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소맨이 만들어낸 신고점

요네즈 켄시 싱글 “IRIS OUT / JANE DOE” 리뷰

by 예미

“극장판 체인소맨 : 레제 편"의 개봉과 함께 요네즈 켄시의 양A면 싱글 “IRIS OUT / JANE DOE”가 발매되었다. “극장판 체인소맨 : 레제 편" 삽입곡과 엔딩 주제가로 활용된 두 곡은 영화 예고편과 함께 조금씩 공개된 뒤, 개봉 후 호평받으며 영화의 화제몰이에 크게 기여했다. 순차적으로 공개된 ‘IRIS OUT’과 ‘JANE DOE’는 영화의 흥행과 함께 일본 음원 사이트를 말 그대로 ‘지붕킥' 하는 중이다. 그를 적지 않은 시일 동안 지켜본 내게도 큰 짜릿함을 선사한 두 곡과, 이 두 곡이 실린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굿즈이자 추첨권이 된 음반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된 초회한정반 중 나는 ‘IRIS OUT’ 버전을 구매했다. 어릴 적 부모님 집에서 쓰던 CD 케이스를 닮은 외형이 꽤 반가웠고, CD에 실린 일러스트가 너무 예뻤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요네즈 켄시 음반의 거의 모든 커버는 대부분 그가 직접 그린 것인데, 이번에도 어쩜 이렇게 예쁘게 그릴까 싶었다.


이번 특전은 레제 아크릴 스탠드!

요네즈 켄시는 CD로 음악을 듣지 않는 시대에 여전히 CD를 파는 일본 시장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 실물 음반 제작 시 굿즈로서의 기능을 중시한다. 그래서 2013년 메이저 데뷔 이후 요네즈 켄시의 초회한정반 싱글은 평범한 형태였던 적이 거의 없다. 스페셜 굿즈나 특전, 때로는 DVD나 블루레이를 끼워 넣어 소장 가치를 높이는 만큼 가격이 상당히 높다. 노래 2~3곡 짜리 싱글 CD를 한국 돈으로 3~5만원에 파는 모습에 처음에는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는데, 이왕 살 거면 중고 사이트에서 프리미엄 붙여 사는 것보다는 발매 시즌에 사는 게 낫다. 초회한정반 구매를 원하는 팬 대다수는 예약 구매를 진행하며, 예약 구매 내역은 초동에 반영된다.


종이를 뒤집으면 시리얼넘버가 있고 그걸로 선행 추첨 응모를 한다

굿즈가 없는 통상반은 대부분 CD에 수록된 투어 선행예매 추첨권을 얻기 위해 구매된다. 요네즈 켄시는 메이저 데뷔 이후 지금까지 공식 팬클럽이 없으며, 일본 현지 투어에 가는 방법은 CD를 사서 추첨 응모를 하는 것뿐이다. 지난 싱글 “Plazma / BOW AND ARROW”와 이번 싱글 “IRIS OUT / JANE DOE”에는 2026년 말 개최될 아레나 투어 “GHOST”의 추첨권이 들어 있는데, 돔 투어도 가능한 아티스트가 고작(?) 아레나 투어를 개최하니 그 경쟁률이 상상 이상이다. 지난 싱글 때 10장을 응모했는데 추첨에서 떨어졌다는 증언이 일본에서도 나오는 등, 공연에 가려면 CD 중복 구매가 사실상 필수다. 공연 추첨권 응모는 발매 첫 주 안에 끝나므로 추첨권을 위한 앨범 구매 역시 초동에 반영된다.


박스째로 CD를 사는 팬들이 수두룩한 한일 양국의 아이돌 시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 시대에 실물 음반 매출을 내려면 굿즈 기능 강화나 추첨권 첨부를 통해 중복 구매를 유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를 보면서 계속 하게 된다. 지금 시대에 CD가 음악 재생 매체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안다. 하지만 지난 싱글이 이미 초동 28만 장을 넘겼고 이번 싱글이 그 못지않게 팔릴 텐데, 이 적잖은 액수의 CD 매출과 초동 판매량 보도를 통한 화제몰이 효과를 생각해보면 CD 판매를 포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의 시대를 만든 장본인임을 입증하다

