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겐 내한 공연 후기
지난 몇 년간 내게 호시노 겐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알 수밖에 없는 슈퍼스타였다. ‘감전'을 따라 <MIU404>와 해당 드라마의 팬덤을 지켜본 입장에서 호시노 겐의 족적을 모를 수는 없었으니까. 그만큼 마주했던 팬의 수에 비해 정작 내가 가수 호시노 겐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살짝 심심한 듯 건강한 질감의 음악과 콘셉트가 마음에 스며들 만큼의 여유가 생긴 딱 그때쯤 내한이 발표되었고, 추가 예매 날 대기번호 세 자릿수를 받는 행운에 힘입어 공연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여러 행사로 북적이는 올림픽공원을 지나, 굿즈를 사고 올림픽홀에 들어가니 흡사 <나얼의 음악세계> 유튜브 채널에서 틀어줄 법한 종류의 블랙 뮤직이 흘러나왔다. 음악인 호시노 겐의 원천이자 원동력일 음악을 들으며 눈에 들어온 것은 공연 전 빈 무대 촬영을 금지한다는 공지였다. 반년 전 인스파이어에서 경고를 무시하고 빈 무대를 찍다가 카메라에 까만 스티커가 붙은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공연 세트리스트는 호시노 겐 솔로 커리어를 총망라하며 그의 다채로운 면모를 한 줄기로 통합해냈다.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공연을 시작한 뒤 잔잔한 곡에 다채로운 조명을 배치하고,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환호 속에서 하이라이트를 맞이한 뒤 앵콜로 끝맺는 구도에서 그간의 발매곡들을 알맞은 곳에 배치했다. 시작 부분에 ‘지옥이 뭐가 나빠'와 ‘SUN’, 잔잔한 곡으로 ‘Eden’과 ‘Kuse no Uta’, 분위기를 끌어올릴 때 ‘Mad Hope’-’Star’-’Create’, 후반부 하이라이트에 ‘Doraemon’과 ‘Koi’가 배치되었으니 ‘커리어 한 줄 요약'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세트리스트가 의도한 감정선의 흐름에서 반년 전 다녀온 요네즈 켄시 공연이 떠올라서, 절대 다수를 만족시키기 위한 서비스가 대부분 그러하듯 대형 공연의 기본적인 골격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구조가 비슷한 만큼 각 구간을 채우는 곡의 질감에서 아티스트의 개성을 명확히 떠올릴 수 있었다. 당장 떼창을 의도하는 최고 하이라이트가 ‘KICK BACK’인 공연과 ‘Koi’인 공연이 얼만큼의 간극이 있을 지 보이지 않나. 이처럼 화려한 대표곡 말고도, 은은하면서도 다채로운 조명을 활용한 ‘Ain’t Nobody Know’나, 기타 한 대로 어마어마한 몰입을 부른 ‘Kurayami’와 같은 어쿠스틱 넘버의 배치에서 호시노 겐 디스코그래피의 독특함이 느껴졌다. 이처럼 정석적이면서도 다이나믹한 구도를 자기 개성으로 온전히 채울 수 있는 레퍼토리가 담보되어야 아레나 이상의 대형 공연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쿠스틱을 지향하던 초기작과 리얼 세션을 기반으로 레트로한 블랙뮤직을 구현하던 출세작, 보다 현대적인 블랙뮤직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넓혀가는 최근작이 한 공연의 세트리스트로 이질감 없이 묶인 점이 놀라웠다. 이처럼 지향점이 다채로운 장기간의 발매작을 한데 묶은 것은 공연 내내 소리가 주었던 풍성함과 따스함이었다. 밴드 세션에 더해 브라스 세션 두 분이 오셨는데, ‘SUN’이나 ’Week End’처럼 브라스를 중요하게 사용하는 그의 여러 곡들을 생각해보면 꼭 필요한 세션이었다. 음반에서도 엿볼 수 있던, 그의 디스코그래피 전반에 깔린 풍성함과 따스함을 실제 밴드 라이브 연주로 들으니 그 현장감이 대단히 즐거웠다. 세션의 중요성을 연출에서도 반영한 듯, 호시노 겐이 세션 기타리스트를 마주보고 함께 기타를 연주하는 ‘Mad Hope’를 필두로 적지 않은 곡에서 세션이 가수와 함께 조명을 받아 무대에 선 모두가 함께한다는 감각을 주었다. 웹상에 콘서트 세션들의 역사와 이력을 유독 꼼꼼하게 정리하는 호시노 겐 팬들의 마음을 공연 중 세션 소개 시간에 박수 치며 느낄 수 있었다.
