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드윔프스 트리뷰트 앨범 “Dear Jubilee” 파고들기
래드윔프스의 메이저 데뷔 20주년을 앞두고 트리뷰트 앨범 “Dear Jubilee”가 발매되었다. 현 제이팝 씬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진 아티스트 14팀이 래드윔프스의 주요 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했는데, 원곡의 위력과 각 아티스트의 개성이 앨범 전체에서 조화를 이루어 재미있는 청취를 이끈다. 나는 이 앨범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서 래드윔프스 디스코그래피 공부를 시작했고, 그동안 조금씩 쌓아둔 제이팝 지식 덕분에 앨범을 잘 즐길 수 있었다. 이 앨범의 매력적인 면과, 그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공부한 과정을 아래에서 정리해 본다.
앨범은 래드윔프스의 메이저 데뷔곡으로 시작하여 연대 순으로 주요 곡을 나열했다. 14곡 중 3, 4집 수록곡을 각각 3곡씩 실으며 팀의 초기작이 정서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음을 보여준 한편, ‘전전전세'와 ‘스즈메'를 수록하면서 ‘재난 3부작'을 통해 입문한 이들에 대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참여진의 스펙트럼 역시 수록곡만큼이나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요네즈 켄시, 미세스 그린 애플, My Hair is Bad 처럼 래드윔프스의 직접적 영향 하에 있는 후배 록 뮤지션들이 뼈대를 이루는 한편, 2020년대 니코동 계열 주자로 꼽히는 즛토마요-요루시카-요아소비 세 팀과 <너의 이름은>을 청소년기의 추억으로 간직할 바운디가 참여하며 그 넓은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카미시라이시 모네나 iri 등 현 시점 래드윔프스와 함께 작업한 동료 뮤지션들과, 미야모토 히로지 등 선배 뮤지션의 참여도 앨범을 더 풍성하게 했다.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래드윔프스의 원곡에 자신들의 원래 스타일을 덧입힌 곡들이었다. 특유의 두근거리는 스트링을 덧입힌 세카이노 오와리의 ‘최대공약수', 피아노를 기반으로 평소 자주 사용하던 펑키한 사운드를 덧입힌 즛토마요의 ‘유심론' 은 약과였다. 아예 장르가 R&B로 바뀌어 버린 iri의 ‘후타리고토', 서브컬처스러운 신디사이저를 덧붙인 요아소비의 ‘회심의 일격'도 즐거웠다. 원곡의 ‘1, 2, 3, 4’ 콜을 샘플링하여 곡의 열기를 더한 요루시카의 ‘DARMA GRAND PRIX’는 그간 스이의 목소리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공격성을 보여주었다.
미성 보컬을 내세운 팀인 만큼 여성 아티스트의 참여는 자연스러웠다. 래드윔프스의 메이저 데뷔곡 ‘25개의 염색체'를 부른 카미시라이시 모네의 여린 목소리가 앨범을 산뜻하게 여는 것이나, 원곡의 톤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펼쳐 놓은 즛토마요의 ‘유심론'을 보면 그렇다. 한편 이 앨범에 참여한 남성 보컬리스트들은 노다 요지로와 조금씩 차별화되는 개성을 선보인 것이 눈에 띄었다. 비교적 미성에 가까운 후카세의 목소리는 ‘최대공약수'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깔끔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오모리 모토키의 절창은 ‘협심증'의 표현 범위를 더욱 넓혔다. 보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담은 요네즈 켄시의 ‘트레몰로', My Hair is Bad의 ‘이인데스까?’와 미야모토 히로시의 ‘오샤카사마' 역시 각 곡을 아티스트의 스타일로 흡수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다양한 아티스트를 한데 끌어모을 수 있는 영향력의 원동력은 결국 다채로운 디스코그래피에서 왔다. 다채로운 정서와 표현 방식으로 여러 종류의 아티스트를, 장기간의 영향력으로 여러 세대의 아티스트를 모을 수 있었다. 래드윔프스의 디스코그래피와 트리뷰트 참여 아티스트 14팀의 특성을 잘 알수록 이 앨범을 즐겁게 들을 수 있으며, 각 구성원의 입지가 두터운 만큼 이들을 통해 현재의 제이팝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나도 이 트리뷰트 앨범이라는 이벤트를 제대로 즐기고 싶어서 래드윔프스 디스코그래피를 공부했다. 래드윔프스 디스코그래피를 모조리 아는 일본인들이 물음표 칠해진 트랙리스트를 보고 “요네즈 켄시가 ‘유심론'을 불러줬으면 좋겠다" 같은 말을 주고받는데, 적어도 ‘유심론'이 무엇이길래 저렇게 염원하는지는 알고 싶었다. 그래서 참여 아티스트 발표가 시작되었을 즈음부터 래드윔프스 정규 앨범을 한 장씩 시간 날 때마다 듣기 시작했다. 실은 나도 그 방대함에 질려 어디서부터 파고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적어도 ‘재난 3부작' 이전까지의 정규 앨범을 전부 듣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래드윔프스의 첫 메이저 앨범인 3집을 집어들고 처음으로 느낀 것은 기시감이었다. 록을 기반으로 감정을 어디까지 기타로, 어디까지 가사로 표현할 지 결정하는 솜씨나, 이를 통해 멜로디를 전개하는 모양새가 제이팝 이곳저곳에서 들어본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기타를 운용하는 방법보다 더 기억에 남은 것은 리듬과 워딩의 독특함을 느낄 때였다. 평범하고 잔잔하게 전개되는 듯 하던 ‘유심론'이 한순간에 빠른 워딩으로 긴장감을 만드는 순간, 이 팀의 예사롭지 않음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재난 3부작'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현재를 아는 상태로 디스코그래피를 순서대로 들으며 현재에 도달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최대공약수' 같은 초기작의 청춘 감성을 매만지고 다듬으면 ‘전전전세'가 되고, 팀 특유의 서정성을 영화에 맞춰내면 ‘아무것도 아니야'가 될 것이 보였다. 파릇파릇한 청춘을 그리던 밴드가 후기작으로 갈수록 화려하고 세련된 연주로 보다 독한 정서를 그렸는데, 나는 이 독한 정서에 꽤 많이 이끌렸다. 바쁘게 걸을 때마다 ‘DARMA GRAND PRIX’나 ‘과호흡'을 끼고 산 걸 생각해보면 그랬다.