“극장판 체인소맨 : 레제 편” 삽입곡 ‘IRIS OUT’은 사실상 ‘KICK BACK’의 후속작으로, 같은 프랜차이즈 내의 두 번째 참여작인 만큼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다양한 차별점을 만들어 냈다. 두 곡 모두 마이너 스케일을 기반으로 온갖 소리를 꽉꽉 채워넣는 계산된 기행을 통해 체인소맨 프랜차이즈에 걸맞는 어지럽고 공격적이며 B급에 가까운 분위기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그의 보컬로이드 작품이나 요네즈 켄시 명의의 초기작 “Diorama”, “YANKEE” 시절을 연상케 한다. 주인공 덴지의 시점에서 쓴 노골적으로 욕망을 표현하는 가사, 튜닝을 가미한 음색으로 목을 긁어내며 다량의 가사를 뱉는 보컬, 왠지 공연장에서 떼창이 나올 법한 킬링 파트 삽입, 숏폼 시대를 겨냥한 듯한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전조와 비트 변화를 동반하여 뚜렷하게 기승전결을 갖추는 구성 등 다양한 공통점을 갖췄다.


공동 편곡자 츠네타 다이키와 함께 강렬한 밴드 사운드를 가미한 ‘KICK BACK’과 달리, ‘IRIS OUT’은 요네즈 켄시 혼자 프로그래밍으로 모든 소리를 채워 ‘KICK BACK’과 꽤 다른 질감을 보여준다. 곡을 이끄는 주력 악기가 일렉트릭 기타에서 신디사이저와 피아노로 바뀌어 최근작 ‘Plazma’와 ‘BOW AND ARROW’와 이어지는 것은 물론, 프로그래밍 기반인 만큼 요네즈 켄시의 오랜 주특기인 보이스 샘플 삽입과 음성 변조가 돋보여 전작 ‘KICK BACK’ 이상으로 그의 개성이 짙게 느껴진다. 두 번째 등장하는 “IRIS OUT”의 변조된 음성과 그 이후 등장하는 보이스 샘플에서 그의 주특기가 이처럼 괴이한 보이스 샘플 활용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더해 예고편의 편집을 그대로 따온 레제 목소리의 삽입이 곡의 흥미로움을 결정적으로 키웠다. 영화관에서 레제 목소리 없는 ‘IRIS OUT’을 들으니 이제 심심하게 들린다.


한국에 사는 청자로서 특히 놀란 부분은 중간에 삽입된 랩 및 간주 파트였다. 랩을 시도하고 그 결과물이 꽤 준수한 것도 놀랍지만 이는 ‘LOSER’ 등 그의 전작으로 보아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헌데 퍼커션과 베이스 외 모든 악기를 빼서 분위기를 반전하며 시작한 뒤 여기에 랩을 올리거나, 보이스 샘플과 여타 악기를 쌓아 이후 보컬 파트와 연결하여 소위 ‘댄스 브레이크'에 가깝게 간주를 삽입한 것은 너무나도 K팝 아이돌 음악 같았다. 내가 이것을 듣고 경악한 것은 그가 ‘서브컬처다움'을 만들고 규정한 중요 기여자이자 보컬로이드 출신 뮤지션들이 메이저에서 번성하는 시대를 만든 장본인인 동시에, 이 시대 경향에 꼭대기에 서있을 수 있는 역량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읽혀서였다.


