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화양연화" 10주년 기념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가능하게 한 “화양연화” 시리즈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성장하게 된 첫발을 내딛는 이 앨범은 지금의 케이팝에서 너무나도 당연해진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 당연해져 가는 과정이 내게는 추억이자 지식을 쌓는 시간이었다. 이 시리즈의 10주년을 맞아, 10년 전 그 시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잠시 되짚어 보자.
내 학창 시절 남자 아이돌 취향 지도의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소위 ‘힙합 아이돌’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거짓말',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루하루'와 ‘붉은 노을', 중학교 1학년 때 ‘Fantastic Baby’가 나왔으니 당시 내 세대에게 빅뱅의 영향력은 막대했고, 그로 인해 랩이나 작사 작곡 능력을 가진 멤버들이 하나둘씩 끼어 존재감을 보여주는 그룹이 늘어났다. 이 ‘힙합 아이돌’들을 통해 랩을 접했던 학생들에게 힙합을 본격적인 인기 장르로 만든 방송이 2014년 <쇼미더머니3> 였다.
한국 래퍼들에게 돈자랑 스웩이 가능해진 시대를 열어젖힌 <쇼미더머니3>의 흥행 한편에는 YG의 야심이 있었다. 빅뱅 이후 다음 보이그룹을 성공시키고자 했던 YG는 자체 서바이벌 <WIN : Who is Next>의 출연자였던 바비와 비아이를 <쇼미더머니3>의 참가자로, 타블로를 심사위원으로 출연시켰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 천착한 래퍼들 틈바구니를 뚫고 <쇼미더머니3>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비는 정식 데뷔도 하기 전에 여학생들에게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이후 방송된 서바이벌 <MIX & MATCH>와 에픽하이 ‘Born Hater’의 흥행을 거쳐,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되니 ‘힙합 아이돌'을 좋아하던 거의 모든 여학생이 다음 세대 아이돌로 바비가 데뷔할 새 그룹을 점찍어둔 상태였다.
방탄소년단이란 팀을 처음 알았던 것도 바로 이 2014년이었다. 교실 TV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테스토스테론 어쩌고 하는 가사가 나오니, 그들은 중학교에서도 ‘병맛 그룹’ 취급이었다. 그렇게 음악 방송 앞부분에 나오다 말고 잊혀질 것 같던 이 그룹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 곳은 그 다음해 입학한 고등학교 기숙사였다. ‘I NEED U’라는 강렬하면서도 멀쩡한 노래를 하는 이 그룹이 바로 그 ‘병맛 그룹'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후 ‘쩔어'의 퍼포먼스가 큰 인기를 끌며 댄스 동아리의 남학생들이 이 곡의 춤을 추고, ‘불타오르네'가 ‘쩔어' 그 이상의 에너지로 각인되면서 이들은 학생 사회에 크게 이름을 알렸다.
당시 내가 방탄소년단 앨범 수록곡을 처음 들은 곳은 대부분 기숙사 방 스피커였다. 우리 학교 기숙사는 학생들의 신청곡을 아침마다 기상송으로 틀어줬는데, 휴대폰 수거가 원칙이라 좋아하는 최신곡을 들을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가 기상송밖에 없어서 신청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다. 우리 학교의 방탄소년단 팬들이 기상송 신청에 열을 올린 덕에, 기숙사에서 1분이라도 늦게 나가는 데에 열을 올리던 나는 방탄소년단 앨범 수록곡을 모조리 외울 만큼 듣게 됐다. ‘쩔어'나 ‘불타오르네'의 강렬함 말고도 팀의 여러 면모를 다채롭게 기억하게 된 게 그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곡을 듣고 그게 방탄소년단 곡임을 판단했던 첫 근거는 아주 시끄러운 사운드였다. 방탄소년단 음악은 그 당시 고등학교에서도 시끄럽다고 비난을 받곤 했는데, 그게 비단 채용한 장르 때문만은 아니었다. “화양연화" 시리즈는 당시 트렌디한 힙합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가져왔는데, 비슷한 사운드와 이미지를 표방하는 그룹들 중에서도 방탄소년단은 다듬어지지 않은 날카로운 소리를 유독 큰 볼륨으로 내보내는 팀이었다.
