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기게 생긴 사람
도통 웃을 힘이 없다. 아무래도 근육과 바이러스(?)가 입꼬리를 누르고 있으니까. 안면마비로 인해 웃음도 적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당연히 웃을 일도 더 적어졌지. 그래서일까 근래 기운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따뜻한 사람들이 기운 좀 차리고 다니라 말한다. 오늘따라 문득문득 더 생각나는 말이다. 거울 속 비친 내가 참으로 기운 없어 보여서일까. 밖에 비도 축축 오고 그래서인지 더 쳐지고 있다. 내 입꼬리가. 내 눈가도. 기분도. 그리고 마음도.
예전엔 용건 없는 전화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요즘은 어디든 전화라도 걸고 싶은 마음이다. 작은 기기 속 텍스트로 하는 대화 말고 눈을 마주 보고 감정과 생각의 교류가 오고 가는 대화. 그런 대화가 그립다. 공부하다가 잠시 혼자 산책할 때면 수다를 떨고 싶어 괜스레 가족한테 전화를 건다. 내 전화를 가장 반가워하며 받아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리 오래 하지 못하는 통화가 가족이기도 하지.
오늘도 산책하면서 혼자 입꼬리를 확인해 본다. 무표정으로 굳어만 있으면 당연히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스. 마. 일. 혼자 땅을 보고 웃어도 보고, 셀카 모드로 얼굴을 확인하며 웃어도 보고, 고인 빗물을 보고 입꼬리를 열심히 올려도 본다.
괜히 눈물이 맺힌다. 정말 주책바가지. MBTI 'F' 100% 임을 오늘도 인증해 버렸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무거워서 감기인척 훌쩍거리며 산책을 이어가 본다. 복잡한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한 기억을 꾸겨 넣으려 애쓰지 않기 위해. 그냥 떠오를 때면 내버려두자. 이것도 추억이거늘.
날 웃기려 노력했던 사람. 별거 아닌 일로 꽁하고 있으면 웃긴 얼굴을 들이 내밀던 사람이 있었다. 그 모습에 못 이겨 삐죽 튀어나와 있던 입은 어디 가고 배까지 부여잡으며 두 입꼬리가 활짝 펴졌던 나. 분명 마지막엔 그 모습마저 짜증 났는데. 날 웃게 만들던 모습들이 더 큰 기억으로 남은 이 모순. 그때의 우린 서로 얼굴만 봐도 웃었지. 당신도 나한테 웃기게 생겼다고 했어. 자길 웃게 만드는 웃기게 생긴 사람이라고. 우리 참 독특한 사랑을 했네.
나를 웃기게 생긴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역시 사람은 웃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사랑한다면서 내 웃음 하나 책임져 주지 못하면 어떡해. 나도 물론 그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근데 이젠 그런 장난들도 날 웃게 만드는 사람 말고. 진짜 웃음을 찾아주는 사람. 안정감 속에서 소소한 미소부터 박장대소까지 함께 책임지는 그런 사람. 그때도 물론 장난에 의해서만 웃진 않았지만, 행복했지만. 웃었던 날만큼 아쉽지 않게 눈물도 흘렸기에. 아무튼, 당신 참 웃기게 생겼었는데.
만약 자력으로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게 된다면.
그땐 타인의 힘 좀 빌리고 싶네.
그때처럼.
이제 들어가야지.
오랜만에 '웃긴 사람'이 스쳐 지나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