카라와 소녀시대가 각각 ‘미스터'와 ‘GENIE’로 일본에 데뷔한 해, wowaka의 ‘롤링 걸'과 하치의 ‘마트료시카' 등을 필두로 니코니코 동화(이하 니코동)에서 보컬로이드와 우타이테의 인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던 해가 모두 2010년이다. 빌보드재팬의 상당 부분을 K팝 아이돌과 니코동 계열 뮤지션들이 점유하는 지금 이 시대에 활동하며, 프로그래밍 기반의 작업을 추구하는 일본의 90~00년대생 뮤지션들이 보컬로이드 어법의 정키함을 기반으로 K팝 식의 다이나믹을 추구하는 곡을 내놓은 것은 그들의 성장 배경과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요아소비의 ‘아이돌', 기가P가 제작한 아도의 ‘Show’의 제작과 성공을 이런 지점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이 두 아티스트의 메이저 데뷔와 대성공을 가능케 했던 배경인 요네즈 켄시의 디스코그래피는 초기작 이후 상당 부분이 서브컬처에 익숙하지 않은 청자를 위한 결과물이다. 서브컬처 출신으로 메이저 시장에서 슈퍼스타가 된 초기 주자로서 여러 종류의 청자를 고려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 서브컬처적 어법과 정서를 보다 수면 위로 끌어올려 메인스트림에서 성과를 내는 역할이 그 이후 세대 뮤지션에게 넘어가는 것도 어떤 서브컬처가 메이저 시장에서 번성하는 흐름일 것이다. 허나 요네즈 켄시의 초기작을 통해 서브컬처적 어법과 정서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된 나로서는 니코동 계열 뮤지션들이 메이저 시장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 시대에 한동안 그의 서브컬처적 역량이 과거의 결과물에 머물러 있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랬던 내게 ‘KICK BACK’을 통해 요네즈 켄시가 자신이 태어난 서브컬처가 대세가 된 시대 흐름에 다시 올라타고, ‘IRIS OUT’을 통해 이 시대 흐름 속에서 여전히 최고봉에 서있을 수 있음을 입증하는 장면은 짜릿했다. 그가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서브컬처적 어법을 통해 생동감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최고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과, 그렇게 만들어낸 생동감이 그의 현역 뮤지션으로서 가져가는 치열함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기쁘다.



꿈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보여주는 고점 업데이트

‘IRIS OUT’과 같은 작품의 엔딩 주제가로 활용된 ‘JANE DOE’는 우타다 히카루와의 듀엣곡이다. 두 사람의 콜라보레이션이 발표되자 나는 정말 ‘이게 실화인가' 싶었다. 둘 모두 음악의 1부터 100까지 모든 요소를 자기 힘으로 만들어내는 스타일의 거물인 만큼 콜라보레이션이 성사될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였다. 특히 다른 사람이 쓴 곡을 부르는 우타다 히카루의 모습을 보게 되다니 정말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 이 콜라보레이션이 서로의 개성을 온전히 살리며 상상 이상의 시너지를 낸 점에 크게 놀랐다.


‘JANE DOE’는 여성 보컬과 듀엣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엔딩 주제가를 부르는데, 듀엣 상대를 적극 고려하여 제작하고 요네즈 켄시의 보컬이 조연을 자처했다는 점에서 ‘쏘아올린 불꽃'과 구도가 비슷하다. ‘쏘아올린 불꽃'의 하이햇 쪼개는 소리가 본래 래퍼로 활동하던 다오코를 위한 것이었다면, 재지한 피아노 반주로 시작하여 R&B스러운 8분의 6박자 드럼머신으로 1절을 전개하는 ‘JANE DOE’의 초반부는 우타다 히카루를 위한 것이다. 첫 후렴이 시작된 뒤 스네어 드럼 톤이 일렉트로닉에 가깝게 바뀌고 스트링이 쏟아지자 이 곡이 요네즈 켄시의 곡임을 실감했는데, 그의 전작 중 스트링 위주의 발라드를 기반으로 군데군데 일렉트로닉의 접근법을 차용했던 ‘바다의 유령'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목할 점은 우타다 히카루와 요네즈 켄시 두 사람의 보컬 퍼포먼스다. ‘JANE DOE’ 1절의 우타다 히카루는 부드러운 톤으로 R&B에 기반하여 음을 밀고 당기는 데에 능한 본인의 스타일을 온전히 살려내는데, 이러한 보컬이 그간 그의 발매작들과 겹쳐져 들린다. 반면 2절에서 처음 등장하는 요네즈 켄시는 1절의 우타다 히카루보다 배로 많은 수의 음절을 소화하며 듀엣 상대와 차별화된 감흥을 유도하는 한편, 군데군데 그 역시 풍성한 성량으로 음을 밀고 당기며 우타다 히카루와 조화를 이룬다. 이쯤 되니 두 번째 후렴에서 우타다 히카루도 적잖은 수의 음절을 부르는 게 보이는데, 아무래도 요네즈 켄시의 곡이라 그럴 것 같다. 곡은 후반으로 갈수록 이 무척이나 다른 두 보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춤추듯 가창하는 조합을 연출하고, 끝내 그 합을 통해 레제와 덴지라는, 전혀 다른 두 인물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두 사람의 보컬을 교차시키는 지점에 주고 받는 질문과 화음을 연이어 배치하고, 허밍 전 마지막 파트에서 곡의 맨 첫 두 줄을 두 사람이 서로 이어부르게 만드는 등 목소리 배치와 완벽히 엮인 가사 배치가 곡의 감흥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덴지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와 달리, 노래 ‘JANE DOE’는 우타다 히카루를 주연으로 하여 레제의 속마음을 조금 더 깊게 비추며 영화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이렇게 가사와 보컬의 합을 통해 감정을 만드는 곡에서 최후반부 감정 표현의 하이라이트를 신디사이저에 맡기고 그 아래에 허밍을 묻는 구성은 곡에 의외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청자에게는 여러 생각을 파도치게 만들었다. 이 의외성 넘치는 하이라이트는 두 사람이 커리어 내내 자신이 만들어낸 음악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과잉 없는 보컬을 지향해왔기에 가능했다.


