니, 내가 극중 인물의 감정을 직접 느끼는 것 같았다. 형사 드라마로서 역동성과 케미스트리가 돋보이는 <MIU404>에서 404 기동대가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에 깔린 ‘감전'은 드라마 특유의 활력에 페이소스를 더하여 인물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든다. ‘Lemon’을 듣고 울던 시청자들의 반응은 요네즈 켄시를 지금의 체급으로 키워낸 시작점이었고, ‘감전'과 함께 드라마에 빠져든 시청자들의 몰입감이 “STRAY SHEEP” 앨범을 밀리언셀러로 만들어내는 데에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언내추럴>, <MIU404> 이 두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종영 이후 지금까지 오랫동안 명작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드라마를 넘어서는 삽입곡의 유명세, 일본 드라마 치고는 절제된 연기 톤과 한국 사회에서도 유효한 사회문제 소재 채택 등 여러 매력 포인트가 있겠지만, 드라마의 가장 큰 힘은 이 모든 희노애락을 보여주는 인물의 매력과 사랑스러움에 있다. <언내추럴> 속 이시하라 사토미의 모습은 지금도 한국 인터넷 곳곳을 돌아다니고, <MIU404>는 한국에서 투탑 주연을 담당한 아야노 고와 호시노 겐의 케미스트리에 집중하는 여성 팬덤을 만들어냈다. 이 <MIU404> 팬덤이 이윽고 호시노 겐의 가수, 예능, 집필 커리어를 다 파고들고 그의 내한 공연을 맞아 이벤트 카페를 만들며 김포공항에 마중 나오는 열성 팬덤으로 변모한 모습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만큼 커다란 파급력을 가진 <언내추럴>과 <MIU404>는 한동안 넷플릭스에 없던 반면, 국내 OTT 왓챠에서 오랫동안 순위권을 차지하며 왓챠의 구독자를 늘리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저 두 작품을 보려고 왓챠에 가입하여 한동안 구독을 유지했던 나로서는, 경영난을 겪는 현재의 왓챠에서 <언내추럴>과 <MIU404>가 내려간다는 공지가 뜨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지금은 두 작품 모두 넷플릭스에 올라와 더 높은 국내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동안 애정을 갖고 있던 플랫폼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는 건 아무래도 좀 씁쓸해진다.


한국에서는 소소하지만 일본에서는 과연 거대할까

‘Lemon’이 기록적 흥행을 써내려간 이후 요네즈 켄시는 여러 드라마의 삽입곡을 담당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갔다. 그런데 그가 만들고 부른 삽입곡은 요네즈 켄시의 이름값에 걸맞은 수작이 대다수였으나, 그 곡이 삽입된 모든 작품이 <언내추럴>이나 <MIU404>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작품의 특성상 한국 시청자들에게 큰 파급력을 갖기 어려운 작품도 있었고, 한국에 수입되지 않아 접근하기가 어려운 작품도 있었다.



