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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Nov 18. 2016

파리의 패션

파리와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본거지이자 패션계의 전설적인 인물들을 숱하게 배출한 나라. 

나도 파리에 오기 전에는 파리지앵, 파리지엔들이 패션위크 스트릿포토처럼 항상 최신 아이템을 장착하고 프렌치시크 간지를 풍기며 사는 줄 알았다.


이들처럼 !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걔네들 다 외국인이다.

서울 패션위크 때 DDP에 모이는 이들을 우리가 평소에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진짜 파리지엔 스타일, 즉 프렌치 시크는 카린 로이펠트나 샤를로트 갱스부르 같은 프랑스 여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데 헝클어진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에 레드립, 그리고 올블랙으로 대표된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얘네 레드립 정말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어느 색이든 너무 튀는 것 같아 립메이크업을 거의 안 했는데, 여기는 너도나도 레드립을 하고 다니니 나도 이십 대 후반이 돼서 느지막이 립메이크업에 재미를 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정말 파리지앵들이 너도나도 시크하게 입고 다니느냐?

아니다.


우선 '프렌치시크' 자체가 모든 파리지앵, 지엔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파리 같은 무시무시한 다문화도시에 백인 패션만 발췌해서 '프렌치시크'라고 이름 붙이니까 사람들이 나같이 그릇된 환상을 가지는 것 아닌가. 패션잡지에서 백인을 제외한 인종의 패션 스타일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본 기억이 없다. 정작 거리에서는 (동네따라 다르지만) 백인 반, 타인종 반인데...

물론 타겟 고객 층이 다르니까 다루지 않는 게 가장 크겠지만, 새삼 놀랍다.


학교와 직장이 있는 8구는 정말 사람들이 화보처럼 최신 아이템을 휘감고 다닌다. 한국의 청담동과 같다. 

물론 윗층의 지방시 사람들은 너무 시대를 앞서는 자들이어서 치마입은 남자들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반면 18, 19구에 가면 나라별 전통의상을 다 구경할 수 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들의 화려한 컬러가 정말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무튼 청담동 패션이 '코리안 시크'가 될 수 없듯, 프랑스도 특정 계층의 패션을 '프렌치시크'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는 조금 억지라고 생각되지만 나도 그에 열광했으니 긴 말은 생략하도록 한다. 



서울 VS 파리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결론은 파리보다 서울이 훨씬 더 스타일리시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패션업계 비종사자인) 파리 시민들의 유행은 서울보다 1년 늦다. 

일례로, 서울에서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초커는 올해 여름부터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소매가 긴 셔츠, 블라우스도 이번 가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올봄 한국에서 사 온 오버사이즈 셔츠가 민망해 괜히 접고 다녔는데 이제야 접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티셔츠 위에 슬립을 겹쳐있는 룩은 파리 현지인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회사 위층에 지방시 본사가 있는데 지방시 사람들(외국인 다수)이 그런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숭하다고 기겁을 했고 자라 여름 세일에도 무더기로 재고가 쌓였었다. 


옷 못 입는 파리지앵?

대중적 유행이 느린 편이긴 하나 내가 느끼기에 이들은 유행을 공식대로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기본 아이템들에 컬러 매치로 포인트를 주는 편이다. 사실 기본 아이템으로 멋 내는 게 패션 공식이긴 하니 고수라고 보면 고수일 테지! 간추리면 환절기엔 가죽재킷/청재킷, 겨울엔 블랙 코트, 첼시 부츠이다. 파리 패션 끝!

그리고 계절별, TPO별 룩이 상당히 정형화되어있다. 낮과 밤의 의복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겠다. 파티엔 무조건 스틸레토 힐이지만 낮에 신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발 아프잖아.  

또한, 이들의 컬러매치는 놀라울 정도인데 재킷과 신발색을 맞추거나 옷의 톤을 맞추는 등 과하지 않게 어울리게 매치를 잘 한다. 아, 물론 정말 과한 사람들을 간혹 마주하기는 한다. 형광 연두색 운동화와 가방 맞춤이라든가, 풀레드 착장이라든가... 

거리의 옷차림은 상대적으로 불안한 치안 때문인지 한국보다 보수적이라고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부분은 바로 스타킹이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커피색, 반투명, 검은색, 살색 이렇게 네 가지만 존재했던 스타킹이 이곳에서는 색별, 소재별, 무늬 별로 너무나도 다양하다! 망사스타킹도 많이들 신고 다닌다! 

파리 엄마도 예순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비즈가 박힌 스타킹을 신고 나온 적이 있어 진지하게 탐낸 적이 있었다. 작년 시즌이어서 손에 넣진 못했지만 지금도 아른거릴 만큼 예쁜 스타킹이었다.


패션에 관해 또 특이한 점은 프랑스에 특히 많은 북아프리카계 프랑스인 (다르게 말하면 아랍인)들이 선호하는 아이템이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즉, 로고가 크게 그려진 명품을 좋아한다. 루이뷔통 힙색, 구찌 캡, 아디다스 저지는 이들을 대표하는 아이템이고 한국에서 대유행했던 캐나다구스도 이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해 캐나다구스에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구찌 캡을 쓰고 루이뷔통 힙색을 매면 파리 북역에서 완전 현지인처럼 보일 것이다. 


결론은 ça dépend.

고로 파리지엔들은 블랙으로만 휘감을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한국사람들보다는 컬러풀한 편이다.  나는 프랑스 와서 구매한 옷이 한벌빼고 모두 검은색일정도로 블랙성애자인데 그게 얘네 보기에도 좀 과해보였나보다. 너무 시커멓게 입고 다니니까 하루는 남자 부장님이 한국 전통 근무 복장은 검은색이냐고 농담조로 물어봤을 정도이다. 그 이후로 그분은 출근할 때마다 나의 옷 색깔로 대화를 시작한다. 유채색만 입고 가도 환호해주신다. 참고로 오늘의 코멘트는 공동묘지 룩이었지만. 

아무래도 럭셔리 업계이다 보니 회사의 사람들은 정말 멋지게 차려입고 다니는 편이다. 이들을 보면 내가 가진 파리지엔의 환상이 충족되고 증폭된다. 호피무늬 재킷에 가죽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여 부장님이라니 너무 멋있지 않은가? 특히 부장님은 회사 제일 멋쟁이여서 늘 감탄할 만한 패션센스를 보여주신다. 특히 기모노 재킷과 레드 재킷 등 20대도 소화하기 어려운 아이템을 사십 대 중반에 떡하니 소화하니 약간 반칙인 것 같기도 하다. 

기승전부장님사랑해요가 돼버렸지만 결론은 파리에는 인종만큼 다양한 패션이 존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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