극장 스피커에 걸맞는 스케일과 감정을 후벼파는 구성으로 영화의 감흥을 극대화하는 ‘JANE DOE’는, 영화를 다 본 관객들에게서 ‘IRIS OUT’보다 명곡이라는 영화평을 양산하며 영화의 화제성에 크게 기여했다. 나는 이 상상한 적도 없던 콜라보레이션이 기어코 성사된 것, 이 콜라보레이션의 판을 짠 요네즈 켄시가 참여자 모두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한 것, 그가 조연을 자처했음에도 커리어 사상 최고의 보컬 퍼포먼스를 뽑아낸 점에 모두 감격했다. 이걸 다 보고 들었는데도 이게 현실이 아니라 꿈인 것 같다.


체인소맨이 두 곡을 인도할 지점

‘IRIS OUT’ 발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이 곡을 처음 들은 내 반응은 3년 전 ‘KICK BACK’ 발매 때와 똑같은 도파민 과다 분출과 흥분이었다. 짜릿함으로 2분 30초를 온전히 채운 곡에 한창 감탄하던 와중, ‘JANE DOE’를 크게 호평하는 일본 개봉 후기를 보고 참지 못한 나는 개봉 주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온갖 재미있는 것으로 러닝타임을 도배한 “극장판 체인소맨 : 레제 편"은 순리대로 흥행하고 있으며, 요네즈 켄시가 만든 두 곡은 현재 일본 스트리밍 차트 1, 2위를 쌍끌이하고 있다. ‘IRIS OUT’의 신기록 행진을 보면 이제 기쁘다 못해 무서워질 지경이다.


‘KICK BACK’은 애니메이션 “체인소맨" 1기의 OTT 배급과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J팝 최초 RIAA 골드 및 플래티넘 인증을 받는 등 일본 밖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냈고, “JUNK” 월드 투어에서 요네즈 켄시는 ‘KICK BACK’의 힘으로 커리어 최초 유럽과 미국 공연을 성사시켰다. ‘KICK BACK’도 한국 유튜브 차트에 랭크인하는 등 한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아 그의 내한 공연 성공에 큰 공을 세웠는데,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극장판 체인소맨 : 레제 편"과 ‘IRIS OUT’이 그의 활동 영역을 얼마나 넓혀줄 지 역시 기대되는 지점이다.


내 바램은 ‘JANE DOE’가 계기가 되어 우타다 히카루가 내한 공연을 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 시점부터 J팝을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사람인데다, 체인소맨을 통해 요 근래 개최되는 J팝 내한공연을 채우는 젊은 관객들에게도 이름을 알렸으니 한번쯤 내한 공연을 올 만하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된다. 물론 좀더 가능성 높은 것은 다음 요네즈 켄시 내한 공연 예매 날에 첫 공연 때의 4만 3천명을 넘어서는 수의 대기열이 몰리는 것이다. 영화가 잘 되고 있으니 누구든 내한 올 확률은 높아져가고 있는데 거기 내 자리가 있을 확률은 글쎄 이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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