왓챠 가입 후 호기심에 <노 사이드 게임>을 봤다. 요네즈 켄시의 ‘말과 사슴'이 들어간 이 드라마는 자사 럭비팀으로 좌천된 대기업 부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스포츠를 소재로 사회생활을 다루는 드라마다. 스포츠의 열정, 조직생활의 치열함을 담아낸 드라마와 열정이라는 키워드를 지극히 요네즈 켄시다운 방식으로 풀어낸 ‘말과 사슴'이 생각 이상으로 합이 잘 맞았다. <노 사이드 게임>을 보다 보면 오오이즈미 요가 이끄는 럭비팀의 성공을 보는 내가 다 기원하게 될 정도로 몰입이 잘 됐는데, 드라마가 만들어낸 몰입감만큼 일본 현지에서 노래와 드라마가 함께 흥행했다. 허나 일본 흥행과 달리 <노 사이드 게임>의 국내 호응은 <언내추럴>, <MIU404>에 비하면 적은 편인데, 방영 시점이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 시기와 겹쳐서였는지, 아니면 기업과 스포츠를 소재로 선 굵은 힘을 어필하는 드라마의 어법이 인물의 매력을 어필하는 <언내추럴>, <MIU404> 등과 다른 지점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안녕, 또 언젠가!’가 삽입된 NHK 연속 TV 소설 (속칭 ‘아사도라') <호랑이에게 날개>는 하루 15분씩 6개월간 방송하는 아침드라마 포맷 특성상 OTT를 통해 호응을 이끌어내기가 어렵고, 실제로 국내 OTT에 수입된 이력도 없다. 일본 최초의 여성 변호사라는 의미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며 한국 배우 하연수가 출연하는 등 화제거리는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의 일본을 다루는 배경 특성상 시청을 꺼리는 국내 시청자도 존재했다. 그래도 역경을 헤쳐 나가는 여성 인물의 심리와 부합하는 가사를 담은 ‘안녕, 또 언젠가!’가 드라마와 함께 호평받으며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억을 돌파하는 등 꾸준히 흥행했고, 아사도라 삽입곡을 부른 가수를 홍백가합전에 초청하는 관례에 따라 요네즈 켄시의 두 번째 NHK 홍백가합전 출전이 성사되었으니 일본 현지에서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작품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인지도와 무관하게 현지에서 성공한 작품이 있는 한편, 요네즈 켄시의 참여가 흥행을 보증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 작품도 있었다. ‘Pale Blue’가 삽입된 드라마 <리코가츠 ~전원 이혼 가족~>은 반응을 찾기가 어렵다. ‘Pale Blue’가 아무래도 “STRAY SHEEP” 앨범 이후 첫 싱글인데다 오케스트라 세션이 동원되고 뮤직비디오에 요네즈 켄시가 꽃을 들고 나오는 등 여러모로 공들인 대곡이었는데, 곡의 완성도와 별개로 드라마의 시청률이 부진했다. 일본 현지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국내 수입이 늦어져 국내 반응도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등, 타이업을 통한 시너지를 크게 얻지 못한 점이 아쉽다.



‘Azalea’가 삽입된 넷플릭스 드라마 <이별, 그 뒤에도>는 넷플릭스 플랫폼의 높은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곡이 정규앨범 “LOST CORNER”의 여파가 가시기 전에 발매되었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명받기 어려운 시점이었고, 드라마에 대한 일본 현지 반응도 미지근하다 보니 잔잔한 곡조만큼이나 흥행도 그저 흘러가는 정도에 그친 것 같았다. ‘Pale Blue’나 ‘Azelea’는 2018년 이후 발매된 요네즈 켄시의 곡 중에서 크게 히트하지는 못한 축에 드는 곡들인데, 두 곡의 썩 크지 않은 성과가 드라마의 부진과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가수 따라 본 만오천명짜리 영화

2020년 10월 나는 한국에 개봉한 <해수의 아이> 를 보러 홍대 앞 메가박스로 향했다. 요네즈 켄시 커리어에서 손꼽히는 대곡인 ‘바다의 유령'이 엔딩 크레딧에 삽입된 이 작품은 원작이 요네즈 켄시의 인생작이라는 데다, 그 전 해에 먼저 개봉했던 일본에서는 히사이시 조가 참여한 사운드트랙과 영상미가 아름답다는 평이 나오니 기대감이 생겨서였다. 직접 보니 <해수의 아이>의 어필 지점은 음향과 영상미가 주는 압도감에 있어서, 극장에 가서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주제가 ‘바다의 유령'도 극장의 큰 스피커로 들으니 진가를 발휘했다. 그러나 영화가 감각적 압도감에 비해 스토리가 난해하다 보니 이에 대한 불호 의견도 꽤 있었고, 극장에 가기 어려운 코로나 시국과 겹쳐 영화는 조용히 막을 내렸다.