지금 들어보면 로파이한 인상마저 주는 사운드 질감과 덜 정돈된 듯한 보컬 레이어들이 그 시절의 열악했던 제작 여건을 보여주는 듯 한데, 그 시끄러움이 방탄소년단을 어떤 의미에서 ‘힙합 아이돌'로 기억되게 했다고 본다. 그때 나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소리 위에 랩이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곡은 전부 힙합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힙합이 일렉트로니카와 합쳐져 가는 시대에 자란 데다, 당시까지 빅뱅, 블락비, 2NE1처럼 힙합의 이미지를 가져오는 그룹은 랩과 퍼포먼스의 폭발력을 더할 수만 있다면 장르를 불문하고 소리를 가져왔으므로 엄밀한 장르 구분을 할 기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아주 시끄러운 소리 위에 다량의 랩을 올린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자연히 힙합스러운 것으로 각인되었다.
나는 이 시끄러운 사운드 위에 정국이나 지민의 목소리가 더해진 곡이라면 방탄소년단 곡이라고 알아들었다. 퍼포먼스가 주는 압도감 한켠의 서정이 이 예쁜 목소리를 통해 귀에 들어오니, 팀에 대한 인상이 점점 입체적으로 변해갔다. 마이너 멜로디 위에 간절하고 절박하게 애정과 구원을 갈구하고 외로움과 막막함을 부르는 가사가 알게 모르게 스며들었다. 나 역시 그 시절 하루하루를 감정 기복 속에 위태롭게 버텨내고 있었기에 이 팀의 정서에 금세 매료되었다. 이후 이 팀의 다채로운 면모를 한 줄기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멤버들이 에픽하이를 좋아한다는 인터뷰였다. 당시 랩몬스터였던 RM과 슈가가 연예인이 아니라 동료 팬으로 느껴지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룸메이트 중 한 명은 기숙사 침대에 “화양연화" 때 방탄소년단 포스터를 붙이는 아미였다. 본격적으로 섹슈얼함을 내세운 ‘피 땀 눈물'에 환호한 수많은 친구 중 내 룸메이트도 끼어 있었는데, 그 무리 중 상당수는 입학할 때 바비를 좋아하던 애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이콘이 워낙 국내 공백기가 길었다 보니, 관심거리가 떨어진 팬들이 비슷하게 힙합스러운 강렬함을 내세우면서 끊이지 않고 활동하는 방탄소년단으로 관심을 옮긴 것 같았다. 아이콘의 결과물이 고등학생의 정서와 맞물리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기도 했다. 아이콘 데뷔앨범에 수록된 ‘리듬 타'와 ‘취향저격'은 비아이를 지드래곤에 빗대던 하이프와는 달리 ‘거짓말'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시끄럽고 얕은 노래 같아서 듣고 있기 힘들었는데, 이후 공백기가 길어지며 아이콘 노래를 기숙사에서 들을 일이 없어지니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여학생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힙합'에 대한 열망을 끌어당기며 방탄소년단은 고등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수준의 대형 그룹으로 성장했다. 팀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 출석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의 미국 데뷔 무대도 그들이 학교에서 이미 유명인사가 된 이후의 일이었다. 이미 학교에서 본 게 있다 보니, 나는 방탄소년단이 중장년층까지 포괄하는 인지도가 적을 뿐 국내 인지도가 적은 그룹이라는 데에 쉽사리 동의하지 않게 됐다. 매체가 분화되며 국민 가수가 나오지 않게 된 시대에, 남자 아이돌 그룹이 타겟 고객인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여학생 사회에서 유명해졌으면 충분히 성공한 거니까.
