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즈 켄시로 보는 한국에서의 제이팝 접근성 (2)
앞서 요네즈 켄시를 예시로 들어 한국에서 제이팝을 대하는 진입 장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해 보았다. 일본 현지에서도 웹을 통해 성장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한국에서도 웹 및 모바일 기반 미디어가 퍼져 나가며 제이팝 유입 청자가 늘어나는 과정을 알려주는 아티스트다. 이제부터는 그렇게 유튜브, 스트리밍, 쇼츠를 통해 유입된 팬이 공연 영상을 보거나 공연에 가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를 다뤄보려고 한다.
요네즈 켄시는 뮤직비디오와 달리, 라이브 영상 공개에 꽤 인색한 편이다. 레이블에서 유튜브 공식 계정에 공개된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영상을 주기적인 저작권 신고로 내리기 때문에, 그의 라이브 영상을 접하는 공식적인 방법은 DVD나 블루레이가 포함된 실물 음반의 초회한정반 옵션을 구매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공연 영상을 숏폼으로 올리는 사람들이 전부 블루레이 구매자가 맞을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숏폼에 라이브 영상이 너무 범람하고 있다 보니, 어둠의 경로 어딘가에서 공연 영상이 돌아다닐 거라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어둠의 경로‘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중국 동영상 사이트 빌리빌리다. 4년 전 빌리빌리를 처음 알고 이 사이트에 요네즈 켄시를 검색해보니, 보컬로이드 프로듀서 시절 니코니코 동화 행사 영상부터 2018년 홍백가합전 무대 영상까지 거의 모든 행적이 다 나와 있었다. 지금 다시 검색해보니 최상단에 공연 풀 영상이 올라와 있다. 유튜브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영상이 최상단에 올라온 것에서 알 수 있듯, 빌리빌리는 유튜브와 달리 저작권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
빌리빌리의 수많은 영상을 보니 요네즈 켄시의 첫 해외 공연지가 상하이와 타이베이였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만이나 홍콩을 필두로 중화권에는 일본 컨텐츠가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의 생각 이상으로 널리 퍼져 힘을 발휘해왔다. 그래서 일본 아티스트가 해외 공연을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중화권이고,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상하이, 타이베이, 홍콩은 가면서도 서울은 오지 않는 아시아 투어 스케줄표를 보며 한숨 쉬는 한국 제이팝 팬이 많았다. 최근 아시아 투어 스케줄에 서울이 들어가는 경우가 늘어난 것은, 한국 내 제이팝 청자가 늘어나면서 중화권과 한국의 공연 규모가 비슷해지니 가능한 일 아닐까 싶었다.
지금도 단독 내한이 아닌 투어로서의 내한 스케줄은 대부분 중화권에 한국 등 일부 국가를 추가한 형태로 짜이다 보니, 한국 팬의 입장에서는 일본 아티스트의 중국 본토 공연이 막혀가는 현재의 정국이 내한마저 위축시킬까 우려하게 된다. 아무리 일본 아티스트가 중화권 공연을 많이 해도 이들의 주 수입원은 언제까지나 일본 국내 투어이니, 부가 수입에 불과한 해외 공연을 놓아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이 요원하던 시절, 국내 제이팝 팬들은 아티스트의 내한을 기다릴 바에는 내가 일본에 가는 게 빠르겠다며 일본 공연에 원정을 가기 시작했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가 일본 전국에 취항하고 한국의 월급 수준이 일본을 넘어서며, 일본에 여행 가서 공연 보고 오는 것이 알바생의 저축액이나 평범한 월급쟁이의 소득으로 가능해진 덕이다.
일본의 공연 시장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하고 탄탄하다. 보아를 시작으로 한국 아이돌 기획사에서 일본 활동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가 바로 이 공연 시장 규모에서 기인하는 거액의 수입이라는 점은 케이팝을 조금이라도 지켜봤다면 모두 알 것이다. 자국 투어만 성공시켜도 해외 활동하는 한국 아이돌 못지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본 공연 시장의 규모는 일본 음악 시장을 철저히 내수 지향적으로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일본 아티스트의 활동 내역을 보다 보면 이들의 직업을 자연스레 ‘공연인’으로 규정하게 된다. 이들은 앨범 발매 투어, 페스티벌 출연, 데뷔 n주년 기념 공연 등 온갖 명목으로 유료 공연을 일본 내에서만 일 년에 많게는 수십 번씩 개최한다. 이러한 시장 특성상 일본 아티스트들의 공연 퀄리티와 만족도는 대체로 아티스트의 명성에 비례한다. 해외 공연은 이들의 ‘본진’인 일본 공연에 비해 횟수도 적고 프로덕션 규모도 작아 본국에서의 무대를 온전히 구현하기 어려워서, 내한이 활성화된 지금도 보다 큰 규모의 완성판 무대를 보고 싶은 팬들은 일본 원정을 결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 아티스트 현지 공연에 가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일본의 공연 예매는 추첨제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매크로와 싸울 일은 없지만, 노력보다 운의 영역이 크다보니 기도가 필수다. 일본에서는 상당수의 아티스트들이 유료 팬클럽 한정 선행 추첨을 진행하고, 팬클럽 가입자 한정 소규모 투어를 여는 경우도 있다. 팬클럽 가입을 위해 일본 휴대폰 번호가 필요한 경우가 꽤 있어서, 이 아티스트들의 팬들 사이에서는 공연 선예매를 위해 한국에서 일본 유심을 개통하고 유지하는 노하우가 돌아다닌다. 팬클럽 가입을 위해 후쿠오카에 가서 일본 유심을 개통했다는 후기를 보고, 공연 관람이 아니라 선예매를 위해 일본행을 불사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에 상당히 놀라기도 했다.
