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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Nov 21. 2016

파리지엔 여상사와 워킹맘

여상사

'여상사'라는 말은 내게 너무나 낯선 단어였다.

    

남성 비율 95%의 방산업계에 종사하며 여상사를 겪어본 적이 없었고, 여상사에 대한 일화는 남한테 들은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히 접할 수 있는 여상사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믿지 않았다. 왜냐면 남자 상사도 똑같으니까. 남자 상사도 질투심 많고 편 가르기 심하고 편애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 많이 봤다. 하지만 여상사들이 더 어렵다는 말은 겪어보지 않아 내심 걱정을 했는데 이곳의 여초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며 그런 걱정을 다 깨트리게 되었다. 


일 년간 현재의 상사를 지켜본 결과, 가히 남자 상사보다 좋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는 업무분장도 명료하고 요구사항을 잘 수용해주며,  잘한 것은 잘했다, 못한 것은 못하였다고 깔끔하게 말해준다. 또 여자라고 다르게 대해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게 가장 좋다. 심지어 파리지엔 아니랄까 봐 스타일리시하기까지 해서 (전편에 소개한 호피무늬 재킷의 주인공) 당연히 미혼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식이 셋이었다. 그녀는 아이 셋의 엄마지만 매일 아침 조깅을 거르지 않고 가장 먼저 출근하며 주말엔 연극배우로 활동한다. 입이 떡 벌어지는 그 스케줄은 프랑스도 그 정도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그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겠지. 나머지 기혼 여상사들도 일당백으로 프로페셔널하여 한국에서 제조업 어르신들이 으레 말하던 ‘여자가 결혼하면 집안일에만 신경 쓰느라 일 안 한다’라는 얼토당토않은 낭설을 보기 좋게 깨 주었다. (한국의 워킹맘에 대한 기형적 이중잣대는 제발 우리 세대에서 바뀌길 바라며...)


물론 전 회사에서 4년간 모셨던 부장님도 모두가 인정하는 보기 드문 좋은 상사였다. 꼼꼼함과 인사이트론 따라갈 자가 없었고 투덜거리시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하셨다. 신입시절에는 친히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제품 교육도 시켜주셨다.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런 특혜를 받은 게 우리가 유일해서 더욱 감사하였다.) 다만 그는 채찍질엔 후하나 칭찬에는 인색한 소위  '표현이  서투른'  아저씨였다. 또 그는 두 딸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여직원들은 그와 별개로 어려워하셔서 4년이 지난 시점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여직원들과 일하기 불편하다고 털어놓으셨다. 보통 어르신 같지 않은 솔직함은 배워야 하는 점이라 생각했지만 때마침 전배를 앞두고 상사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지난 4년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어 서글펐다. 마치 친엄마로 굳게 믿었던 사람이 ‘난 네 엄마가 아니고, 난 네가 싫어’라고 말한 듯한 기분? 남초 회사에서는 내가 애써봤자 모두가 날 다르다 느끼고 차별대우(좋든 나쁘든) 해주는구나...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모여서 일을 하면 다름이 존재하는 게 당연한데 그걸 병리적 현상이라 여기고 결국엔 다루기 편한 남직원을 곁에 두며 안주하려는 태도가 끝내 아쉬웠다. 


또 하나 느낀 차이는 흔한 편견과는 다르게 여상사보다 남상사가 훨씬 더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이건 아마 그러한 편견에 대항하기 위해 더욱 갈고닦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초 신규 쇼 프리미어를 하루 앞둔 시점 모두가 초 예민 상태였는데 남자 직원들은 언성을 높이고 인상을 찌푸리고 심지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반면에 여직원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누구 하나 언성 높이지 않고 일을 마무리해서 성공적으로 프리미어를 마무리하였다. 감정적인 건 개인의 차이이지 성별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까지 겪은 수십 명의 상사들 중 한두 명 빼고는 다들 좋은 기억을 가지고 많은 것들을 배워서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성별은 중요치 않으니 좋은 상사면 됩니다.


워킹맘

여상사를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레 워킹맘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워킹맘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5,000명 중 여직원이 500명도 안 되는 전 직장에서 여성들은 대부분이 미혼이거나 갓 결혼한 젊은 직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도 완벽하고 시댁에도 잘하고 일도 잘해서 고속 승진하여 상무까지 다는 여자는 전설의 유니콘과 같아서 사내강사로 초빙할 정도이다. Work & Life Balance를 주제로 진행된 그녀의 강의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참고할 점은 많았고 그녀 자체도 에너지로 뭉친 대단한 사람이었으나 결국 Politically balanced work & life without herself로 느껴져서 부럽지가 않았다. 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녀는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닌 계열사 광고 디렉터였다. 패-스


한국에서 여성 근로자로서 일하는 것은 결말이 정해진 일처럼 보였다. 아이가 있는 차장급 이상의 여성은 사업부 내에서는 안타깝게도 본 기억이 없으며 동기들 중에서도 대부분이 대리를 달기 이전 결혼을 하였고 출산 후 퇴사가 부지기수였다. (출산 휴가 낸 5명 중 단 한 명만이 복직을 하였다. 모두 20대 후반의 꿈 많고 일 욕심 넘치던 사원들이었다.) 그래서 커리어에 욕심이 있는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비혼주의로 넘어가고 있는데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수십 년 전에 머물러 있어 그들을 괴롭힌다. (그들의 괴롭힘만으로도 책 한 권 쓸 수 있을 듯) 

이런 현상은 수치로도 나타나는데 한국 여성의 1인당 평균 출산율은 1.3명으로 프랑스의 2.1명, 세계 평균치 2.5명에 크게 못 미치는 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은… 그저 웃지요.


반면 프랑스의 여성들은 아이가 있어도 60세가 넘어도 문제없이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직장은 주로 같이 일하는 영업&재무팀 15명 중 13명이 여자인데 그중 6명이 아이가 있다. 출산 후 3개월 만에 복직하고(이건 인종의 차이겠지…) 회사에도 가끔 아이들을 데려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되려 모두가 귀여워한다. 또 파리 엄마도 작년에 은퇴를 하고 지금은 적십자에서 불어 강의를 하는 등 활발히 제2의 삶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프랑스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여성 사회 참여율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내년에 은퇴를 하시는 60대 직원과 이야기해본 결과 그녀의 세대가 현재 나의 세대 같은 상황을 겪었었다. (그때는 프랑스도 주 6일 근무였다고 하니 말 다했지!) 그러다 90년대 급감한 출산율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90년 1.6명에서 '15년 2.1명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그 예산에는 세금혜택, 정부수당, 보육시설 등이 있는데 이 뿐 아니라 결혼제도 개혁으로 사회적 인식도 바꾸었다는 점이 특이점이라 생각한다. 전통적 결혼과 PACS의 비율이 3:2일 정도로 널리 받아들여진 PACS도 출산율 기여에 한몫했는데, 지금 언급한 것들을 한국에서 모두 바꾸려면 프랑스처럼 30년 걸리려나? (동거와 미혼모와 남성육아휴직이라니, 누군가는 뒷목 잡을 소리겠지?)


(사진: 딸을 데리고 유럽의회에 참석해 화제가 되었던 이탈리아 유럽의회의원 Licia Ronzu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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