그렇게 ‘I NEED U’부터 ‘DNA’까지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방탄소년단이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18년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것을 순리에 따른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방탄소년단이 어떻게 영미권 인터넷에서 입지를 확보한 건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예전 카라나 소녀시대가 우리 모두 아는 노래로 일본 차트에 오르며 왜 인기 있는지 별 의심을 받지 않은 것처럼, 방탄소년단도 나와 내 또래가 광범위하게 좋아하는 노래로 미국 차트에 올랐으니 그 인기가 허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허나 우리 부모님은 여느 중장년층이 그러하듯 빌보드 1위 뉴스로 방탄소년단을 처음 접하시고는, 난생 처음 보는 그룹이 빌보드 1위를 했다는 데에 경악하셨다. 부모님께 “우리 고등학교에서 방탄소년단을 모르면 간첩 자격도 없었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두 분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도 이 팀의 어떤 가치와 매력으로 그 자리에 올랐는지 이해하지 못하신다. ‘국민 아이돌'이란 것이 성립 가능하던 몇 년이 지난 뒤, 케이팝 산업은 수없이 많은 역동을 겪으며 이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코드와 법칙을 끝없이 쌓았다.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무대는 그렇게 축적된 역동의 어떤 극단을 담아낸 것이다 보니, 부모님은 이들의 콘텐츠가 어떤 의미로 좋은지 초점 자체를 맞추지 못하신다.
방탄소년단의 콘텐츠가 우리 부모님처럼 케이팝 산업과 10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아버린 어른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것임을, 이들에 대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어른들을 볼 때마다 되새긴다. 아이돌이나 팬덤에 대한 이해 없이 방탄소년단에 대해 이상한 코멘트를 내놓는 ‘전문가'들이나, 방탄소년단을 음악가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만 논하며 상업적 성과의 크기나 군대 면제 같은 이슈에만 몰두하는 어른들이 나오는 것도 화가 나지만 이제는 받아들인다.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질수록 나도 이 10대 사회의 역동이 만드는 음악과 산업의 변화를 잘 포착하지 못하게 되니, 공부를 게을리하면 나도 내가 싫어했던 어른들처럼 될 것도 보였다.
필자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내 목표는 아이돌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전문가 어른들 틈바구니에,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아이돌 산업의 역동을 보고 자란 사람의 시각을 집어넣는 거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여러 사람들을 지켜보니 내가 ‘케이팝이 그 케이팝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알게 된 건 그저 좋은 여건을 타고난 덕이었다. 앞으로도 나보다 아랫 세대가 밀어올린 스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고, 최소한 아랫 세대 청자들에게 자기 세대의 스타를 오독하는 어른으로 원망받고 싶지 않다면, 세상을 포착하고 공부하는 데에 게을러지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의 입지를 차근차근 넓혀 나간 방탄소년단은 2020년이 되어 ‘Dynamite’로 염원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달성했다. 한국 음악산업이 올라갈 수 있는 꼭대기를 나날이 경신한 그들은 국가와 사회를 대표하는 위치에 올랐고, 그 위치에 따른 책임에 성실하게 부응하며 살았다. 그래서일까? 몇년 전 일산호수공원 근처에서 RM 벽화를 본 적이 있다. 그의 고향 지자체가 ‘Ma City’ 속 바로 그 장소에 벽화를 그려준 모습을 보니, 이들이 위인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새삼 놀라웠다.
나는 지금도 방탄소년단이 위인이 아니라 같은 세상 살며 같이 고민하는 동료 시민으로 보인다. “화양연화" 시리즈 속 몸부림치며 달리는 감각을 10대를 넘어 20대에도 꽤 많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솔로 명의로도 빌보드에 오를 정도의 스타가 되는 사이 나의 삶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잘 짜인 퍼포먼스를 소화하는 세계적 톱스타이면서도 손에 닿는 삶 곳곳의 격동을 노래하는 이들의 자세가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걸 보면, 그 시작점이 무엇이었으며 그 시기 내 삶이 어땠는지를 계속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내 학창 시절 인기 가수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광경은 상상의 범위를 넓히는 놀라운 일이었다. 세계적 가수가 속한 세계적 산업을 남들보다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것도 분명 행운이었다. 그 이상으로 감사해지는 것은 이들과 같이 고민하며 삶을 꾸려간다는 감각을 그들도, 나도 변한 지금까지 계속 가져가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화양연화" 의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