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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히 May 07. 2020

09 덴마크에서 유영하기

D+90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한 의미를 되새기며


5월이다. 이곳에 온 지도 3개월이 지났다. 이젠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수다 떨고 싶다는 투정도 어색하기만 하다. 여기 덴마크에서 바라고 소망하기엔 어색한 것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라고 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이곳에 왔기에 한국에서 누렸던 것들은 자연스레 끝맺음됐다. 다만, 다행인 건 ‘정지’가 아닌 ‘일시 정지’ 상태로 끝맺음됐다는 것이다. 원하면 언제든 한국에 돌아가 '재생' 버튼을 누르면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29년간 쌓아온 나와 관계된 모든 것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내가 두고 온 '그것'들은 계속 움직이고 변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 있는 1년 동안 변하지 않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지는 건 시간일 테니까.


‘시작’과 ‘끝’은 시간을 맺고 끊는 일이다. 그저 흐르고 있는 시간의 한 지점을 임의로 정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시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거대한 자유의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헤엄치는 법을 터득해 파도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파도에 몸을 맡기기를 애초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파도를 정복하려다 굴복하는 사람도 있다.


시작과 끝맺음을 반복하며, 그 안에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시간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운다.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쉽고 빠르게 헤엄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의 파도가 일렁이는 시간의 바다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영원하다는 말이 아니다. 끝이 어디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끝이 어디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의 바다에서 승자는 가장 자유롭게 헤엄치는 사람일 것이다. 남을 따라 하는 사람도, 눈치만 보다 가라앉는 사람도 아닌 가장 자유롭게 유영하는 사람.


유영(游泳)의 의미를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대부분의 시작이 남들과 같았기에, 시작이 다르면 틀린 줄 알았기에, 남을 따라 하다가, 눈치만 보다 가라앉을 뻔하다가 그 의미를 깨달았다. 시작되는 상황에 놓여보기만 했지 스스로 시작 버튼을 눌러본 적은 없었다.


그 버튼을 처음 누른 건 덴마크행을 택하면서였다. 버튼을 누르기까지 수개월 고민했다.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한국 생활을 일시 정지하고 타국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하루의, 한 달의 시작과 끝을 잘 맺으며 주어진 기간의 끝맺음도 후회 없이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일이 노력인 삶을 사고 있지만, 그 안에 배움이 항상 있기에 어려움과 불편함도 감수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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