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다시 글쓰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

by 예미

2025년 하반기에 우연히 시작한 연재가 이번 주로 끝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 연재를 하며 생각하고 얻은 것들을 조금 정리해본다.


이야깃거리의 출처는 본질인 걸까

예전에 메일링 서비스를 시도해본 적도 있었지만, 매주 할 말을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는 주간 연재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서 쉽게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글만 쓰며 사는 삶도 아니고, 글을 쓴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과연 독자와의 약속을 잘 지킬 수 있을까?


그렇게 할 말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되니, 결국 좋아하는 것 이야기를 원 없이 신나게 하고 싶어하던 그 초심에 가장 가까운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터지는 말을 맥락에 맞게 다듬는 것은 할 줄 알아도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건 도저히 못 하니까, 오랫동안 생각하고 좋아하던 것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첫 연재글을 가장 처음 좋아했던 이의 최근작으로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연재의 톤을 가볍게 가져가고 싶었지만 바로 그 다음 글부터 가벼움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블랙뮤직 컨벤션을 제이팝에 개성적으로 녹여내며 스타가 된 이가 갖는 설득력의 디테일을 내 시각으로 써보자’ 같은 취지의 글이 규모가 작아질 리는 없지 않나? 이런 식으로 예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능력이 안 돼서 묻어두었던 토픽을 계기가 생긴 김에 다 써보게 되면서 글의 규모가 점점 커졌다.


기회가 생긴 김에 블랙뮤직과 동아시아 가요, 한국가요와 가족, 슈퍼스타의 현재를 가능케 한 작품들과 그걸 들어온 나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다. 하나같이 공수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라 매주 쓸 때마다 허덕였지만, 막상 써보니 내게 이 정도 규모의 이야기를 다룰 능력이 생겼다는 게 보여서 감사했다.


이런 이야기를 큰 규모로 쓰다보니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됐다. 글쟁이 직함이 처음 생기던 시절부터의 관심 분야가 지금도 그리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성장 과정이란 게 이 정도로 무서운 거였나? 사는 곳, 하는 일, 만나는 사람이 다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어떤 관심 분야나 취향만큼은 바뀌지 않았다는 게 보여서 좀 신기했다.


글을 쓸 땐 즐거웠는데, 써놓고 보니 이런 내가 좀 징글징글했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 삶이 바뀌었으면 관심 분야가 좀 달라질 것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아직도 이러지? 이쯤 되면 좀 더 니치하고 깊고 독특한 것을 좋아할 때도 된 거 아니야? 너무 ‘머글’ 아닌가? 물론 세상엔 즐겁고 좋은 게 많지만 내가 집착하게 되는 이야깃거리와 귀에 끼고 사는 소리는 언제나 따로 있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매달리게 되는 주제가 필자로서의 개성이라는 걸 형성하는 것일테니 이런 나를 조금 덜 지겨워하기로 했다. 비록 주제 선정만 봐도 너무 나 같아서 모아보니 흠칫하게 되긴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면 인정하는 수밖에.


최애가 쳐버린 대형사고 이야기

이번 연재를 끝까지 잘 마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사건은 <극장판 체인소 맨 : 레제편>과 그 주제가의 한국 내 흥행이었다. 한국 유튜브 차트 꼭대기나 멜론 차트 상위권에서 요네즈 켄시의 이름을 볼 일이 생기니, 차트만 봐도 현실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워낙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워낙 큰 일을 일으켰다 보니 하고픈 말이 정말 딸깍 딸깍 쏟아져 나왔다. 음악도 매력적이었지만 성과, 특히 한국 시장에서의 성과가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라 기록할 필요가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코로나 전후로 생겨난 한국에서의 제이팝 인기가 어떤 큰 결실을 맺었는데, 이 과정을 다채롭게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자세히 봐오기 시작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있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해외 음악을 통해 한국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글을 적어 보고팠던 내게 그 이야기를 생생하게 할 시기가 주어진 것도 감사했다.



이 긴 글들을 써놓고 보니 결국 떠올리게 되는 것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거나 “그냥 되는 일은 없다” 같은 말들이었다. 일본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국 사회 곳곳에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것도, 스트리밍 및 OTT가 발전하며 일본 콘텐츠 산업이 그 환경 변화에 결국 맞춰가기 시작한 것도, 그렇게 변화한 환경에 맞는 콘텐츠와 이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파급력을 키워간 것도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 시국이 이렇게 변화한 일본 콘텐츠 업계에 한국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기폭제로 작용한 것까지도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아끼는 요네즈 켄시가 오랜 기간 동안 정상의 위치와 그에 걸맞는 역량을 유지하며, 2025년에도 비현실적인 성적을 찍으며 결국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이 모든 메가트렌드를 묶는 심벌이 되어버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다. ’IRIS OUT’의 스트리밍 성적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Lemon’이 발매 당시 스트리밍이 풀려 있었다면 찍었을 수치’쯤 되는데, ‘Lemon’이 나온 건 ‘IRIS OUT’ 7년 반 전이다. 대학 신입생이 시도 경계를 두 번 넘으며 차 끌고 공연장 가는 직장인이 될 정도의 시간이 그 정도 된다.



