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산다는 건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갯벌밭은 바닷물이 쫙 빠져나가야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땅이다. 철퍽철퍽 소리가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금세 고요해졌다. 물과 그 위에 둥둥 떠 있던 윤슬은 사라지고 퍽퍽하고 진한 땅만 남았다. 그렇게 빛을 잃었다. 내 두 눈도 함께. 촉촉하게 빛나던 갈색 눈동자가 사라지고 딱딱한 흑색 눈동자만 남았다. 모순적이게도 탁하고 어두운 것이 왜 이리 깨끗해 보이던지. 지나간 파도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서일까. 한 발짝 두 발짝 내디뎌 본다.
얼마나 왔을까. 내가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얼만큼 들어왔을까. 궁금한 마음에 뒤 한 번 돌아서 본다. 한 발 한 발 내딛기 쉽지 않았는데 어느새 멀리도 왔네. 시작점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깊게 빠져 들어갈 텐데.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벅참에 망설임을 뒤로 한 채 신발을 벗어 본다. 새로운 감촉에 천천히 스며들어 본다. 처음엔 심한 이질감을 느꼈지만 고작 몇 분 지나고 나니, 다시 밟고 밟아 보아도 그때 그 느낌과 감정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이미 지나 온 발자국은 사라진 지 오래. 어떤 길을 쫓아 들어왔는지 알 수도 없게.
다시금 흑색 눈동자에 작은 별의 입자가 띄기 시작한다. 낮에 본 윤슬과는 다르게 빛나고 있는 무언가. 이리 오라 손짓하고 있네. 저 끝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런데.
이상하다. 왜 기대가 없을까.
이미 깊이도 닿았네. 앞으로 계속 갈 수도 뒤로 나갈 수도 없게끔. 뒤로 가기엔 너무 와버렸고 앞으로 가기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럴 때가 아닌데. 생각 좀 그만할걸.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서 더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이대로 스며들고 있는 걸까. 결국, 이런 내 모습이 나를 애매한 상황으로 몰아넣는구나.
이도저도 못하는 내가 참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