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간의 단상
집 앞에 상점이 하나 있다. '서울 외곽 카페'를 찍고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보이는 가구점과 비슷하게 생겼다. 창고형 단층 건물. 거실 식탁에 앉으면 창문 너머로 주차장과 옆문이 보인다. 건물 앞 인도에는 사람 키 두배의 홍보용 깃발이 줄지어 꽂혀있다. 창 밖 풍경은 꽤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중 가장 유용한 정보는 ‘날씨’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거실로 나간다. 블라인드를 걷고 날씨를 확인한다. 정확히 말하면 깃발의 펄럭임 정도를 살핀다. 비는 안 오는 게 이상하기에 폭우인지 아닌지 정도만 확인하면 된다. 복병은 바람이다. 깃발이 잠잠하거나 펄럭이면 외출 가능이고 깃대가 춤추는 바람 인형처럼 댄스를 멈출 줄 모르면 집에 있어야 한다.
깃대의 경고는 권유보다 강제의 성격을 더 많이 띤다. 경고를 무시하고 외출을 강행한다면 하루 콧바람 쐬러 나갔다가 3일 앓아눕는 수가 있다. 지난 21일간 비바람 치는 날 우산을 쓴 사람을 딱 2명 봤는데 우산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보지 못했다. 바람에 우산을 펼칠 수조차 없다. 대부분 모자를 쓰고 방수 기능이 있는 옷을 입지 우산은 꺼내지 않는다. 폭우 속에 헤드폰을 끼고 유유히 걸어가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봤는데, 덴마크에서 생산되는 헤드폰은 물속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다시 깃대의 경고 얘기로 돌아와, 경고를 무시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말하고자 한다. 한 번은 마트를 가기로 한 날 깜빡 잠이 들었다. 번쩍 눈이 떠져 정신없이 준비하고 나서느라 깃발을 확인하지 못했다. 평소처럼 모자에 목도리, 바람막이, 장갑, 우비를 장착하고 집을 나섰는데 휘몰아치는 바람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족히 20분은 걸어야 하는데 모자는 이미 이마를 벗어나 정수리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었고 이어폰 한쪽은 빠져 있었다. 귓속을 강타하는 바람에 고막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태풍의 눈에 들어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마트까지 어떻게 걸어갔는지 기억이 없다. 흐르는 콧물을 들이마실 틈도 없이 몰아치는 강풍과 흘러내리는 콧물을 받아들이며 계속 걸어야 했던 수치스러운 기억만 선명하다.
날씨 외에도 상점을 찾는 고객을 관찰하며 문화를 파악(하고자 노력) 하기도 한다. 자전거 타는 사람 외에 걸어 다니는 사람을 잘 보기 힘든 외곽에 살아서 인지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말에는 주차장이 거의 찰 만큼 사람이 꽤 많이 온다. 토스트와 커피를 세팅해 놓고 본격 구경을 시작한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덴마크에서는 가족이 항상 함께 다닌다. 바람이 부나 비바람이 몰아치나 어린아이, 심지어 갓난아기까지 데리고 다닌다. 감기 걸릴까 봐 안 데리고 다닐 것 같은데. 보고 있다 보면 ‘저렇게 갓난아기 때부터 바람을 맞고 다니니까 폭우 속에서도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경지에 이르는 건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자연스레 한국과 비교를 하게 된다.
얼마 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태풍의 눈에 들어간다면 이런 느낌인가를 느꼈던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천만다행으로 바람이 잠잠해져 상점 앞을 기웃거렸다. 쇼윈도로 보이는 상품들은 꽤 큼직했다. 알고 보니 유모차부터 엄마들이 자전거 앞에 아이를 태우기 위해 달고 다니는 수레 같이 생긴 그것까지(이름은 모른다) 파는 유아용품점이었다. "아, 뭐야."하고 돌아서는데 기분이 쎄했다. 큰 세상을 보겠다며 먼 곳까지 와서 고작 창 밖을 보며 문화를 운운하고 있었다니. 집 앞에 편의점을 가장한 게임방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일력을 넘기다 인상 깊어 찍어놓은 22일 날의 구절이 떠올랐다.
사물은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을 거쳐서야 이상해지는 것이기에
이상함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산해경』
덴마크에 가서도 글은 꾸준히 쓰겠다며 야심 차게 구매했었는데 잊지 않고 챙겨 오길 잘했다. 내면의 창문에 스스로 갇히지 않도록, 아니 이미 생긴 창문을 깨부수고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인 충격을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