<해수의 아이>는 한국 관객 수 15,000명을 기록했는데, 이게 아마 지금까지 내가 극장에 가서 본 영화 중 가장 적은 관객수를 기록했을 거다. 영화를 열심히 보는 관객이 결코 아니었던 나는, <해수의 아이>를 통해 한국에서 소규모로 개봉하는 일본 영화의 개봉 패턴을 처음으로 접했다. <해수의 아이>처럼 한국 흥행 실적을 장담하기 어려운 일본 영화는 상당수가 일본 개봉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멀티플렉스 3사 중 한 곳 (주로 메가박스) 에서만 독점 개봉하며, 주차별로 스페셜 티켓이나 포스터 등 특전을 달리하여 매니아 관객을 타겟으로 다회차 관람을 유도한다. 나는 이 영화가 내가 살던 경기도 고양시의 집 근처 영화관에서는 상영하지 않아서, 홍대까지 나가야 상영관을 찾을 수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2025년 3월 메가박스에서 독점 개봉했던 <라스트 마일>을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집 근처 메가박스에서 보면서, <해수의 아이>보다 확연히 큰 개봉 규모에 혼자 감격하기도 했다. <라스트 마일>은 <언내추럴>, <MIU404>와 같은 노기 아키코 작가가 집필하고 요네즈 켄시가 주제가를 부르며 두 전작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인데,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작품 소재로 삼은 택배사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쿠팡 로켓배송이 연상되는 등 명확히 전작 팬층을 주 관객으로 노린다. 택배 폭발 등 극장 상영에 걸맞는 장면을 곳곳에 삽입했고, 주제가 ‘가라쿠타'가 영화 속 안타까운 사랑의 감정선을 극대화하여 여운을 남겼지만, 다소 부족한 박진감과 왠지 더 긴 분량을 통해 풀어내야 할 법한 인물 조형을 보며 이 작품도 영화가 아닌 드라마였다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내가 체감한 드라마 시청층의 규모에 비해 다소 부족한 5만 3천명의 한국 관객수를 보며, 드라마 팬층의 규모가 영화 관객수로 마냥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요네즈 켄시의 참여작 중 한국 내 반응과 일본 현지 반응이 가장 크게 다른 작품은 <신 울트라맨>이 아니었나 싶다. 울트라맨이 일본 현지에서 수십 년 묵은 대규모의 팬층을 보유한 반면,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으니까. 2022년 5월 일본에서 개봉했던 <신 울트라맨>의 삽입곡 ‘M87’은 일본 내 울트라맨 팬층에서 울트라맨의 캐릭터성을 기막히게 해석했다며 어마어마한 호평을 이끌어냈다. 허나 한국에서는 한참 지난 2023년 말 개봉하여 관객을 1,924명밖에 동원하지 못했고, 현재까지 OTT에서도 유료 구매로만 볼 수 있다보니 이 영화를 봤다는 한국 관객 평을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연출을 담당한 안노 히데아키가 한국에서도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관객 수가 정말 이게 맞나 싶긴 하지만, 특촬물 실사영화가 한국에서 제대로 개봉하여 관객을 동원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나 싶다.


