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나융 Feb 12. 2017

유네스코도 인정한 프랑스 미식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에는 프랑스 음식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나라나 프렌치 퀴진은 고급 요리에 속하며 서울에서도 최소 2-3만 원은 줘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또한 세계 최고 권위의 맛집 가이드인 미슐랭 가이드의 본고장이고 두말하면 입 아픈 프랑스 와인의 산지이니 말 다했다. 


물론 프랑스 요리가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게 된 건 이탈리아에서 시집온 메디치가 왕녀 덕이 큰데 (그래서 이탈리아 애들은 프랑스 요리에 콧방귀를 지금도 끼지만) 그 이후 독자적인 방식으로 섬세한 요리 스타일을 갈고닦으며 지금의 프렌치 퀴진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먹는 것으로 1위 안 하면 서러울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사용하는 재료는 한국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데 어찌하여 프랑스 음식만 이렇게 전 세계적 사랑을 받을까? 

이는 나의 초창기 생각이었다. 일반 브라스리에 가서 스테이크를 시키면 스테이크와 감자튀김만 덜렁 나오고, 생선 스테이크를 시키면 생선과 밥과 샐러드만 덩그러니 나오는 굉장히 재료비를 아낀듯한 조촐한 구성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고급 레스토랑을 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는데 재료가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메뉴를 그렇게 길게 적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플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 미뢰의 섬세함이 부족했던 과오였다. 한국의 경우 재료는 아낌없이 넣지만 재료와 소스 간의 궁합은 그다지 안 따지는 편이어서 대부분의 음식이 고추장 또는 간장으로 버무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의 경우는 재료는 적게 들어갈지언정 각 재료의 맛을 살려 맛의 궁합, 즉 마리아쥬를 살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결과적으로 이 방법이 음식물 쓰레기도 덜 나온다. 식당에서 밥 먹으면 소스가 맛있어서 바게트로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오는 경우가 백이면 백이다.)

물론 미식가의 길은 아직도 멀었고 파리에서는 미슐랭 식당을 가보지도 않았으나, 조금씩 조금씩 미뢰의 섬세함을 키우다 보니 미묘한 소스의 세계에 풍덩 빠지게 되었다. 


이런 이들의 미식 사랑은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어제 수업시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 미식문화가 심지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너네 참 대단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프랑스 ‘음식’이 아니고 프랑스의 ‘미식문화’라는 것. 프랑스 음식의 경우는 사르코지 정부가 등재를 추진하였으나 이탈리아 정부의 강한 반대로 (너네가 등재하면 우리도 등재할 것임!) 무산되었다. 그렇지 원조가 이탈리아인데 아무렴. 


'미식문화'? 

간단히 말해 정해진 코스대로 먹으며 걸맞은 태도로 식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식당에서 간단 코스가 앙트레-메인-디저트로 이루어진다면 미식의 코스는 아페리티프(식전주, 식사 전에 마시는 술)로 시작하여 앙트레(전채요리), 생선 및 육류, 치즈와 디저트로 이루어진 최소 4가지 코스의 음식을 먹으며 리큐어(식후주, 독하고 달큰한 술)로 마무리되는 코스를 말한다. 


유네스코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미식(美食) 문화는 단체나 개인의 일생에서 중요한 순간, 즉 출생·결혼·생일·기념일·성공·재회 등의 순간을 축하하기 위한 사회적 관습이다. 프랑스의 미식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맛있게 먹고 마시는 기회를 가지는 잔치 같은 식사로서, 이런 식사는 단란함과 맛의 즐거움, 인간과 자연 산물의 조화를 강조한다. 중요한 요소로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요리법 레퍼토리 중에서 요리를 신중히 고르기, 어울리는 풍미를 가진 좋은(가급적이면 현지의) 생산물 구입하기,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 고르기, 식탁 아름답게 차리기, 음식을 먹는 동안 식탁에서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는 등의 특별한 행동 등이 포함된다."


