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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없는 홋카이도에 가자

2016년 골든위크, 홋카이도를 가다①


일본에서 가장 긴 연휴, 골든위크.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이르는 약 일주일간의 이 연휴는 이른바 '초'성수기이다. 모두들 회사를 쉬고 여행을 가거나 고향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어딜 가나 사람은 많고, 어딜 묵어도 호텔은 비싸다. 일본에서 처음 맞았던 작년 골든위크에 나는 홋카이도로 떠났다.


홋카이도
北海度
ほっかいど



삿포로에서 먹었던 징키즈칸 석쇠가 홋카이도 모양이었다



보통 홋카이도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정확하다. . 실제 일본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이어서 설국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홋카이도의 스키장은 '파우더스노우' 라고 할 정도로 부드러워서 수많은 스노보더들이 선망하는 곳이다. 잠깐 여담이지만, 만화 '골든 카무이'에서 홋카이도는 일본 본토와 기온이나 지형이 확실히 달라서 원숭이가 아예 살지 않는다고 나오길래, 일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들어본 적 없다고 하더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온천 하는 원숭이들까지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



삿포로대학교에서 만난 그 해 마지막 벚꽃



앞에서 눈의 왕국 홋카이도에 대해 이야기했건만, 정작 나는 눈이 전혀 오지 않는 5월에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봄에 갔다고 하면 다들 하나같이 물어본다. "홋카이도하면 겨울인데, 왜?" 나도 겨울에 홋카이도를 가지 않은 게 지금에서도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떻게 해서도 가지 않았던 이유. 나는 추운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특히 눈은 더욱더 싫다.



혼자 여행을 다니려면 고급스런 레스토랑도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홋카이도를 가고 싶은 마음은 아주 예전부터 있었다. 겨울에 가고 싶진 않았지만, 겨울이 아닌 맹숭맹숭할 때 가는 건 아까워서 못 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홋카이도 출신인 친구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홋카이도는 5월에 벚꽃이 핀다고, 일본에서 가장 마지막이라고 말했었다.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홋카이도로 일본의 마지막 벚꽃을 보러 간다고. 드디어 갈 명분이 생겼다.




상당히 기대했던 오타루 오르골당.  너무 예쁘고 너무 비쌌다



하지만 골든위크는 역시, 어딜 가도 비싸다. 평소에는 저렴하던 국내선 저가항공도 골든위크가 되면 가격이 5배가 뛴다. 아니, 음료수도 안주는 비행기가 편도에 20만원을 하니 이걸 어떻게 타. 탈 수 없다. 교통비를 아껴 밥이라도 한번 더 사 먹자 싶어 야간 버스+페리의 길을 선택했다. 아싸, 고생길 열렸다.



내가 사진에서 봐 왔던 오타루 운하에는 항상 눈이 있었다



50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출근해서, 퇴근 종 치고 바로 도쿄역으로 향했다. 맥도날드로 저녁을 때우고 밤 10시가 돼서 야간 버스를 타니 벌써 피곤한 것 같았다. 신발을 갈아 신고, 커튼을 치고, 의자를 뒤로 젖히니 기사님이 불을 꺼준다. 그 길로 바로 세상모르고 잤다가 일어났더니 비 오는 아침, 아오모리(青森)다.



한껏 마신 다음 날, 해장으로 사치스럽게 삿포로 미소라멘을 먹었다


만약 도쿄나 오사카, 일본 본토에서 홋카이도로 넘어가는 야간 버스를 타게 된다면 거의 종점은 아오모리다. 특히 하코다테를 가려고 하면 여기에서 페리로 갈아타야 한다. 야간 버스는 4열, 3열(3열도 2:1과 1:1:1로 나뉜다), 여성전용 등 여러 옵션이 있고 보통 화장실은 제일 뒤에 딸려 있다. 이왕이면 조금 비싸더라도 3열 버스를 타서 푹 자고 가는 것이 좋다. 돈 아낀다고 4열로 예약해 발도 못 뻗고 자다가, 도착하자마자 숙소도 가서 잤던 내 경험상, 그렇다.



오타루에서 마주쳤던 인력거꾼과 손님들



본토의 북쪽 끝이자 홋카이도에서 가장 가까운 아오모리현은 사과가 유명하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면 사과잼부터 쿠키, 아이스크림 등 사과 관련 상품들이 가득하다. 나 또한 도착해 제일 처음 사과파이를 먹었는데, 이게 내가 아오모리에서 유일하게 한 일이 될 줄이야. 원래는 이왕 아오모리에 온 거, 열심히 돌아다니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비도 오고, 귀찮고, 귀찮아서 배낭을 멘 채 공중목욕탕에 들려 온천만 하다가 오전을 다 보냈다. 왠 젊은 처자가 몸 반만 한 배낭을 메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와서 씻고만 갔으니,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어디서 가출해왔나 했을 거다.




하루 만에 만난 첫 홋카이도



파도가 거세 페리가 뜰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꽤 큰 선적이어서 그런지 예정대로 출발했다. 페리를 타고 하코다테에 도착하니 저녁 6. 하루가 꼬박 갔다. 돈을 아끼자고 시간을 버렸지만 괜찮다. 그 돈으로 하코다테에서 내가 사랑하고, 사랑하는 해산물을 잔뜩 먹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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