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바라보는 호시노 겐 식 블랙 뮤직

호시노 겐 내한 기념 최근작 3개 돌아보기

by 예미

이번 일요일에 호시노 겐의 첫 내한공연에 가게 되었다. 그의 음악을 멀리서 바라보며 흥미로워하던, 원래는 한국의 블랙 뮤직을 열심히 듣던 청자의 입장에서 그의 음악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본다.


모든 것의 시작, MIU404

일본 현지와 달리, 한국 호시노 겐 팬덤의 기폭제는 드라마 <MIU404> 였다. 전작 <언내추럴>로 한국에 이름이 알려진 노기 아키코 작가가 집필한 이 경찰 드라마는 특히 한국에서 투탑 주연인 아야노 고와 호시노 겐의 케미에 주목하는 여성 팬덤을 확보했고, 이 드라마 및 커플의 팬덤이 두 주연 배우의 팬덤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수순을 밟았다. 드라마가 5년이나 되었는데도 지금도 이부키와 시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종종 보이는데, 드라마 기반 캐릭터 팬덤으로 이 정도면 굉장히 팬덤이 탄탄하고 오래가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게 나를 포함하여 <MIU404>의 배우로 호시노 겐을 알게 된 이들 상당수가 올림픽홀에서 개최되는 가수 호시노 겐의 내한공연 예매를 시도했고, 나는 첫 예매 날 대기번호 만 번대를 받았다. 같이 예매에 도전한 친구는 더 뒷 번호를 받았는데, 대기열에서 매진 소식을 들은 건 매한가지였다. <MIU404>의 주제가는 호시노 겐의 곡이 아니었지만, 드라마 방영 시점은 호시노 겐이 가수 커리어의 천장을 찍은 이후였으니 그의 팬이 가수로서의 디스코그래피를 안 알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음악과 드라마라는 매체의 차이와, 특히 정보 파편화를 일으키는 국경의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어 한 사람의 여러 면모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충성도와 몰입도가 결코 일반적인 팬심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처럼 바다 건너 한국에서 <MIU404> 팬덤이 가수 호시노 겐의 팬덤으로 자연 전환된 드문 현상은 호시노 겐 디스코그래피의 높은 접근성과 풍성한 깊이를 보여준다. 그 접근성과 깊이가 국경을 넘어 한국 청자에게도 소구력을 갖는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R&B, 펑크(Funk), 힙합 등 블랙 뮤직 사운드를 자국 가요 포맷에 올려보는 시도의 갯수와 시장 내 영향력은 확실히 한국이 일본을 상회하니, 일본 현지에서 이런 시도로 역대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이 된 호시노 겐을 반갑게 맞이해 줄 토양이 한국 청자들에게 이미 마련되어 있던 것 아닐까 싶다.


그의 25년 커리어 중 그를 이 자리까지 올려놓은 것이 최근 10년치 정규 세 장인 것을 보면 그렇다.


“YELLOW DANCER”부터 “Gen”까지

2000년부터 인스트루멘탈 밴드 SAKEROCK의 리더로 활동하던 호시노 겐은 2011년 “Bake no Uta”로 솔로 데뷔한다.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던 호시노 겐은 2013년 지주막하출혈로 생명의 위기를 맞이한 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재즈, 펑크(Funk), R&B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원 없이 즐거움을 추구하기로 한다.


호시노 겐은 자신이 발매한 거의 대부분의 곡에서 제1 편곡자로 자리하며 디스코그래피 전체에서 편곡 주도권을 확고히 가져간다. 블랙 뮤직의 지장 아래에 있는 다양한 소리를 가져오는데, 어떤 사운드를 가져오더라도 선호하는 사운드 스케이프와 질감이 분명하다는 점이 돋보인다. “YELLOW DANCER”에서 20세기 재즈와 펑크(Funk) 사운드를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접근을 제시한 뒤, “POP VIRUS”에서는 여기에 보다 동양적 멜로디를 기반으로 군데군데 드럼머신과 신디사이저를 덧대 동시대의 제이팝을 만들어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https://youtu.be/jhOVibLEDhA?si=VSc71ulvgJ0qB-RX

“YELLOW DANCER” 초반 싱글곡인 ‘지옥이 뭐가 나빠’, ’Crazy Crazy’에서는 투병 전후로 달라진 인생관과 삶을 대하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이후 보다 가볍고 여유로워진 ‘SUN’으로 이름을 알린 뒤, 이 접근을 보다 팝적으로 확대한 ‘Koi’와 해당 곡이 삽입된 주연작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대성공을 통해 호시노 겐은 일본 연예계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톱스타로 자리 잡는다. ‘Koi’ 이후 변화된 위치에서 사랑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고, 음악의 역할과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보는 앨범 “POP VIRUS”를 내놓은 그는 5대 돔 투어를 완수하기에 이른다.


https://youtu.be/74FIsXlS0EQ?si=2P5b3F_XrSQpTXl_

커리어 최정점에 도달한 호시노 겐은 이윽고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작법을 스스로 부수기 시작했다. R&B라는 기반을 유지하되 MIDI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종전까지 세션으로 채우던 소리를 하나씩 색채감과 공간감이 돋보이는 신스로 바꾸었다. 그의 음악을 지탱하던 댄서블함을 종종 내려놓고, R&B와 소울이 요구하는 풍성한 가창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또한 프로듀서 mabanua를 공동 편곡자로 초청하고, 세계 각국 뮤지션들과 교류하는 등 이전까지 호시노 겐 1인으로 귀결되던 세계를 넓혔다. 그렇게 재미를 좇아 자신을 변모해간 7년의 시간을 그는 정규 앨범 “Gen”으로 보여주었다.