이 설명을 듣고 보니 프랑스에서 먹었던 것 중 가장 화려했던 정찬이 생각났다. 무려 4시간 동안 이어진 식사였는데 유네스코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아페리티프로 시작해서 앙트레 2개, 메인, 치즈 카트에서 고른 치즈 몇 조각, 개인 디저트 및 공통 디저트, 식후주, 커피로 끝난 ‘미식’ 끝판왕이었다. 4시간 동안 마주 앉아 끊임없이 먹고 마시며 와인도 품평하며 음식의 마리아쥬도 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말로만 듣던 프랑스의 미식문화를 처음 접했던 그 순간은 사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말이 많던지! 식사시간이 짧으면 10분, 아무리 길어도 한 시간이 안 되는 한국인의 정서엔 너무나 어색했었다. 게다가 음식 자체의 포션은 적었으나 쉼 없이 먹고 마신 터라 과식을 하여 결국 집에 와서 게워냈다는 슬픈 전설이 … 

그런데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유네스코 문화재를 소개하고 다음장에 소화제 사진을 첨부하여 모두가 빵 터진 걸 보니 이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항이었나 보다. 


식문화가 다르다고 또 느낀 적은 회사 사람들과 한식당에 갔을 때 돌솥비빔밥을 시켜서 섞지 않고 야채를 하나하나씩 집어먹으며 재료 각각의 맛을 음미하며 평하는 것을 본 때이다. '버섯이 그릴에 잘 구워져서 풍미가 좋다'라며 버섯을 나에게 권하기도 한 나의 상사. 또 다른 팀원은 불고기의 눌어붙은 소스를 수저로 긁어먹으며 '캬라멜라이즈된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바게트가 있으면 싹싹 긁어먹고 싶다'라고 평하였다. 아아... 그간 비빔밥을 양껏 섞어서 한입에 쓰윽 먹기만 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째서 문화유산? 

단순히 이 문화가 신기하다고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전으로 전해져 소실될 위험이 높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지하고 보호하기 위함에서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하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프랑스의 미식문화가 지정된 게 이해가 된다. 

사실 젊은 사람들은 명절 아니면 저 규칙에 따라서 절대 먹지 않기 때문이다. 식사는 샐러드나 파스타로 때우는 경우가 9할이 넘고 식당에서 코스로 먹어봐야 3코스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대가 바뀌며 미식문화가 설자리를 잃어가기 때문에 문화유산으로 정한 게 아닐까 (숱한 로비도 있었겠지만)라고 추측한다.  

처음에 프랑스의 미식문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서 그렇다면 한국의 휘어지는 상다리로 대표되는 잔칫상 문화도 안되란 법이 없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음식의 서빙방식과 가짓수 외에는 '문화'라고 할만한 특징성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서 생각을 접었다. 우리가 명절 때 떡국먹으며 '12년산 참기름으로 떡국을 만드니 이 떡국이 밤막걸리와 너무 잘어울리네요' 라고는 안하니까.

그런 측면에서 굳이 따지면 제사상 문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주부들의 어깨만 더 무거워질 것이므로 패스.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을 지정하여 보존하는데 세계유산(유형유산)에서 한국의 입지는 좁으나 인류무형문화유산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의 순위는 무려 세계 3위이다. (1위 중국, 2위 일본) 수업시간에 어찌나 콧대가 올라가던지! 프랑스가 미식문화 어쩌고 저쩌고 해도 우리나라보다 개수가 한참 적다. 

작년에 등재된 '해녀문화'를 바탕으로 줄다리기, 농악, 김장, 아리랑, 줄타기, 택견, 판소리, 강강술래 등이 있는데 한국인인 나조차 모르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한산 모시짜기, 매사냥 등도 있다. 


프랑스의 문화재 수업시간에 되려 한국의 문화재를 새로 알게 되어서 기분이 묘했다. 세계에서 지키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인데 정작 나는 모르다니! 

같은 생각을 하셨다면 http://heritage.unesco.or.kr/ich/ich_ko/ 에서 찬찬히 읽어보시기를 :) 




(표지 사진: August Renoir: Le Déjeuner des canotiers, 1881)

매거진의 이전글 라라랜드와 파리신드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