무대 위 호시노 겐은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친밀한 교류를 즐기는 아티스트이다. 소위 ‘의탠딩' 공연에서 관객을 첫 무대부터 모조리 일으켜 세웠고, 무대 곳곳을 누비며 구역별 관객을 마주했는데 팔을 한번 휘저으면 한 구역 관객이 모조리 환호할 정도로 무대 장악력이 뛰어났다. ‘Star’ 처럼 아티스트가 떼창 파트를 지정해서 관객과 작정하고 소통하려는 곡도 있었다. 멘트 타임에도 곳곳에서 ‘귀여워' 같은 한국어를 따라하고, 노래가 끝날 때마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국경에 구애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돋보였다.
관객의 웃음을 적극적으로 의도하는 구성의 VCR은 관객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에 도가 튼 아티스트를 뒷받침했다. 서울 공연에 맞춘 오프닝 VCR으로 공연을 시작한 것은 약과였다. 그동안 발표한 뮤직비디오들을 짤막하게 잘라 이어 붙여 “When did you get into Gen Hoshino?” 라는 제목의 인터미션 VCR을 재생했는데, 거기서 솔로 초창기 시절 얼굴이 나올 때나 ‘Koi’, ‘Doraemon’, ‘Family Song’, ‘FUSHIGI’ 등 중요 장면이 나올 때 관객 반응이 술렁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도라에몽과 친구들이 호시노 겐 공연에 간다는 내용으로 관객의 “타스케테 도라에몽" 연호를 이끌어낸 ‘Doraemon’ 전 VCR과, 앵콜 전 까만 선글라스를 쓴 부캐 ‘니세 아키라'를 소개하는 쓸데없이 진지한 VCR도 관객의 큰 웃음을 자아냈다.
이중 화룡점정은 게스트 이영지의 등장이었다. ‘2’ 무대를 끝내고 이영지와 호시노 겐은 거의 만담에 가까운 대화를 이어갔는데 너무 재밌어서 두 사람의 예능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캉코쿠노 유교문화” 같은 한본어로 시작하여 끝까지 호칭 ‘겐상 선배님'을 외치는 것은 물론, 한국어로 “사랑합니다”가 “자주 오겠습니다" 라고 주장하여 호시노 겐 입으로 “자주 오겠습니다"를 외치게 만드는 등 언어의 장벽을 활용하는 이영지의 재치가 정말 압권이었다. 이렇게 달궈진 분위기가 ‘Koi’의 떼창 및 이후 앵콜 파트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공연 후반부를 전과 비할 바 없이 뜨겁고 풍성하게 만들었는데, 이영지 등장과 함께 한국어 통역이 제공되어 한국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 점도 분위기 전환에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처럼 관객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에 도가 튼 아티스트의 캐릭터와 깊이 있으면서도 친근한 디스코그래피, 그리고 관객 참여를 적극적으로 의도하는 연출이 합쳐져 따스한 웃음을 자아내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공연이 완성되었다. 공연 후반부 “타스케테 도라에몽"을 외칠 때쯤, 이 공연이 일본 현지에서 가족, 친구, 연인 단위 관객을 불러모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만약 다음 내한이 있다면 그때는 친구와 오고 싶어졌다.
일본 현지에서 ‘온가족의 아레나'일 공연이 바다를 건너오니 일본어 멘트를 통역 없이 빠르게 이해하는 이들로 채워진 ‘덕후들의 올림픽홀'이 되어 있었다. 내한을 맞는 한국 호시노 겐 팬들의 열의는 아이돌 팬 못지 않았다. 팬들이 공연장 앞에서 슬로건을 나눠 주었고, 이벤트 카페를 만들어 굿즈를 전시하는 것은 물론,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갖 팬메이드 굿즈를 올림픽공원 곳곳에서 나누고 있었다. 금요일에 김포공항에서 하루종일 입국을 기다린 팬들이 한 목소리로 호시노 겐에게 인사하는 모습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었다. 한편, 공연이 끝나고 올림픽공원역에 가는 길목에서 내 뒤에 있던 어느 분들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거의 모든 일본 아티스트 공연을 다 거론하고 있었다. “켄시도 다녀왔고, 다음 주에는 세카오와를 갈 거고, 즛토마요는 어떻게 되었으며…” 다수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에 출석 도장을 찍는 국내 ‘제이팝 팬'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존재와 열의를 이렇게 알 수 있었다.
공연 다음 날 저녁에 이영지가 참여한 수록곡 ‘2’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공연 끝나고 올림픽공원역으로 향하던 사람들의 즐겁고 열띤 수다가 떠올랐다. 이렇게 공연의 여운까지 고려해주는 거 보니, 다음 호시노 겐 내한 공연은 아마 이 덕후들이 친구들까지 데려올 수 있는 규모의 베뉴에서 치러지지 않을까? 모두를 위한 좋은 공연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그리고 일상을 즐겁게 살 힘을 얻을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