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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Mar 25. 2017

프랑스인에게 가깝고도 먼 중국

프랑스에서 '중국'이란

언어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맞춤법과 잘못된 언어습관에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그중 어릴 때부터 나의 관심을 크게 끈 것은 바로 '다르다'와 '틀리다'의 용례였다. 놀랍게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비중의)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왔는데, 이 잘못된 용례는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때마다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라고 정정해주었지만,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박혀버린 절대 명제 '다르다=틀리다'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언어의 사회성 측면으로 보았을 때 결국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인식이 언어에 녹아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거의 신념처럼 달고 살았는데 막상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에 와보니 여기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물론 애초에 여러 문화가 섞여있어서 한국보다는 그 절대적인 정도가 덜 하나, 그 여러 문화라는 것이 프랑스 주변의 유럽 문화, 혹은 식민지였던 아랍문화 등이 섞인 것이지 결코 먼 극동의 문화가 뒤섞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체감상 느끼는 '다름=틀림'의 정도는 같았다. 


내가 지극히 개인적으로 가졌던 프랑스인에 대한 편견은, 유럽은 어느 곳과도 대부분 가깝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다 여행을 많이 했을 거란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엔 한평생 여행 가본 국가가 채 두 곳을 넘지 않는 이도 있고 유럽, 북아프리카 밖을 안나가본 사람도 상당했다. 아시아를 가본 사람이 회사 전체에서 세, 네 명 정도로 손에 꼽을 정도? 그래서 이들에게도 다른 것이 틀린 것이라는 태도는 똑같이 보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신기한 점은, 프랑스 그 낯선 것에 대한 이질적 느낌을 아예 사전에 등재해 버렸다는 것이다. 


'쉬누아'의 50가지 그림자


간단히 말해 프랑스에서 체감상 가장 먼 곳은 아시아이고, 아시아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것은 중국인데, 그 중국에 대한 감상을 단어에 함축시켜 버린 것이다. 


우선 네이버 한불사전에 chinois ([쉬누아]: 중국인, 중국의)를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는 아래와 같다. 

a. 형용사 

    1. 중국(Chine)의, 중국인[어]의

    2. 중국식 [풍]의

    3. 기묘한, 알기 어려운 (= bizzare, compliqué) 

n. 명사 

    1. (Chinois) 중국 사람 

    2. [옛•구어] 괴상한 사람, 수상한 사람, 까다로운 사람

n.m. 남성 명사 

    1. 중국어 

    2. 중국 식당 (=restaurant chinois) 

    3. [구어] 알 수 없는 말, 횡설수설 

    4. 설탕에 절인 중국산의 작은 귤 


기본 뜻 이외에 기묘한, 괴상한, 이상한, 까다로운, 알 수 없는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추가로 네이버에 없는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의 정의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a. 형용사

    1. 잔인한

    2. 지나치게 꼼꼼한/ 꼬치꼬치 따지는

b. 명사

    1. 그림자 놀이 (ombre chinoise)

    2. 원뿔 모양의 여과기 

    3. 골칫거리 (casse-tête chinois는 나무 조각 짜 맞추기 놀이, 또는 골칫거리라는 뜻이다. )


잘 살펴보면 '다르다=틀리다'가 그대로 적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해할 수 없으므로 고로 괴상하고, 골칫거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 등 을 낮추어 부르는 표현은 존재하지만 그 단어가 확장된 의미로 위와 같이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 발견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중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C'est du chinois!"인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중국어네!'라는 뜻이다. 회사에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화자의 중국에 대한 편견이 가미된 개인적 표현이라 생각했으나 버젓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뜻이어서 꽤나 놀라웠다. 주위 프랑스인들도 이게 사전에 정식 등록되어있는 단어인지는 미처 몰랐다고 한다.

한국도 이에 비슷한 의미로 영어 따위의 말을 낮추어 이르는 '꼬부랑 말'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영어'라고 직접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단어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자 놀이'는 여기서 Ombre chinoise (중국 그림자)라고 불리는데 바꾸어 생각해보면 프렌치프라이, 프렌치토스트 같은 느낌인 듯하다. 


또 Casse-tête chinois라는 단어는 심지어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 (영어로는 Chinese Puzzle로 개봉).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라는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영화의 3부작 마지막 편이다. Casse-tête chinois는 골칫거리라는 뜻인데 과연 영화에선 아주 골치 아픈 상황들이 빈번히 벌어지고, 또 중국인들도 많이 나온다. 1편보다 스무 살은 족히 더 먹었지만 여전히 같은 고민을 가지고 사는 등장인물들은 비록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전혀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굉장히 몰입하며 보았다.  



마지막으로 사전엔 없지만 상당히 자주 '아시아인'을 통칭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그런데 이 용례는 외래문화 수용률이 낮은 집단일수록 더욱 빈번히 보인다. 처음엔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지만 그냥 '중국인'이라 부르는 게 기분 나빴다. 아시아 인도 아니고 중국인이라니, 그건 누가 봐도 틀린 명제니까. 하지만 백날 말해줘도 구분 못하고 나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범주화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내가 알제리인, 모로코인, 튀니지인 구분을 저어어어어언혀 못하는 것처럼 걔네도 그러니까. 물론 사람들은 그들을 아랍인이라고 부르지 싸잡아서 '알제리인'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어찌 됐든 나의 정체성과는 별로 관계없는 두 선택지를 들고 고민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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