OTT가 열어준 애니메이션 접근성의 신세계

2022년의 나에게 무척 놀라웠던 소식은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의 넷플릭스 업로드였다. 요네즈 켄시의 ‘KICK BACK’이 오프닝으로 수록되고 그 외 유명 가수 12명이 엔딩에 참여한 <체인소 맨>은 매 화가 방영과 동시에 넷플릭스에 올라오며, 국내에서 아주 쉽게 시청할 수 있었다. 방영 후 시차를 두고 OTT에 올라오던 드라마들이나, 역시 일본 개봉과 큰 시차를 두고 한국에 소규모로 개봉하던 영화들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현지 방영과 동시에 OTT에 올라온 <체인소 맨>의 접근성은 황홀할 지경이었다. 오프닝 곡인 ‘KICK BACK’이 한국 유튜브 차트에 올라가는 등 크게 흥행한 데에는 아이묭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가'를 필두로 국내에서 슬슬 J팝이 인기를 얻어가던 시국의 힘도 있겠지만, 현지 방영과 동시에 넷플릭스를 통해 파격적인 수준의 접근성을 얻은 것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OTT 플랫폼을 통해 높은 인기를 얻은 작품으로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도 주목할 만 하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코로나 시국 이전부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서 꽤 높은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서구권 OTT에서의 높은 접근성이 주제가 ‘Peace Sign’의 높은 인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피스 사인’은 2021년 TV 애니메이션 OST 최초로 유튜브 조회수 2억 뷰를 달성하는 등, 꽤 오랜 기간 동안 TV 애니메이션 OST 유튜브 조회수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도 ‘피스 사인’을 통해 요네즈 켄시를 처음으로 알았다거나, ‘피스 사인’ 만든 사람과 ‘마트료시카' 만든 사람이 같은 사람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숱하게 보이는 등 OTT를 통한 애니메이션의 파급력이 노래를 알린 이른 사례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를 빼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OTT 플랫폼을 통한 인기 획득은 그 OTT 플랫폼의 국내 접근성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피겨 스케이팅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메달리스트> 1기의 오프닝 삽입곡 ‘BOW AND ARROW’는 극중 인물 이노리를 응원하는 시청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가사와 빙판을 형상화한 소리로 큰 호평을 받았으며,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디즈니플러스에 가입했다는 요네즈 켄시 팬들의 반응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반면 바로 다음 분기에 방송된 <기동전사 건담 지쿠악스>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독점 공개되었는데, 아마존 프라임이 국내에서 정식 서비스되지 않다 보니 국내 반응 양상이 아무래도 <메달리스트>와는 좀 달랐다. 오프닝 곡 ‘Plazma’를 작품과 엮어서 깊이 들으며 호평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국내의 건담 골수 팬들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안노 히데아키, 츠루마키 카즈야 감독을 잘 알던 팬들로, <메달리스트>를 호평한 사람들과 다른 부류라는 인상이 짙었다. ‘Plazma’와 건담의 연계성에 초점을 맞춘 양A면 싱글 “Plazma / BOW AND ARROW”의 홍보 전략을 보니 일본 현지에서 생각하는 화제성과 상징성의 크기는 <메달리스트>보다 <기동전사 건담 지쿠악스> 쪽이 더 컸던 것 같은데, <기동전사 건담 지쿠악스>가 국내에 정식 서비스되는 다른 OTT를 통해 배급되었다면 국내 반응이 일본 반응의 양상을 따라갔을 지 궁금해진다.



시대 변화가 가져온 극장 개봉의 확대

2023년 7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건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일본에서 개봉했다. ‘사전 홍보 없음'을 주된 홍보 포인트로 삼았던 영화의 특성상 엔딩 주제가 ‘지구본'의 삽입 사실도 영화 개봉과 함께 알려졌다. 요네즈 켄시가 2018년부터 지브리 스튜디오와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 온 데다 직전 투어 파이널 공연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화환을 보내며 요네즈 켄시의 지브리 작품 참여는 오랫동안 기정사실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내 최애 가수가 바로 그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이건 숱한 타이업을 거친 요네즈 켄시의 디스코그래피에서도 손꼽히는 ‘인생 업적' 수준이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값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아주 크게 개봉했다. 그해 10월 말 개봉을 앞두고 국내에서도 TV나 유튜브에서 예고편을 크게 방영하고, 전국 각지에서 상영관을 확보하는 등 개봉이나 홍보 규모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못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코로나 시국에 넷플릭스를 통해 지브리 스튜디오의 전작이 공개되어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지도가 크게 올라간 것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도 코로나 시국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며 소소한 기쁨을 누렸기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개봉을 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니 삶의 역경을 소리와 영상으로 그려놓은 모양새가 인상깊었는데, 줄거리 이해가 난해한 반면 시청각적 체험의 감흥이 매우 컸던 작품인지라 극장에서 보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삶을 대하는 자세를 영화만큼이나 진지하게 그린 주제가 ‘지구본'을 극장에서 본 것도 기뻤지만, 그 이상으로 기쁘고 즐거웠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참여작을 본 감상을 사회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경험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날 만난 친구와 카톡으로 영화에 대해 “살아라!” 밈을 공유했고, 그해 11월 말 어느 면접장에서 최근에 본 영화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봤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답한 적이 있었다. 이제껏 철저히 혼자만의 취미생활에 가까웠던 요네즈 켄시와 관련된 이야기가 한국에서 모두의 대화거리에 꼽히는 모습은, 당시 취업 준비생이었던 내게 몇 안 되는 일상의 기쁨이 되었다.


