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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Sep 29. 2024

프롤로그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나는 하루 평균 3잔은 기본으로 마실 정도로 커피를 입에 달고 산다. 사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더 가까울 터, 감히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버렸다. 원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커피는 To-go 전문점 커피였다. 불과 1년 전까지는 한 잔에 1,500 원하는 저렴한 커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며 마셔왔다. 하루에 3잔 이상 마시려면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기 때문. 그런 내가 요즘은 집에서 매일 같이 원두를 갈고, 포트에 물을 앉혀 놓고, 커피를 직접 내려 먹는다.


캐나다에서 '커피'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고 와버렸다는 이유를 대기엔 아쉬운 감이 있다. 캐나다에서 바리스타로 일했지만, 스페셜티 전문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한 커피 음료만을 취급했다.

내가 지금도 집에서 커피콩을 분배하고 갈고 있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바로 캐나다에서 만난 옆 사람한테 "저는 커피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에서 시작된듯하다.  


나에게는 '커피'를 좋아한다는 말이 보통 친구나 애인과 '커피 타임'을 갖거나, 혼자 책을 읽을 때 옆에 커피를 둔다거나, 습관처럼 길을 걸어 다닐 때 꼭 손에 커피가 있어서 항상 커피를 입에 달고 산다는 의미로 쓰여왔다. 그래서 내가 "커피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옆 사람의 입에서 이런저런 커피 콩과 커피 내리는 방식,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등에 관한 자세한 지식 이야기가 반응으로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순간 나는 창피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말을 너무 가벼이 내뱉은 나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웠다. 가벼운 취미나 취향으로 여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진심을 담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몸소 느꼈을 뿐이다. 그동안 내뱉은 무엇을 좋아한다는 말에는 얕은 지식을 겸한 발만 담근 상태로 진심이 부족했다고 다가왔기 때문.

그래서, 나도 진심으로 '커피'를 좋아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캐나다에서 지내는 동안 스O벅스를 가장 좋아했다. 지갑 사정을 생각해서 저렴한 커피를 찾아 나서기 바빴기 때문. 외국에서는 일반 카페의 커피보다 스O벅스의 아메리카노가 더 저렴한 경우가 드물었으며, 캐나다의 국민 커피라 불리는 팀O튼에는 ‘아메리카노(Americano)'라는 메뉴 자체가 없고, '블랙커피(Black Coffee)'를 주문하면 상업용 대용량 커피 머신으로 내린 '배치 브루(Batch Brew)'를 주곤 한다. 언젠가 팀O튼은 아이스캡(커피 맛 프라푸치노) 브랜드로 따로 분류되길. 도넛 브랜드로도 나쁘지 않다.

나는 1년 간, 커피를 소비할 때 5불짜리 스O벅스 아메리카노와 2불짜리 팀O튼 블랙커피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다. 가끔, 한국의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그리웠다.

‘핸드드립(Hand Drip)’ 커피에 입문하기 전까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중 홀리데이 겸 연말과 연초를 뉴욕에서 맞이하고자 미국여행을 갔다. 여행 기간 중, 미국 뉴저지에서 인턴으로 있던 옆 사람의 친구가 뉴욕 근방에 왔다고 해 함께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의 친구를 만나 PUB에서 치킨윙을 먹으며 맥주를 한 잔 하는데, 그들끼리 무언갈 주고받았다. 그것은 바로 커피 원두였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친구한테, 부산의 명물(옆 사람이 선정한 기준) '모모스 커피'의 커피콩을 물 건너 가져와 달라 부탁했다더라. 부산의 '모모스 커피'라는 카페에는 바리스타 챔피언쉽 우승자가 바리스타로 계신다고 한다. 이 커피콩을 받기도 전부터 다른 커피를 마실 때마다 꼭 부산의 '모모스 커피'를 언급했던 옆 사람. 그때는 외국에서까지 한국에서 로스팅된 커피콩을 찾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캐나다 집에서도 카페에서 맡을 법한 커피 향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옆 사람이 모닝커피를 직접 내려주면서부터 나는 카페에 가지 않았다. 아, 커피를 내리는 기계는 옆 사람이 캐나다 올 때 한국에서 챙겨 왔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옆 사람이 대단하고 '커피'를 정말로, 몹시, 매우(표현할 수 있는 말로 최대한 다 표현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한국에서의 커피 소비 습관처럼 매일 2~5불씩 나가던 지출도 막을 수 있었고, 땅 넓은 캐나다에서 카페를 찾으러 다니는 것도 일이었는데 집에서도 커피와 함께 작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도 매일 아침 커피를 직접 내려 먹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아무튼, 내가 ‘커피’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에는 커피 애호가이신 우리 친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 시작은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방문했을 때부터였다.

가족여행 내내 옆 사람이 매일 아침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드렸다. 그가 내려준 커피를 두 분 모두 진심으로 좋아하셨다. 아직도 그때의 우리 할아버지 표정을 잊지 못한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나와도 서로 생각한 주제에 맞는 대화를 못했던 옆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랑 커피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상황이 나에겐 적잖이 충격이었다.

심지어 커피 원두를 바꾸거나 내리는 방식이 달라지거나 물이 달라지면 커피 맛이 다르다는 걸 아주 상세히 표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존경스러웠다. 두 분 모두 커피계의 미식가이신 줄은 절대 몰랐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진심으로 '커피'를 좋아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계기는 세계여행 중에 이행되고 있었다. 캐나다를 떠나 시작된 유럽 여행에서 우리는 8개국의 약 15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루에 한 번은 꼭 그곳의 로컬 카페를 방문했다. 내가 선택한 원두를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푸어오버(POUR OVER)'커피를 경험하며 내려오는 커피 액을 보는 재미를 느끼며 나에게 맞는 커피 맛을 분간해 갔다.

처음에는 그저 나보다 더 커피에 대해 더 잘 아는 옆 사람이 주문하는 대로 맡기고 주는 대로 마셨다. 그러다, 점차 스스로 원하는 원두를 고르고 주문하며 커피 추출 방식과 카페의 분위기, 원두의 로스팅 정도에 따라 커피의 맛을 평가하고 있었다. 나의 커피 스타일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정리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제야. 나는 진짜 ’커피‘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무언가를 좋아하는 자세에 대해 더 큰 뜻을 알게 되었다.


최근 나는 커피를 겸비한 세계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넓은 세상을 본 만큼(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을 통해 풀도록 하겠다) 이전보다 마음과 시간을 활용할 줄 아는 이가 되어 가족과 나 자신에게 시간을 쏟고 있는 요즘을 살고 있다.

다시 시작한 한국에서의 삶을 윤택하게 영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집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은 '커피 타임'이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이 ‘커피 타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단순히 커피만 함께 마시는 시간이 아닌 커피 향만치 서로가 진하게 삶에 배이는 순간과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커피를 내리며 함께 보내는 그 ’커피 타임‘이 최근의 나를 행복하게 한다.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는 옆 사람이 올라오면 우리는 함께 그들을 모시고, 동네에 자리하고 있는 요즘의 스페셜티 카페를 방문하며 우리는 서로의 커피 취향을 알아가고, 커피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손주와 조부모가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렇게 나는 근래 옆 사람을 통해 배운 ‘커피’를 좋아하는 자세를 실천하며, 커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할머니 할아버지도 좋아하는 요즘 커피』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커피의 고소한 향이 이 세상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들에게 닿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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