2017년 ”BOOTLEG” 발매 이후 2018년 1월 무도관에 입성한 요네즈 켄시는 뒤이은 ’Lemon’의 대성공 이후 아레나급 뮤지션으로 자리 잡았고, 올해 “JUNK” 투어를 통해 4대 돔 입성에 성공하며 관객 35만 명을 동원하였다. 그의 공연은 이름값 및 히트곡 수에 비례하는 퀄리티를 보장하지만, 올해가 되어서야 도쿄 돔에 입성했을 정도로 그는 이름값에 비해 회장을 보수적으로 잡는 편이다. 게다가 타 아티스트 대비 공연 횟수나 영상물 발매 횟수도 적은 편이라 현재 그의 공연 표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유료 팬클럽이 없으므로 콘서트 선행 예매를 위해서는 시리얼 넘버가 들어간 CD를 구매해야 한다. 나도 그의 CD를 사서 공연 선예매를 진행해본 적이 있긴 하다. 표가 당첨돼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일본 CD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한국 유통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일본 CD 구매대행 사이트 중 한 군데를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케이팝 일본 발매작의 한국 내 구매 수요 덕분에 이들 구매대행 사이트들이 생각보다 잘 구축되어 있는데, 배송 속도가 해외 직배송에 그리 뒤지지 않는다. 아마존재팬이나 타워레코드 같은 현지 쇼핑몰에서 CD를 구매한 뒤 배송대행지를 통해 한국에 배송받는 사람도 꽤 있지만, 일본어를 못하는 나는 그냥 돈을 더 내고 국내 사이트를 이용하는 편이다.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그의 음반은 “STRAY SHEEP” 앨범 블루레이반이다. 2020년 8월 당시 앨범 구매를 알아보던 나는 가격표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1~2만원대 한국 CD 가격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별다른 특전이 없는 통상반이 4만원 가까이 되고, 블루레이반은 8만원이 넘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수록곡이 많아야 3개인 싱글 CD도 통상반이 1만 5천원, 영상물이나 특전이 있으면 5만원 정도 되었다. 일본 월급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딱히 높은 것도 아닌데 음반 가격은 두세 배쯤 되니, 처음엔 음반 판매량의 무게가 한국과 좀 다를 것 같았다. 그런데 실물 음반이나 영상물 시장이 이 시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꾸준히 발매작이 나오는 것을 보니, 소비자들이 실물 발매작의 높은 단가를 감수하는 분위기가 보여서 한국인으로서는 너무 신기했다.
“STRAY SHEEP” 앨범은 초동 87만 장을 기록하고, 발매 한 달도 안 되어 총판 100만 장을 넘겼다. 이 0 하나를 잘못 덧붙인 것 같은 수준의 판매량은 분명 메가히트곡 ‘Lemon’의 힘이었겠지만, 2024년 정규앨범 “LOST CORNER”와 2025년에 발매한 피지컬 싱글 두 개가 모두 초동 20만 장을 돌파하는 등 그는 지금도 일본에서 손꼽히는 피지컬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이 피지컬 판매량은 예매 경쟁의 치열함이 판매량으로 고스란히 전환된 결과물이다. 나는 2024년 “LOST CORNER” 앨범과 올해 ”IRIS OUT / JANE DOE” 싱글을 한 장씩 사서 콘서트 선행 응모를 했다가 떨어졌다. 대여섯 장은 기본으로 응모하는 당첨자들의 면면을 보니, 응모권 한 장으로 투어 파이널 공연 당첨을 바라는 건 무리였다.
지금 내 소득은 국내 공연을 두세 달에 한 번 갈 정도는 되지만, 일본 원정을 위해 필요한 음반 중복 구매나 여행비를 감당할 수준은 못 된다. 원정을 성사시켜도 삶에 아무 문제 없을 정도의 소득을 얻어보고 싶어서 본업의 연봉과 스케일을 키워보고 싶다. 그래도 취업 이후 국내 공연에 갈 수 있을 만큼 돈이 생겼을 때 요네즈 켄시가 내한 공연을 발표한 건 정말 다행이었다. 그 공연은 ‘안 간다’의 선택지가 없는 공연이었으니까.
