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인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덴마크 일상을 올리고 있다. 덴마크에 가면 인스타그램 열심히 하는 것도 잊지 말라는 친구들의 부탁이 있기도 했고, 나중에 돌아볼 날이 온다면 사진과 짧은 글로 구성된 인스타그램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포스팅에 종종 등장하는 사람은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이다. 같이 사는 사람은 67일 먼저 덴마크에 도착했다. 포스팅에는 같이 사는 사람을 '67일 먼저 온 자'로 지칭하며 67일 먼저 온 자의 꼴값을 고발하는 식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덴마크에 온 지 두 달이 지나면서부터, 그러니까 내가 덴마크에 온 지 67일이 가까워 오면서 같이 사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날이 늘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훈수를 두는 그를 보며 67일 있어 놓고 유난이라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는데 그럴만했다. 67일 차가 되니 이곳에서의 일상이 많이 익숙해졌다. 어느새 아직도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라는 말이 쏙 들어간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 이곳은 명백한 삶의 터전이다. 아는 척 좀 그만하라며 눈이 찢어져라 째려봤던 게 내심 미안하기도 하다.
무튼, 내가 도착하자마자 67일 먼저 온 자는 배가 콕콕 쑤신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좀처럼 나아지질 않자 병원을 예약했다. 3주를 기다린 끝에 진료를 볼 수 있었는데 의사가 아마 우유 때문일 거라고 했다. 외국인의 경우 우유를 먹고 비슷한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의사의 조언대로 락토프리 우유로 바꿨더니 증상이 사라졌다. 맥주 때문일 거라 생각해 한 달간 금주를 했었는데. 락토프리 우유를 사 온 날부터 냉장고에서는 맥주가 끊임없이 나왔고 나는 양조장에 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치킨 먹고 급체한 날인 지난 금요일부터 어제까지 속이 계속 더부룩했다. 잠도 잘 못 자고 중간중간 깨기도 했다. 소화력 하나는 타고났기에 체하는 일이 거의 드물뿐더러 체하더라도 그 날만 지나면 다시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먹어도 이상이 없던 나였다. 그런 내가 3일 연속으로 속이 더부룩하다는 건 정말 큰 일이라는 것. 어제는 걱정돼서 아무것도 못했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삼시세끼 너무 잘 챙겨 먹었기에 이렇다 할 원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원인이 없다는 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건데... 부정적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찬 내 표정이 당장이라도 한국에 돌아갈 것 같아 보였는지 같이 사는 사람은 왜 그런지 알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덴마크에 온 지 67일 다 돼가잖아!"
67일 간 숨겨왔던 요리 실력에 스스로 감탄하며 무지막지하게 먹었던 것들이 이제야 반응이 온 것 같다. 매끼 찍어놨던 사진을 보니 주로 기름진 것들이었다. 밖에 나갈 수도 없고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없어 요리에 매진했더니 이 사달이 났다. 요리했다고 자랑하면 엄마는 어김없이 "초록생이 안 보이네요."라고 말했다. 왜 잔소리라고만 생각했을까. 지금 나타나고 있는 증상을 보면 위염과 가장 비슷해 보인다. 병원 가는 건 애초에 포기했고 약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선, 위염이 영어로 뭔지부터 찾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