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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Nov 15. 2022

이래서 사십춘기가 오는군요

저는 고슴도치입니다. 누군가 다가와주길 바라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경계하고, 오랜 시간 나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이어야만 가시를 내리고 곁에 머물려하죠. 그렇다고 혼자만 있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로는 하지만, 따뜻한 관계 속에 있고 싶어 해요.(재택근무 하루 만에 발견한 신기한 내 모습였죠)


그렇게 날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가깝고 싶은 내 마음을 고스란히 인정한 건 놀랍게도 코앞에 마흔을 앞둔 지금에서야 입니다. 저는 30대 내내 저를 이해하고,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이해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요동치는, 심란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으니까요. 늘 평온하고 싶고, 나를 평온하지 않게 만드는 건 '이유가 있겠지' 라며 내려놓으며 살았던 지난날이 사실은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어쩌면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기에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던 것임을 이제 알았거든요.


작년 말, 저는 10년 이상 전문가로 일한 FMCG(소비재) 업계의 소비자 리서치/트렌드/데이터 분석 분야를 떠나 비즈니스 구조도 업무 문화도 심지어 용어부터 생소한 IT 업계에서 직접 운영할 신규 플랫폼 사업을 기획/구축/론칭하는 업무를 맡았고, 설상가상 '(명목상) 사업리더'로 욕받이 자리에 앉게 되었어요.(손들고 하겠다고 한건 아녔어요. 이 사업을 셋팅하시던 전임자분이 이 사업도 리더도 안 하겠다고 다른 팀으로 도망가시는 바람에 당첨된 거죠.. 인생은 참으로 상호작용!)


플랫폼의 핵심 기능은 제 영역이라 전문 유저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고, 주위 동료들과 팀장님, 상무님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사업은 잘 진행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새로운 분야, 주도적인 역할, 매일 매일 숨쉴틈도 없는 업무량 속에서 마음의 여유는 바닥이 나기 일쑤였고, 바닥난 내 마음은 아무리 티 내지 않으려 해도 표정과 말에서 동료들에게 닿을 수밖에 없었겠죠. 아무리 상사에게 인정을 받고 사업이 잘 진행된다 한들 하루에 다 합쳐서 5분도 웃지 않는 제 모습은 거울 속에서도 시들어가는 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보낸 6개월 동안 제 마음속에서는 그동안 겪지 못한 감정의 폭발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일과는 별개로 진심을 다한 마음을 상실하며 수많은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죠.


이런 시간 끝에 저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더 깊이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심리검사를 토대로 한 사내 심리상담과 법륜스님 강의를 비롯해 마음을 고찰해보는 데 도움 되는 심리 관련 영상들, 이미 읽었거나 새로 산 심리학 책들을 다시 읽어보며 약 3개월간 고 3처럼 제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이제 안갯속처럼 뿌옇게 덮여있어 보이지 않던 마음들을 조금씩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어요.


고요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제가 제 안에 숨죽이듯 살던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등등 온갖 감정들이 "나 여기 있어!"라며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 11살 '라일리'가 된 듯 폭풍우 같은 시간을 보내왔다는 걸 이제 알게 된 거죠.


그리고 평온하다 생각했던 지난 몇 년의 시간이 사실은 평온이 아니라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택하지 않았던, 감정이 메말랐었던 시간은 아닐지 새롭게 보기도 했어요. '슬픔이'를 느끼지 않게 하려고 하자 라일리의 모든 감정이 멈춰버렸던 것처럼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제 방어기제*는 '과도하게 생각을 거듭하거나 분석하기', '자신을 바쁘게 만들기', '체념'인데, 특히, 30대에 들어서는 '과도한 분석'으로 그 상황과 타인을 이해하며 내 안에 올라오는 분노,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려고 했고, 인생도 관계도 내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흐르듯 살려고 했지만 사실은 '체념'하며 좌절감, 외로움을 모른 척 한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수녀님이 해준 '사십춘기'라는 말을 듣고, "아! 어쩌면 내가 사십춘기를 겪은 건가 보다" 싶었어요. 덮어두고 모른 척했던 내 마음을 그게 무엇이든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인정한 지금 이제 저는 사십춘기를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인가요?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그 안에 진짜 마음을 직면한다면 '거기 있었구나, 그랬구나. 몰라봐줘서 미안해.'라고 해주는 건 어떨까요? 전 제 안에 있는 '고독함'과 '외로움', '좌절감'과 '두려움'을 인정한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해졌었어요. 그 마음도 다 저라는 걸, 그 마음이 있어서 제가 저로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지금부터, '과도한 분석쟁이'가 어떤 시간들로 제 안의 감정들을 직면하게 되었는지 얘기해줄게요.


* 방어기제는 자신의 진짜 감정에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방법을 가리킨다. 생각일 수도 있고, 반응이나 행동일 수도 있다. - 류페이쉬안 「감정은 잘못이 없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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