2024년 10월 7일 저녁, 요네즈 켄시 내한 공연이 발표된 것을 보고 나는 집에서 소리를 질렀다. 도쿄 돔 공연보다도 오지 않을 것 같던 내한 공연의 날이 오는구나 싶었다. 공연장이 인스파이어 아레나인 것도 괜찮았다. 공연장 시설은 분명 좋을 것이고, 영종도가 멀다고 안 가려는 사람이 분명 나올 만한 위치니까 예매 경쟁이 덜 치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첫 선예매에 들어가서 마주한 것은 대기 인원 약 4만 3천명이었다. 가수가 콜드플레이도 아닌데 예매 체감 난이도는 콜드플레이 이상이었다. 예매 경쟁에 치이고 치여 나는 처음 잡은 4층 꼭대기 자리에 만족했다. 취소표가 공연 임박 때까지도 거의 나오지 않아서 ‘취켓팅‘으로 앞자리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1인 8매로 대표되는 암표상 친화적 운영이 큰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암표상은 웬만한 인기 공연엔 다 있으니 이 정도의 예매 난이도는 아티스트의 화제성이 담보되어야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 원정 공연이 일본 아티스트의 본진에서 완벽한 프로덕션을 보는 데에 의미가 있다면, 내한 공연은 아티스트를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며 열정적인 한국식 관람 문화를 즐기는 기쁨을 준다. 아티스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요네즈 켄시 일본 공연은 분위기가 꽤 차분한 편이다. 원정 후기를 보면 관객들이 신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고 앉아서 박수만 치며 들어서 몸과 입이 근질거렸다는 증언이 많은데, 이 후기를 쓴 사람들이 내한 때 원 없이 노래를 떼창하며 원정의 아쉬움을 달래는 것을 보았다.
첫 곡 ‘RED OUT’의 ’키에로’가 첫 떼창 구간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감전‘의 ’왕왕왕’을 따라 부를 날이 오다니, ‘탓다 잇-슌-노’ 하는데 감격스러웠다. 이렇게 주요 떼창 구간을 넘어가고 차분한 곡이 이어지자 모두 함께 떼창을 그만두고 조명과 영상에 감겨 노래를 듣는 분위기가 된 게 너무 신기했다. 하긴, 그때 그 분위기에 ‘Lemon’이나 ‘바다의 유령’을 따라 부를 사람은 없었을 거다. 그러다가 기대하던 ’LOSER’가 나오니 세상에, 실시간으로 떼창 포인트가 생겨나는 거였다. ‘피스 사인‘은 무도관에서 함성 지르려고 만든 노래였나 싶었고, ‘KICK BACK’은 이제 화려했던 공연 연출보다 4층 꼭대기까지 꽉 찬 열광이 더 기억난다. 공연이 끝난 지 9개월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하이라이트 부분 곡명 ’루킥피도’가 인상적인 기억으로 꾸준히 언급되는 것을 보고 있는데, 함께 떼창하고 뛸 수 있는 그의 히트곡 레퍼토리가 한국 관객과 유독 합이 좋았던 것 같다.
인스파이어 아레나 4층에 앉아서 ‘KICK BACK’을 듣고 있자니 스탠딩 관객이 너무 부러웠다. 다음 내한 때는 꼭 스탠딩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제는 스탠딩은 고사하고 다음 내한에 갈 수 있을 지 자체가 문제다. 다시 말하지만 첫 내한 공연 예매창에 대기인원 4만 3천명이 모인 일은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 편> 개봉 이전의 일이다. 공연장에서 “아이-리스-아웃!” 을 외치면 얼마나 신날 지 상상해보는 게 과연 나 뿐일까? 아마 2026년 일본 투어 이후 2차 내한 공연이 열릴 텐데, 인스파이어 아레나 이상 가는 대형 공연장이 섭외될 걸 상상하면 설레지만, 예매 창에 1차 내한 때 이상의 인파가 몰아칠 걸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처음 좋아했을 때는 한국에서 이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그 과정을 다 지켜봤는데도 한국 유튜브 차트 상위권에서 요네즈 켄시의 이름을 보면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그는 내가 입문하기 전부터 좋은 음악가였고, 그가 가진 음악가로서의 덕목은 대체로 국적을 따지지 않고 유효하다. 일본 음악을 듣는 진입장벽이 높은 한국에도 그 장벽을 넘으려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고, 매체 환경 변화로 일본 음악이 한국에 쉽게 소개되기 시작하자 한국의 일본 음악 청자 수는 말 그대로 급증했다. 한국 청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뛰어난 음악가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일 것이다. 표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는 것을 빼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