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잠들기 전 일기장에 '내일은 맛있는 아이스 라떼의 힘을 빌려 책상에 꼭 앉아있어야겠다'는 다짐을 적었다. 일찍 일어날 줄 알았는데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오후 12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점심을 먹고 어젯밤부터 고대하던 아이스 라떼를 만들었다. 얼음, 우유, 드립 커피를 순서대로 넣고 휘휘 저어 한 모금 마셨다. '하 역시 이맛이지'가 나와야 하는데 맛이 없었다. 꼬소하고 진한 맛은 어디 가고 맹맹했다. '맛있는 아이스 라떼'의 힘을 빌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했는데 맛이 없으니 어쩐담. 저 멀리 보이는 도톰한 극세사 이불이 손짓하는 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이내 마음을 고쳐 먹고 전자책을 집어 소파에 앉았다. 소파를 젖힐 대로 젖혀 누운 듯한 자세로 몇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대놓고 눕진 않았으니 오늘도 목표 달성이다.
2.
'누워있는 시간 줄이기'를 새해 목표 중 하나로 정했다. 집에 있을 때 나는 기본적으로 누워있다. 꼭 앉거나 일어선 채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다. 학창 시절, 공부하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누워 지냈고 회사 다닐 때도 그랬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일단 누웠다. 앉아있느라 고생한 허리를 달래기라도 하듯 도어록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벗어던짐과 동시에 대자로 뻗었다. 끔벅끔벅 천장 등을 바라보다 배가 고프면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차려 먹고 다시 누웠다. 남들은 앉아서 하는 것들을 누워서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겐 있었다. 덴마크에 있을 때 한 번은 같이 사는 사람이 소파에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루 종일 누워있을 수 있어? 허리 안 아파?" 눈을 치켜뜨고는 되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루 종일 앉아있을 수 있어? 허리 안 아파?"
3.
퇴사 후, 푹 자고 일어나 이른 점심을 먹고 책과 노트북, 메모장을 챙겨 카페에 가 늦은 저녁까지 꼼짝없이 시간을 보냈다. 자율적으로 보내는 하루가 알차다 못해 흥분되기까지 했다. 마음먹지 않는 이상 게으르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본가에서 머물고 있는 데다 카페도 쉽게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나에게 본가는 곧 휴식 그 자체였는데, 익숙해진 모든 것들을 바꿔야 했다. 이렇게 누워있다가는 몸이 굳어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들 때쯤 드립 커피 도구를 주문했다. 수입이 없는 상태인지라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큰 마음먹고 주문했다. 주문한 도구와 원두커피가 도착한 날, 비로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4.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목표가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목표는 덴마크에 있는데 한국에서 마냥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주변에서는 즐기라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즐겨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와식을 검색하니 '일을 하지 않고 놀고먹음'이라고 나왔다. 내가 고수해 온 와식(臥式)이 곧 와식(臥食) 같아 뜨끔했다. 앞으로 모닝커피 만드는 데 더 큰 정성을 더 쏟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