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근길,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 위에 솟아난 푸른 생명체. 터벅터벅 걷던 전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걜 유심히 들여다봤어요. 너무 예뻐서, 너무 기특해서요.
많지는 않은 식물을 키우면서 새잎이 돋아날 때, 꽃을 피울 때 살고자 하는 그 의지가 느껴지고 참 기특하더라고요. 공원에 핀 들풀, 들꽃을 볼 때도, 바지런히 돌아다니며 양 볼 가득 먹이를 주워 담는 청설모를 볼 때도 살아내는 그 모습이 기특했어요. 지금 와 보면 그게 제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였기 때문였을 거예요.
30대 중반이 되면서 가끔 몸 어딘가가 고장 날 때가 있었는데, 한 두어 번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1~2주를 기다려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 검사들을 할 때 꼭 의사들은 '암'일 수 있다는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무서워서 눈물이 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는 무슨 생각이 들었게요?
'암이면 어때. 어떻게든 살아가는 거지.'
그 생각을 한 이후로는 '내가 삶에 대한 애착이 높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을 했던 저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얼마 전 했던 기질검사에서 나온 '낮은 책임감'에 대한 의미를 알고는
'과연 내가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기질검사의 자율성 항목에 속한 '책임감'은 제가 잘하는 '미션/과제를 부여받으면 그걸 이뤄내는' 그런 책임감이 아니라 "내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였어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든 나와 맺어지는 인연이든, 제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유가 있겠지'라며 늘 받아들이는 제 성향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 감정의 안정선을 그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선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책임을 지기보다는 놓아버릴 수 있다는 의미 같았어요.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내 주도권이 아닌 타인의 주도권 안에 놓인 느낌도 들었고요. '그러니까, 나는 지금껏 수동적으로 나를 사랑했던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에 대해 애착을 가지며 살아왔는데 그 안에 '내가 원해서 선택한 내 모습이 얼마나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더라고요.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는 무엇을 원했던 걸까.' 그 시간을 후회하진 않지만 '내가 원하는 게 정말 그런 삶이었던가.'
아닌 것 같아요. 원했던 걸 모른 척하기도 했고, 원했던 걸 몰랐기도 했고, 원했던 걸 원해봐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포기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사십춘기를 겪으며 하나씩 하나씩 그걸 풀어가는 중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를 사랑해야겠다'라고 다짐한 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인생이 너무 짧다'는 거였어요. 무언가 해보는 걸 망설일 시간도, 너를 사랑할 시간도, 내가 성취감을 느끼며 일할 시간도, 모든 게요. 돌아보니 그렇게 열심히 수동적인 성실함으로 살아온 시간만큼 앞으로 살아가면 종착지에 도착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전에는 인생이 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 짧아요.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게 아쉬울 만큼요. 한순간 한순간이, 오늘의 이 시간이,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찰나이고 다신 오지 않겠다는 걸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달까요.
그러면서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운전이 무서워서 면허를 안 땄고, 발이 닿지 않는 거대한 바다의 깊이가 무서워서 수영도 안 배웠는데. 운전을 했다면 얼마나 많은 곳에 가보고 경험했을 것이며, 수영을 했다면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액티비티 활동을 할 수 있었을지. 더 넓고 풍요로웠을 내 세계를 두려움으로 인해 보지 못한 걸 생각하니 너무 아쉽더라고요.
당신은 당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나요? 내 선택에 후회가 안 남도록 살고 있나요?
저는 요즘 모든 순간이 애틋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두려움을 없애고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에, 그것이 너의 세계라 하더라도. 기꺼이 가볼 용기도 생겼죠. 그리고 그런 용기가 곧 너와 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거라는 믿음도 생겼고요. 인생에 머뭇거릴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당신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두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기존에 느끼지 못한 자유로움을 느끼길 바라요. 진심으로요.
÷ 로라의 감정은 계속해서 '이 관계는 즐겁지 않다'고 말해 왔지만, 로라는 감정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감정이 전달하는 정보를 접한다는 건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였고, 변화는 아마도 헤어짐일 터였다. 많은 이가 로라처럼 알 수 없는 미래와 변화에 뒤따라올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막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자신을 익숙한 생활 반경 내에 가둬 두려 한다. 그래서 두려움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가 되는 것이다. 두려움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지 전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둔다. - 류페이쉬안 「감정은 잘못이 없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