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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아씨 Nov 16. 2022

아닌데 아닌데 나 사람한테 관심 없는데?라는 방어기제

이상했어요. 전 분명 남한테 관심 없는 사람이라 철석같이 믿었거든요. 그래서 잦은 이직으로 직장을 여러 번 옮기면서도 '내가 친구 사귀러 왔냐, 일만 하자'라며 경주마처럼 회사에서는 일에 집중했어요. (물론 그러다 보면 좋은 인연들이 하나둘씩 곁에 남아서 지금은 남아있는 학창 시절 친구들보다 더 많은 직장 친구들이 생겼지만요) 한 때는 직장에서 너무나 중요한 성공요소인 정치질, 자기 어필/showing, 인맥관리 이런 게 보기만 해도 질리고 자신 없어서 프리랜서로 일만 하는 게 꿈인 적도 있었어요. 정말 혼자 조용히 흙 빚으며 살고 싶어서 진지하게 도예 국가자격증 준비도 했었고요.


그런 제가 사내 심리상담 센터에 똑똑. 문을 두드리며 남긴 심리상담 신청 사유의 요지는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였답니다. 제가 남겼던 신청 사유 중에 이번 글에 해당했던 내용만 옮겨볼게요.


상반기 사업기획 시, 익숙한 업무가 아닌 분야에 해야 할 일은 많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 주위 동료들에게 날카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기도 하고 주위에 의지하는 마음도 많이 생겨서 덜하지만 처음 같이 일할 때 제 태도가 이미지로 굳혀져서인지 무섭고 어렵다는 인상이 있는 듯해요. 이전 회사들에서는 따뜻하다, 평온하다, 침착하다 등등 주로 따뜻하고 품어주는 사람이란 평가가 많았어서 제가 다른 면도 있다는 게 인정받지 못해서 가끔 서운하기도 하고 약간 슬퍼지기도 하고, 이런 부분들이 이미지 메이킹이 된 건지, 제가 정말 그렇게 얘기하는 건지 회의 시간에 평소처럼 얘기하는데도 무섭다는 말을 들었어요.

무섭다,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가 제 안에 있는 건지, 여기 와서 생긴 제 역할 때문에 이미지 메이킹이 된 건지 혼란스러워요.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정말 제 대화 방식이 상대가 그렇게 느끼게 하는 걸까요? 문제가 있는 걸까요?"


이 신청 사유를 다시금 읽어보니 '저는 남한테 관심 없는 사람 예요'라고 말하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네요. '동료들이 저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라는 게 고민이라니 이리도 모순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사실 이 심리상담 전에 가까웠던 사람이 남긴 가슴 아픈 말도 있었지만, 그 시기 즈음 회식자리에서 (저와 친하지 않은) 남자 동료분이 'OO님은 무섭진 않아. 좀.. 어려워'라고 한 말과, 회의 석상에서 협력사 이사님이 어떤 아젠다 관련 논의를 요청했을 때 '양쪽 내용을 모두 파악하고 계신 담당자분이 오늘 휴무라 안 계시니 내일 그분과 함께 논의하자'라고 말하자 '공격적으로 방어하지 마시고(?) ~~'라는 말을 들었고, 이 모든 말들이 쿵쿵쿵 쌓이며 제겐 감정의 요동과 혼란스러움이 자리잡기 시작했었어요. (물론, 협력사 이사님은 평소 소통 방식도 다소 방어적이고 수동적 공격성이 있어 넘겨버릴 수 있지만, 어쨌든 그렇지 않은 성향의 동료에게도 어렵다는 말을 들으니 고민거리가 되었죠)


이렇듯 어쩌다 보니 쿵쿵쿵 겹쳐진 말들로 시작된 고민과 심리상담. 그 첫 세션에서는 '기질검사'와 관련되어 저를, 제 고민을 들여다봤고 이 시간을 통해 저는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자극 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이라는 4가지 타고난 기질과 자율성, 연대감, 자기 초월이라는 3가지 형성된 성격에 대한 기질검사에서 저라는 사람은

타고난 기질에서 "주위 환경에 둔감하여 예민하지 않다. 즉 뜻대로 안 되어도 분노하거나 감정 기복이 없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타인의 감정/평가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은 다른 사람에게 너무 무관심하지도 의존하지도 않는 보통 수준이다. 유독 인내력이 높은데, 이는 일에 대한 완벽주의가 높다는 것으로 일에 대해서는 예민할 수 있고 이는 과제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으로 분석돼요.