목소리의 나라에서 읽는 창의적 대중성

블랙 뮤직의 컨벤션을 자기 식으로 변용하여 일본에서 다수 청자를 확보한 호시노 겐의 음악이, 비슷한 궤적의 가요적 전통을 공유하되 블랙 뮤직의 영향력이 큰 한국 청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접근성을 확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음악의 접근성을 확보하는 방법에서 보컬 기교 뽐내기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보통의 한국 청자들이 기억하는 국내외 R&B, 소울 아티스트의 절대다수는 그 특유의 장르 색채 묻은 기교와 목소리가 주는 압도감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이니, 목소리의 압도감이 아닌 사운드 컨벤션 변용을 통해 많은 청자를 끌어들인 호시노 겐의 접근은 분명 생소한 것이었다.


https://youtu.be/F4kUnm4nOpI?si=o2TH0NZm6i0_YqsQ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는 장르적 질감을 살리면서도 소리를 산뜻하게 연출하는 것이 돋보인다. “YELLOW DANCER” 수록곡 ‘Week End’나 ‘SUN’을 들어보면, 그루비한 기타를 토대로 밀도 있는 모타운 사운드를 적극 차용했지만 이를 실제 모타운이나 이를 재현하려는 여타 시도에 비해 각 악기의 부피감을 줄여 보여준 것이 돋보인다. 비슷한 기반의 브라스와 드럼이지만 ‘Week End’가 나얼의 ‘Stand Up’, 실크 소닉의 ‘Fly as Me’ 등에 비하면 톤이 높고 무게감이 적다. 이처럼 가볍고 댄서블한 사운드가 R&B식 ‘명창'의 이미지와 거리가 먼, 담백하기 그지없는 호시노 겐의 목소리와 괜찮은 합을 보여준다.


https://youtu.be/ilnLczvLGAY?si=2hFyTIi-HORXqv45

https://youtu.be/D_Oyplmhhv0?si=5m5RPJF9hT0rjIDr

한편 “Gen” 에서는 보다 이후 시대 블랙 뮤직을 재료로 삼고, 산뜻한 악기 활용에 더해 가성과 코러스 연출을 통해 호시노 겐 자신의 목소리로 장르적 뉘앙스를 절묘하게 살려내는 곡이 늘어난다. 브루노 마스의 ‘Versace On The Floor’와 비슷한 신스 리듬을 후렴에 깔아 놓은 뒤, 가성과 코러스 연출로 곡에 장르적 인장을 부여하는 동시에 공간감 극대화로 개성을 부여한 ‘FUSHIGI’가 대표적이다. 크러쉬의 ‘가끔' 등에서 알 수 있듯 힙합 색채가 섞인 컨템포러리 R&B 비트는 대체로 보컬 기량을 뽐내기 위한 발판으로 의도되곤 하는데, 이러한 비트 위에 가성과 코러스를 올려 압도감보다 조화로움을 보여준 ‘Comedy’도 주목할 만 하다.


이처럼 가볍고 담백한 호시노 겐의 목소리로 여러 종류의 블랙 뮤직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소리 구성은 그의 음악에서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고, 그렇게 호시노 겐 식 블랙 뮤직은 곧 팝이 되어 그를 톱스타의 자리로 이끌었다. 장르적 즐거움이 팝적 친근함 속에 스며든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R&B의 대중화'는 무척 폭이 좁았던 것 같다. ‘대중적 접근'에서 보컬 기량을 앞세운 극적인 구성을, ‘장르적 접근'에서 묵직한 질감의 사운드 연출을 떠올리던 것이 사실 한국에 살던 나의 고정관념에 불과했다니. 그것이 열도의 R&B 슈퍼스타가 내게 준 가장 큰 경이였다.


대 내한의 시대 속 호시노 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러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본 콘텐츠의 접근성이 높아지며 한국의 제이팝 청자는 급속도로 늘어났고, 엔데믹과 함께 일본의 메이저 뮤지션 상당수가 투어 일정에 서울 공연을 끼워넣는 시대가 열렸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는 <MIU404>로 한국에 이름을 알린 호시노 겐도 2025년 신보 “Gen”에서 이영지의 참여 소식과 함께 내한을 발표했다. 공연장 크기 빼고 다 기쁜 소식이었다.


추가 공연 예매에서 운이 좋아 대기번호 세 자릿수를 받으며 일요일 공연에 가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그의 도쿄돔 라이브 영상을 보며 무대를 장악하는 베테랑의 모습에 즐거워했는데, 그의 무대를 눈 앞에서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신스 기반의 레코딩이 밴드 세션과 함께하는 라이브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Gen” 앨범 수록곡과 그 이전 발매곡들이 같은 세트리스트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지도 궁금하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연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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