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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벚꽃을 보러 갑니다

2016년 골든위크, 홋카이도를 가다②


드디어 갈 명분이 생겼다고, 별 거 아닌 듯 말했지만 사실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벚꽃의 나라라는 일본에 살면서도 제대로 된 벚꽃놀이 한 번 가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 많아서,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항상 핑계를 대며 벚꽃놀이가 뭐 별거냐고, 뭘 굳이 보러 가냐고 쿨한 척했다. 이번에야 말로 담담한 척하지 않고 솔직하게, 즐기면서 벚꽃을 볼 것이다.  그것도 올해의 마지막 벚꽃을 고료가쿠에서.



고료가쿠 공원
五稜郭公園
ごりょうかくこうえん





고료가쿠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각형 별 모양의 공원이다. 하코다테의 개항으로 외국과의 왕래가 많아지고 러시아의 남진에 대비하기 위해 지은 성곽인데, 네덜란드의 17세기 구식 요새에 기초했기 때문에 실제로 일어난 하코다테 전쟁에서는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원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것 보다 이곳에 1600여 그루의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벚꽃이 필 즈음, 전망대에 올라 고료가쿠를 내려다보면 분홍빛 별 모양의 공원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일본에는 어딜가든 스탬프가 많아 빈 공책을 하나씩 들고 다니면 좋다



아침 일찍부터 가려고 일부러 숙소도 가까운 곳으로 잡았다. 무려 뛰어서 3분 거리로. 설레어서 잠을 조금 설치다 눈을 떠보니, 날씨는 화창했고 벚꽃을 보기 참 좋은 날이다 생각했다. 전망대 오픈 전인데도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서두르길래 나도 마음이 급해져 얼른 티켓을 사고 줄을 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3층.... 땡 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공원이 보이는 큰 창으로 다닥다닥 붙었다. 나도 지지 않겠노라, 창 앞자리를 차지하고 카메라를 든 순간, '팍삭'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예쁘게 구워진 마카롱을 뭉갤 때처럼 한껏 부푼 내 가슴이 가라앉는 소리.



포토스폿에선 얼른 찍고 빠져주는 매너가 필요하다



고료가쿠의 벚꽃은 만개해서 분홍빛으로 예쁘게 피어있었다. 심지어 화창하고 날 좋은,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단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공원이 벚꽃으로 채워져서 분홍빛의 별 모양 떡케이크 같은 고료가쿠를 생각했었다. 빈틈없이 가득 찬 풍경. 그런데 공원에 벚꽃나무가 많지 않은 것인지 내가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공원 중간에 있는 나무들도 벚꽃이었으면 더 이뻤을 것을. 꽤나 듬성듬성한 모양에 맥이 풀렸다. 내가 너무 기대가 많았나. 충분히 예쁜 고료가쿠건만 아쉬움이 남았다. 벼르고 벼뤘던 벚꽃놀이가 즐기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전망대를 나와 공원을 걸어보기로 했다. 도쿄보다는 쌀쌀했지만 기분 좋은 햇살이 비치는 5월이었다. 휴일 치고는 꽤 이른 오전 이건만 사람이 많았다. 한쪽에서는 단체가 하나미*를 할 모양인지 준비에 바쁘고 여기저기서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이 보였다. 친구들끼리 와서 즐겁게 셀카를 찍는가 하면 벚꽃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열심히 러닝 하는 여고생들도 있었다. 모두들 여유롭게 서로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나온 이들과 달리 나는 혼자였지만, 활짝 핀 벚꽃과 그것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벚꽃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고, 꺄꺄하고 즐거워하는 여고생들을 보며 흐뭇해졌다. 이어폰을 끼고 열심히 달리시는 아저씨에게는 속으로 힘내라고 응원도 했다. 어느새 다 함께 즐기는 벚꽃놀이가 시작되고 거기에 나도 초대된 듯이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느꼈던 그 실망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역설적이지만, 벚꽃놀이는 사실 벚꽃이 중요한 게 아닌 거 같다. 일 년에 한 번 화려하게 꽃이 피는 짧은 시기에, 그 시간을 누군가와 행복하게 보내는 것에 더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나도 이제까지 벚꽃놀이를 가자고 하면 벚꽃보다 거기서 파는 먹거리라던지, 같이 가서 뭐하고 놀까 라던지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새 잊고 있었나 보다. 고료가쿠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보며 다시 떠올랐다. 나도 내년에는 가족들이랑 벚꽃놀이를 가겠다. 좀 사람이 많더라도, 차가 막히더라도, 오랜만에 함께 가고 싶다.


*하나미(花見) : 꽃(花)을 본다(見)는 의미로, 일본의 벚꽃놀이이다. 보통 일본에서 하나미라고 하면, 벚꽃나무 아래에서 다 같이 모여 돗자리를 펴놓고 바비큐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벚꽃을 감상하는 이미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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