형성된 성격은 주로 내면의 성숙함을 보여준다는데 성찰을 많이 한 덕분인지 모두 높은 특성을 보이고, 특히 단점까지도 수용하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자기 수용이 매우 높았어요.

(예민하지 않은 타고난 순둥이 기질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여기까지는. 제가 '과도한 분석쟁이'로서 이미 스스로 파악한 사항인데, 제 고민과 관련하여 놀랐던 부분은 평균을 훨씬 웃돌며 매우 높은 특성으로 꼽힌 "연대감"였어요.


'상냥한 개인주의자'로 생각하던 제게 "높은 연대감"은 받아들이기 낯선 개념였어요. 아닌데요.. 저 혼자가 좋은데요.. 다른 사람한테 관심 없는데요.. 아닌데요..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이미 타인이 내게 거리감을 갖는 것에 '서운함'을 느끼는 제 자신의 마음을 보니 인정해야겠더라고요.


"너 사실은 가깝고 싶구나. 너한테는 외로움이 자리 잡고 있구나"라고요.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와 그 안에서의 인정, 사랑 등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 제게는 생각보다 중요한 가치였고 감정였어요. 그게 채워지지 않으니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고 거기서 오는 슬픔으로 저는 하루에 5분도 웃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거였죠.


만일, 제가 이런 유대감을 중시하는 사람인 걸 알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제 기준에서 미흡해 보이는 내용였더라도 어려운 작업을 함께 해준 동료에게 '고맙다'라고 얘기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예쁜 말들이 상냥한 말투로 잘 안 나와요. 당신이 싫어서, 당신에게 상처 주려고 하는 게 아니니 속상해하지 말아 주세요. 미안해요.'라고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제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했을 것 같아요. 더 나아간다면 상대를 의지하며 기댔을 것 같아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함께 해주실래요?'라면서요.

(하지만 저는 유대감과 제 일에 대한 인내력_완벽주의를 두고 계속 줄다리기를 하는 중예요. 론칭 직전인 이번 주까지도 남아있는 주요 기능의 결함으로 스트레스 최고조인 상태에서, 메신저로 '이러시면 어떡합니까'를 다다다다 외쳤지만 제 안에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어떡합니까' 한마디로 표현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해해주려고요. 저는 '사회적 민감성'이 보통인 사람이라서요 ^-^)


제가 이 고민을 시작했을 때 박재연 님의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어요. 책에서 나온 '생각-감정-욕구' 목록이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되었는데,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자동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고 그 안에는 감정이 있으며, 더 근원적으로는 그 감정의 원인이 되는 핵심 욕구가 있다고 해요. 그 핵심 욕구를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저는 '사회적 욕구'와 연계된 게 많더라고요. 역시 모순적인 고슴도치입니다.


※ 좋은 내용이 많으니 자세한 건 책으로 접하시기 바랄게요!


당신은 어떤 생각이 자주 드나요? 그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예민한가 하며 무시 하시진 않았나요? 그랬다면, 예민한 게 아니라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것이니, 앞으로는 느껴지는 감정을 불편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잘 들여다 봐주세요.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그 감정이 알려줄 거거든요.


÷ 감정은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자료'다. 우리 삶에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알려 준다. 삶에서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변화해야 할 부분은 바꿀 수 있도록 나타내 준다. - 류페이쉬안 「감정은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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