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히 Mar 08. 2020

03 덴마크에 온 지 한 달, 감염증 확산이 시작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허기진 배를 빵으로 달래고 라디오 또는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유튜브에서 광고 없는 최신 팝송을 검색해 듣고 있던 날, 우연히 흘러나온 곡에 아침부터 슬퍼졌다. Post Malone의 Circles. 2주 전, 커뮤니티 룸에서도 들었던 노래다.


매주 목요일이면 커뮤니티 룸에 덴마크 친구들이 모인다. 그곳에 가면 덴마크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다. 즉, 영어 공부와 덴마크 문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2주 전, 처음 참석한 날 10대부터 20대까지 대략 15명의 친구들과 악수하며 통성명했다. 2시간 반 동안 영어 듣기를 하고 온 기분이었지만 흥분됐다. 그리웠고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빠지지 않고 매주 참석하리라 다짐했다.


덴마크에서도 코로나 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 시내에 있었다. 거리를 걷고 있는데 코로나인지 코레아인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덴마크인 남자 2명밖에 없었다. 나를 향한 소리였다. 물론 오해일 수 있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후 버스를 기다리는 내 옆에서 무리를 지어 떠들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소음이 공포로 다가온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평소 인종차별 걱정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정도가 덜하다는 말을 워낙 듣기도 했고 아직 낌새를 느낀 적도 없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출 순 없다. 나고 자란 곳이 아니며 피부와 머리색 등 외적인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일을 하고 있지 않아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서 노트북을 하다가 답답해질 즈음 노트북을 들고 저장해놨던 카페를 가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는데. 코로나 19가 커뮤니티 활동에 이어 이보다 더 소소할 수 없는 나의 즐거움을 봉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3월부터 활동 개시하려고 찾아놓은 시에서 진행하는 인터내셔널 프로그램들도 무의미해졌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무서운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낯선 타지에서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의욕이 사라졌다. 그래도 직장은 구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자 하는 마음이 매일같이 싸운다. 마음이 요동치니 벌어진 틈 사이로 우울감이 새어 나왔다. 밀려오는 우울감에 자신감은 침수되고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틀 연속 친구들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1년밖에 주어지지 않은 시간, 우울할 틈도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지. 하고 싶은 말의 천분의 일도 말하지 못했지만 수다 조금 떨었다고 우울감이 사라졌다. 가끔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들이 우울감에 허우적대는 나를 양지로 건져 올린다.


미루지 말자. 상황이 안 좋다고 손 놓지 말자. 나아질 상황을 대비해 준비하자. 하루하루 살아있는 몫을 해내자. 여기 온 목적을 잊지 말자. 때마침 입고처 중 하나였던 독립 책방에서 매일 영어 10 문장 쓰기 온라인 클래스가 열린다는 게시물을 발견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내 절차를 따라 입금까지 완료했다. 작년 6월 독립출판 스터디를 신청할 때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는다.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02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 (feat. 덴마크 날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