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즈 켄시로 보는 한국에서의 제이팝 접근성 (1)
올해는 해외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상상도 못한 한 해를 보냈다. 당신이 좋아하는 해외 가수가 한 해 동안 신곡을 여섯 개 내고, 상반기에는 내한 공연을 하고 하반기에는 그의 곡이 삽입된 영화가 개봉하여 한국에서 수백만 관객을 동원한다면, 그 결과로 그 가수의 이름을 국내 차트에서 볼 일이 생긴다면 어떤 기분일까? 막상 겪어보니 공기가 도파민처럼 느껴지던데,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소재로 쓰일 일도, 길거리나 카페에서 들을 일도 없을 일본 음악이 무슨 이유로 차트에 올라가겠나 싶었다. 내 가수는 일본에서 잘 나가고, 나는 그의 활동을 웹으로 접하며 열심히 좋아하면 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를 한국에서 그렇게 큰 규모로 만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한국에서 일본 문화를 접하는 가장 큰 창구는 웹이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오프라인 친구를 통해 입문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에 깊이를 더하려면 웹을 이용하는 것은 필수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한국에서 일본 음반은 공식적으로 수입되지 않았으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TV 방송에 일본어 가사를 한 줄이라도 송출하면 방송국에 항의가 몰아치곤 했다. 이처럼 매스미디어가 지정하는 공통의 화두에 일본 음악이 올라갈 일은 없었다. 반면 웹은 매스미디어에 비해 심의 규정에서 자유롭고, 취향 기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유리한 구조다. 그래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일본 음반 공식 수입이 가능해진 뒤로도 웹은 일본 음악 향유층을 끌어모으는 거의 유일한 창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웹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본 아티스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흥하던 시절, 일본에도 아이돌이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스맙’ 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허나 이들을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공식 계정은 없고, 팬이 불법 업로드한 저화질 영상이나 그 영상이 저작권 신고를 당해 내려간 흔적만 남아 있었다. 당시까지 일본에서는 뮤직비디오를 음반의 DVD 특전으로 발매하고, 실물 음반 구매자만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저작권 신고로 컨텐츠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 더 검색해보니 네이버 블로그나 카페, ‘기차’나 토렌트를 통해 저작권 단속을 우회하여 뮤직비디오를 알음알음 공유하는 한국 팬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유튜브를 통해 한국이나 미국의 뮤직비디오를 전부 볼 수 있는 시대에 이 정도의 진입장벽은 무언가를 더 파고들 의지를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랬던 내가 본격적으로 파고든 첫 번째 일본 아티스트인 요네즈 켄시는 일본에서도 웹을 통해 명성을 얻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가 보컬로이드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2009~2011년 경에는 니코니코 동화가 큰 폭발력으로 주목받았고, 그 영상들이 네이버 블로그 등지에서 퍼지면서 이 당시 니코니코 동화의 유명인 상당수가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마트료시카’, ‘판다 히어로‘, ’쥐었다가 펼쳐서 나찰과 송장’ 등을 통해 그의 존재가 한국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도 이때다. 아마추어가 제작한 웹 콘텐츠에는 저작권 규제가 작용할 리 없으니, 니코니코 동화의 작업물들이 웹으로 제이팝을 접하는 한국인에게는 기존 제이팝에 비해 접근성이 높았다.
이렇게 웹에서 얻은 명성을 기반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 요네즈 켄시는 메이저 데뷔 이후로도 뮤직비디오를 유튜브 계정에 전부 올렸는데, 이 결과물들이 유튜브에서 억 소리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과정이 웹을 통해 한국에 전해지며 한국에서의 그의 인지도도 나날이 높아졌다. 일본에서 ‘Lemon’이라는 노래가 유튜브 신기록을 쓴다는 소문을 들은 한국인이 같은 계정에서 ’마트료시카’를 보고 그 하치와 요네즈 켄시가 동일인이냐며 기겁하는 일이 허구헌 날 벌어졌다. 7년이 지난 지금은 비슷한 질문 레퍼토리에 쇼츠 댓글 속 “‘Lemon’과 ‘IRIS OUT’이 같은 사람 곡이었어요?“가 추가되었는데, 그의 현재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분명 그의 커리어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웹 플랫폼 생태계의 변천사와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2020년, “STRAY SHEEP” 앨범이 발매되며 요네즈 켄시의 전곡이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왔다. 이 말은 즉 그 이전까지 요네즈 켄시의 발매곡은 스트리밍이 아닌 다운로드나 피지컬 앨범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전곡 스트리밍 해금은 일본 음원 사이트의 가입자 수를 급격히 늘리며, 일본 음악계가 스트리밍 위주로 돌이킬 수 없이 재편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남았다.