그는 이 7년 반 동안 일본에서 손에 꼽히는 솔로 아티스트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지만, 그 사이에 요네즈 켄시보다 단기적 기세가 더 좋은 아티스트나 더 큰 야심을 갖고 규모를 키워가는 아티스트는 일본에 여럿 있었다. 무려 ‘Lemon’을 가진 사람이 단기적 성과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팝 씬에서 치열하게 활동하는 사람을 지켜보다 보면 종종 다른 아티스트와 성적이나 기세를 견주어 보게 되기는 했다. 차트에 더 많이 얼굴을 내비치거나, 돔이나 스타디움에 입성하며 더 공격적으로 공연을 키워가는 사람들을 볼 때 특히 그랬다.


그런데 이만큼 시간이 지나고 보니 철저히 자기 페이스대로 커리어를 끌고 나간 그의 선택이 대부분 옳았던 것 같다. 그는 ‘Lemon’ 다음 곡으로 ‘flamingo’, ‘KICK BACK’ 다음 곡으로 ‘LADY’를 내놓을 정도로 동어반복을 싫어했는데, 이건 곡 하나하나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보다 그 곡들을 통해 자신이 도달할 영역을 넓히고 아이덴티티를 쌓아나가는 것을 중요시하기에 가능한 행보였다. 장기적인 커리어 유지에 자기 자신을 건강히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생각해 보면, 정확히 감당 가능한 만큼 자신을 내보여 온 행보도 결국 옳았다. 원래 가수로서 잘 되는 것 이상으로, 계속 잘 될수 있도록 탁월하게 선택하는 게 어려운 일 아닌가? ‘Lemon’으로 궤도에 오른 뒤 해온 그 모든 선택이 그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았는데, 그렇게 자기 삶을 자신의 의도대로 가도록 방향타를 잡아 끝내 원하는 삶을 얻어낸 그가 대단히 현명했음을 올해 크게 느꼈다.



그를 이만큼 좋아한 이유는 많다. 처음에는 그가 소리와 언어와 리듬과 이미지를 탁월하게 사용하는 뛰어난 아티스트이기에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만큼 몰입하게 된 데엔 내 가치관이나 성향이 꽤 많이 기인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팝에 매료되는 사람으로서 팝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팝의 범위를 넓히는 데에 기여한 사람을 따라가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비록 부족한 자신이지만 세상에 섞여 들어가고 싶어 팝을 한다는 그 동기는 그의 디스코그래피 속 한 사람의 성장과정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의 결과물엔 장애에서 기인한 어떤 소수자적 정서와 시각, 그로 인해 갖는 삶 속 고민거리에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치열하게 묻어나 있다. 그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 과정을 지켜보며 나도 이 장애가 내 삶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절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그럴수록 그가 보여준 과정들이 내겐 꽤 괜찮은 이정표가 되었다.


그 정도로 좋아하던 아티스트가 상반기엔 내한 공연을 오고, 하반기에는 한국 차트에 올라갔으니, 해외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런 해는 또 없지 않을까? 이 사람에 대해 기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 이야기가 보는 사람에게 나름의 쓸모가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한 해였다.


아직 써볼 수 있겠는데?

작년 초에 독립하면서 한동안 삶이 워낙 바빠 음악에 대한 글을 잘 쓰기는 커녕, 음악이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느낄 정도의 심적 여유가 없었다. 무엇인가를 매일같이 듣고 살기는 했지만 감상의 깊이를 더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글 쓰는 분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할 말이 발전하지 않는 것 같으니 그만 둬야 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일상이 조금 안정되니 음악이 귀에 다시 잘 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말해보고 싶은 음악과 사건도 생기고, 세상도 조금 평온해졌으니 다시 뭔가를 적어볼 마음이 생겼다. 그 즈음 제시된 포털 사이트의 금전적 미끼를 계기로 글을 다시 열심히 쓰다 보니, 다시 이 일을 잘해볼 자신이 생겼다.


열심히 느끼고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순간을 다시 맞이할 수 있게 됐으니, 이 연재를 가능케 한 네이버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걸 결국 한 주도 빼먹지 않고 해낸 나와, 읽어주신 분들께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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