개봉 첫 주에 백만 관객을 동원하여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총 관객 수 201만 명을 기록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국내 개봉 성적은 현재까지 요네즈 켄시의 참여작 중 역대 최대의 한국 흥행 실적이다. 내 지금 관심사는 현재 상영 중인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 편>의 성적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설 지에 있다. 소니 픽쳐스에서 직배급하는 이번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 편>은 일본 개봉 5일 뒤인 9월 24일에 한국에서 개봉했는데, 첫 주차 57만 9천 명을 동원했고 황금연휴 시작 이후인 10월 5일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원작 만화의 하이라이트인 레제의 등장 분량을 영화화한 본작은 경이로울 정도의 액션 씬과 그 사이 녹아든 레제와 덴지의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을 관객에게 각인시키며 상영 중인 한일 양국에서 아주 큰 호평을 얻어내고 있는데, 이 두 측면을 대변하는 삽입곡 ‘IRIS OUT’과 ‘JANE DOE’가 영화의 화제몰이의 한 축을 담당하며 흥행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 편>의 개봉일을 앞두고 내가 속으로 기뻐했던 것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의 대흥행이었다. <귀멸의 칼날>이 500만 관객을 돌파하고 회사 상사들 사이에서도 화두에 오르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비슷하게 액션이 강조된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체인소 맨>도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영화의 대규모 개봉은 <귀멸의 칼날>의 영향력 덕분에 그나마 납득 가능했는데, 이번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을 아득히 넘어서는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 편> 주제가의 흥행 실적은 나도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다.



‘IRIS OUT’이 일본에서 스트리밍 관련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은 놀랍지만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 곡이 유튜브 뮤직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멜론 일간 차트에 랭크인하는 모습이나,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 5위를 차지하는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괴이할 정도다. <체인소 맨>이 서구권 인기가 꽤 크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극장판이 아직 북미 개봉도 안 했는데 주제가가 케이팝 중에서도 글로벌 실적으로 손꼽히는 곡들과 비슷한 흥행 추이를 보이고 있으니, 이 곡과 영화가 어디까지 뻗어가며 어떤 파급효과를 가지고 올 지 이젠 내 머리로 도저히 계산이 서지 않는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기대작의 향방은?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 편> 참여곡들을 홍보하던 와중 발표된 <초속 5센티미터> 실사판 주제가 참여 소식은 요네즈 켄시가 보통 워커홀릭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알렸다. 10월 10일 일본 개봉을 앞둔 <초속 5센티미터> 실사판은 개봉 전 우리나라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고, 주연 배우 마츠무라 호쿠토와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이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요네즈 켄시가 담당한 주제가 ‘1991’의 첫 후기가 일본이 아니라 한국 관객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신기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이 ‘IRIS OUT’ 공개 이후였는데, ‘1991’이 ‘IRIS OUT’보다 명곡이라거나, 혹은 ‘1991’이 ‘Lemon’과 ‘orion’을 합친 것 같다던 후기를 보니 영화 개봉 이후의 주제가 공개를 계속 기대하게 된다.


내가 조금 안심한 점은, 주제가 ‘1991’을 호평하는 <초속 5센티미터>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별다른 악평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영화계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행태가 한국 관객의 정서와 꽤 다른 데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원작 애니메이션이 매니아층을 굳건히 가지고 있다 보니 한국 상영 시 악평이 나올까 조금 우려되는 측면이 있었다. 20분 분량의 단편 3개를 묶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실사화 과정에서 상당한 개작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까지의 반응으로 보니 관객들이 영화를 무리 없이 받아들인 것 같아서 살짝 다행이었다.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대표되는 원작자 신카이 마코토의 유명세나, 지금 한국 차트를 폭격하고 있는 요네즈 켄시의 기세가 한국 개봉 규모나 홍보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다. 다만 국내에서 일본 실사 영화는 애니메이션에 비해 수요가 적은 데다 일본 개봉을 앞둔 현재까지도 한국 개봉일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으로 보아, <초속 5센티미터>는 일본 개봉 이후 시간이 좀 흘러야 한국에도 개봉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영화가 제발 메가박스 단독 개봉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지금 분위기로 보아 <라스트 마일> 같은 작품보다는 좀더 크게 개봉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머지 않은 시일 내에 <초속 5센티미터> 실사판을 집 근처 영화관에서 퇴근길에 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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