2010년대까지 일본 음악계에 스트리밍이 퍼져 있지 않았다는 게 한국인에게는 아무래도 안 믿기긴 한다. 일본에서 스트리밍의 확산을 대표하는 노래로 꼽히는 게 대략 다오코와 요네즈 켄시의 ‘쏘아올린 불꽃‘, 아이묭 ’마리골드‘, 오피셜히게단디즘 ’Pretender’, 킹 누 ‘백일’ 등인데,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 일본 음악계에서 스트리밍이 보편화된 것은 코로나 직전, 2010년대 후반에 와서야 벌어진 일이다. ’Lemon’의 신기록이 유튜브 조회수와 아이튠즈 등 다운로드 부문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그때까지 그의 곡이 스트리밍 사이트에 풀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020년 이전까지 요네즈 켄시의 경우 국내 음원사이트에서 “Bremen”, “BOOTLEG”, ‘Lemon’ 등을 들을 수 있었으나, 과거 소속 레이블에서 발매된 ”YANKEE”나 “diorama” 앨범이 한국에 유통된 것은 2020년, 일본에서의 전집 스트리밍 공개 이후였다. 일본 내에서도 스트리밍이 풀려 있지 않은, 즉 스트리밍 판권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아티스트의 곡이 해외 스트리밍 사이트에 온전히 공개되어 있을 리가 없다. 국내에 제이팝 음원 정식 유통이 잘 되지 않다 보니 2010년대까지 한국의 제이팝 팬 커뮤니티에는 한국 사이트에 없는 음원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일본 아이튠즈 계정을 만드는 법이 돌아다녔다. 심지어 일본 국내 사이트에도 음원 다운로드가 안 풀린 아티스트도 종종 있었는데, 이 경우 실물 CD 리핑을 통해 얻은 음원을 ‘기차‘나 토렌트를 통해 공유하는 팬들도 왕왕 있었다.
2020년대에는 일본에서도 음악 유통의 주 전선이 스트리밍으로 옮겨 오면서, 일본 최전선의 아티스트가 한국에 즉시 이름을 알리는 시대가 열렸다. 앞서 말한 아이묭, 오피셜히게단디즘, 킹 누에 이어 요아소비, 아도, 미세스 그린 애플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스트리밍을 통해 성장한 아티스트와 한국에서의 제이팝 인기를 상징하는 아티스트의 명단은 상당 부분 비슷하다. 반면 일본에서 다운로드나 피지컬 음반 시대에 성장한 아티스트들의 경우, 제이팝 청자가 늘어난 지금까지도 일본 인지도에 비해 한국 인지도가 매우 부족하다. 아티스트별 인지도 격차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음악의 디지털 접근성이 한국 음악과 비슷해진 것과 한국에서의 제이팝 청자 증가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참고로 요네즈 켄시의 인디 시절 발매작인 “diorama”나 “OFFICIAL ORANGE” 등 보컬로이드 작업물은 멜론, 지니 등 국내 음원 사이트에는 없고, 유튜브 뮤직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해외 사이트에만 공개되어 있다. 그래서 국내 요네즈 켄시 팬들은 대체로 해외 음원 플랫폼을 사용한다. 연말에 제이팝 팬들이 해외 음원 플랫폼의 Recap 결과물을 줄줄이 올리는 모습을 볼 때면, 한국 내에서 유튜브 뮤직을 필두로 해외 음원 플랫폼의 점유율이 높아진 것과 한국에서의 제이팝 청자 증가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측해보게 된다. 차트보다 알고리즘의 의존도가 높은 해외 플랫폼의 사용자 수가 늘어나면서, 차트 밖에서 자신의 분야를 혼자 파고들고 취향 단위의 군집을 형성하는 청자들이 과거보다 가시화된 것 아닐까? 