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12집 “LIFE!” 리뷰
자우림이 4년 만에 정규 12집 “LIFE!”를 발매했다. 앨범을 돌려 들으며 했던 생각들을 간단히 정리해본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라이프!’는 방황하며 춤추는 이미지를 그린다. 이 강렬한 소리의 뒤를 잇는 곡은 남성과 해로운 관계를 겪는 여성을 바라보는 ‘마이걸' 이다. 이 타이틀곡들을 필두로 앨범은 이번에도 불안을 껴안고 달리는, 사랑과 분노를 외치는 지극히 자우림다운 인간상을 그린다.
자우림 앨범에 등장하는 이 일관된 인간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젊고 어리다. 스모키 화장을 한 채 뱀파이어와 아테나 여신을 부르짖는, 웅장하고 비현실적인 모습은 분명 청소년의 정서와 조응할 것이다. 불안, 사랑, 분노를 크고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도 청년의 모습에 가깝다. 무엇이든지 크고 많은 감정을 맹렬하고 느끼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젊음의 모습 아닐까? 같은 상황이나 감정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그 감정에 쓰는 에너지가 사그라든 경험을 떠올려 보니, 확실히 인생 경험이 적은 어린 사람일수록 그때 그때의 느낌에 더 생생히 반응할 수 있을 것 같다.
앨범 곳곳에 깔린 페미니즘 코드는 이 앨범을 더욱 동시대적인 것으로 만든다. 남성의 여성 대상 폭력을 경고하는 ‘마이걸', 여신의 힘을 빌린 임파워링 넘버 ‘아테나', 여성 간의 사랑을 짙게 그린 ‘콜타르 하트' 등, 앨범은 이 시대 대중문화 속 페미니즘의 토픽을 다채롭게 다룬다. 페미니즘을 체화한 젊은 여성이 록 페스티벌의 주 관객으로 떠오른 시대에, 자우림이 오래도록 천착해 온 여성의 관점은 동시대 록 청자와 긴밀하게 호흡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
앨범 전체를 떠받치는 기타의 자글거림은 앨범 속 인간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런던에서의 작업이 영향을 끼친 듯, 전 곡에 걸쳐 저음역대의 기타가 부글부글 끓으며 앨범을 감싸는 젊음의 정서를 그린다. 이를 더욱 맹렬하게 만드는 것은 김윤아의 보컬 퍼포먼스다. 곡마다 톤을 완전히 바꾸는 다채로움도 돋보이지만 이보다 더 큰 것은 레코딩 전반에 깔린 스태미나다. 굳이 한 음 더 올리는 ‘라이프!’의 고음, 굳이 한 번씩 더 외치는 ‘마이걸’이나 ‘렛잇다이'처럼, 굳이 한 번 더 힘을 주는 순간이 들끓는 기타와 합쳐져 ‘적장히'가 없는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처럼 여성 청년의 정서와 맞닿는 곡을 쓰고 부르며 끝이 없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자우림 멤버 세 사람의 나이가 50대라는 것은 믿기 어렵다. 김윤아가 우리 엄마와 비슷한 나이라니, 실화인가? 그 나이에도 청년과 맞닿는 관심사를 갖고, 무뎌지지 않은 감각으로 뭐든지 크게 느끼고 맹렬히 표현하며 치열한 자세로 살아가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들의 결과물이 결국 청년과 말이 통하는 멋진 어른을 그린다는 것이다. 젊은이스러운 취향과 관심사를 갖고 그대로 나이 든 어른은 요새 꽤 많이 늘었으니, 50대가 되어서도 만화를 탐닉하고 SNS를 활발히 들락거리는 록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지 자신들이 젊었을 때의 청년문화에 천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여성 청년이 가진 고민거리와 열망을 탐구하며 이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은 분명 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나도 이렇게 치열히 살아가는 멋진 어른으로 나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