이 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기시감을 느낀 이유는 아마 내가 요네즈 켄시를 열심히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래드윔프스 앨범을 처음 들을 때는 감정을 어디까지 기타로, 어디까지 가사로 표현할 지 결정하고 기타 톤으로 노래를 채우는 송라이팅 노하우를 여기서 배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프 오브 치킨 등 동시대 다른 팀을 두루 좋아했던 그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독특한 리듬 활용을 통해 특유의 서정적 감수성을 부각시키는 기술은 래드윔프스를 통해 얻어냈을 것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밴드 포맷을 넘어서는 너른 범주의 사운드로 다양한 이야기를 그리는 요네즈 켄시의 현재를 보면, 뮤지션으로서의 지향점 면에서도 노다 요지로를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래드윔프스를 들으며 ‘아이네 클라이네'와 ‘LOSER’가 동시에 떠오르니, 요네즈 켄시 인터뷰에 래드윔프스 리스펙트가 괜히 많이 나온 게 아닐 것 같았다. 어릴 적 요네즈 켄시가 래드윔프스에 대해 가졌던 동경심은 분명 거대했을 것이다. 네 사람의 합으로 만들어내는 무한대의 에너지를 선망하는 소년이, 정작 현실에서는 자기 밴드에서 자작곡 하나 올리기도 힘들어한다면, 동경심의 크기만큼 허우적댔을 것 같다.
그러자 요네즈 켄시의 디스코그래피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메꿔 나가는 과정으로 읽혔다. 밴드 운영에 여러 차례 실패했던 그는 보컬로이드를 통해 본인이 좋아한 록을 MIDI 기반 1인 작업으로 구현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메이저 데뷔작 “YANKEE”에서 밴드 레코딩의 염원을 이룬 뒤, 그는 록을 MIDI로 구현하며 쌓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사용하는 소리의 종류를 늘리며 지금과 같은 스펙트럼을 갖췄다. 초기작에서는 동경하던 미성 보컬을 좇아 까랑까랑한 톤을 만들었던 그는, 이후 자신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통해 롤모델과 다른 편안함과 전투력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기 목소리를 솔직하게 인정하게 된 시점이 대략 “BOOTLEG” 즈음으로 보이는데, 이 앨범을 기점으로 그가 대형 아티스트로 거듭나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요네즈 켄시가 참여한 ‘트레몰로'는 이렇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현재의 그를 명확히 보여준다. 별다른 재편곡 없이 기본에 충실한 연주는 래드윔프스를 연구했던 그의 시간을 반영한 듯 한데, 원곡에 비해 저음역대의 기타 사운드가 보다 탄탄하게 들린다. ‘도넛 홀'이나 ‘모래 행성’의 보컬로이드 버전과 셀프 커버 버전을 비교해보면 셀프 커버 버전에서 저음역대가 조금 더 잘 들리는 편인데, ‘트레몰로' 원곡과 요네즈 켄시 버전의 차이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렇게 섬세하게 짜인 기타 사운드 위에는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을 편안히 내뱉으면서도 대목마다 디테일한 표현으로 섬세한 정서를 전달하는 보컬이 올라 그의 현재를 선명히 보여준다.
다른 참여 아티스트의 관점에서도 각 아티스트의 역사 속 래드윔프스의 역할을 떠올려 보면 즐거울 것이다. 래드윔프스를 커버하며 꿈을 키웠을 미세스 그린 애플이나 My Hair is Bad의 팬이라면 이들이 래드윔프스를 어떻게 연구했을 지 보일 것이고, 요루시카나 요아소비 같은 서브컬처 친화적 아티스트들의 참여에서도 각 아티스트들의 지향점을 한 번씩 생각해보면 유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꿈꾸게 했던 한 밴드의 영향력과, 그 꿈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룩한 아티스트들의 궤적을 한 장으로 읽어보고 싶다면 “Dear Jubilee” 앨범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