멜론 Top 100에 진입한 제이팝이 역대 다섯 곡이 안 될 정도로 제이팝이 국내 차트와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이제 유튜브 뮤직비디오나 쇼츠로 입문한 팬이 유튜브 뮤직에서 전집을 찾아 들으며 팬심을 키워 나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런데 현 시대 한국인이 접하는 일본 아티스트는 싱어송라이터나 밴드가 대다수이다 보니,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티스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 외에도 인터뷰나 공지문, 티켓 응모나 예매 등에 쓰이는 일본 사이트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파고드는 정도에 제한이 생기게 된다. 언어의 장벽을 이기기 위해 국내 팬 상당수가 일본어를 공부하여 번역에 도전하는데, 다수의 국내 ‘번역러‘의 존재가 일본어를 몰라도 일본 가수의 팬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X(구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는 번역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 단순 정보 전달 공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SNS 번역 기능이나 파파고 등 번역기를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요네즈 켄시가 그렇게 유명해졌는데도 번역기에서 이름이 ‘요네즈 현사‘나 ’요네즈 겐사‘로 나오는 걸 보면 번역기의 한계는 아직 커 보인다. ChatGPT는 그나마 사람 이름을 ‘요네즈 켄시’로 번역하기는 하는데, 있는 말을 빼먹거나 없는 말을 만들 때가 있어서 번역기보다 신뢰도가 부족하다.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음역하여 안타까운 수준의 문장을 뱉어내는 번역기나, 없는 말을 지어내는 LLM에 가사 번역을 맡길 수는 없다. 인터뷰는 그나마 기계 번역으로도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긴 한데, 아무래도 사람이 번역한 버전을 읽는 게 제일 재밌다.
내가 요네즈 켄시를 단순 리스너 이상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건 네이버 검색 결과 최상단에 있던 인터뷰 번역을 읽으면서였다. 단체생활 속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감각과 그로 인해 기인한 자기혐오를 떨쳐내기 위해 자신이 잘 하는 일로 세상에 발 붙이려 노력하는 과정이 그의 커리어였는데, 이 인터뷰는 그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모티브를 요네즈 켄시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언어로 전달하여 그를 더 알아보고 싶게 했다. 일본은 <록킹 온 재팬> 등 음악 관련 종이 잡지가 지금까지 세를 유지하는 곳이고, 요네즈 켄시는 싱글 이나 앨범 발매 때마다 꼬박꼬박 인터뷰를 내놓으며 인터뷰를 주 프로모션 수단으로 사용하는 아티스트다. 아티스트의 섬세한 언어 사용을 드러내는 번역자의 존재는 팬들의 애정을 키우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숏폼 시대를 맞아 라이트 팬을 진성 팬으로 만들던 번역 컨텐츠에 신규 팬을 유입시키는 역할이 더해졌다. 라이브나 뮤직비디오 클립에 가사 번역을 더한 쇼츠는 해외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일반적인 경로로 자리잡았고, 음악과 인터뷰 번역을 매치한 영상을 통해 아티스트의 커리어와 캐릭터를 소개하는 영상도 숏폼의 확산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내게 이 사실을 크게 알려준 사건은 <체인소 맨 : 레제 편>의 흥행이었다. 영화의 화제성 상당 부분을 주제가의 대흥행이 담당하다 보니 주제가 두 곡을 만들고 부른 요네즈 켄시에 대한 숏폼 콘텐츠가 영화의 화제성에 비례하여 퍼져 나갔다. 딱히 일본 음악이나 일본 콘텐츠에 큰 관심이 있을 것 같지 않던 친구가 인스타그램 DM으로 내게 요네즈 켄시나 체인소맨에 대한 한국어 릴스를 보내주는 것을 보며, 앞으로 이 사람 공연 가기 더 힘들어지겠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