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그의 생각만 나서 다른 것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으며,
가까이만 다가가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심지어 꿈에서도 나오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지금 사랑에 빠진 것과 동일한 상태이다.
비록 그 상대가 쥐이지만.
멀고 먼 당신
내 삶에서 쥐는 영화에 나오는 미키마우스나 라따뚜이가 전부였는데 내가 지금 그들과 살고 있다니 꿈만 같다(꿈이었으면 좋겠다)
영화로도 나올 만큼 명성이 자자한 파리의 쥐를 처음 본 것은 재작년 9월 에펠탑에서였다.
한불 문화 수교를 기념하기 위한 에펠탑 점등식을 보러 비 오는 늦은 밤 덜덜 떨며 에펠탑에 갔는데 트로카데로 광장 쪽에서 정말 팔뚝만 한 쥐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
두 번째는 잠시 머물렀던 친구의 집에서 나왔던 생쥐인데 쥐들의 통로가 되어버린 그녀의 집에서 끈끈이에 잡힌 눈이 새빨간 생쥐를 잡은 적이 있었다. 참으로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지만 그게 나의 마지막 쥐일 거라고 참으로 낙천적으로 생각했었다.
다가온 당신
더 밝고 저렴한 집으로 이사한 지 어언 한 달 반이 되어가는 지금, 몇 가지의 잡다한 벌레 (한글로는 양좀이라고 하는 기어 다니는 벌레류) 만 나오는 것을 보고 거미와 지네가 나오던 전의 집보다는 낫다며 흐뭇한 일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고작 한 달 만에 박살 났다.
열흘 전에 처음 발견한 생쥐는 냉장고 밑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며 내가 다가가면 냉장고 밑으로 이내 숨어버리곤 했다. 그날 임시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놓은 쇼핑백에도 기웃거리는 것을 목격하곤 당장 냉장고 주변의 모든 것을 치워버렸다. 냉장고와 침대 사이에는 서랍장이 있었기에 잠은 안심하고 잤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일지도. 첫 발견 이후 나흘이 지나고 냉장고가 그들의 통로라고 확신 한 나는 냉장고와 싱크대를 두꺼운 종이 보드로 막아버렸다. 쥐들이 넘기엔 높은 높이였기에 이제야 안심하고 잘 수 있겠다며 순진하게도 잠을 자려던 그 찰나 소파 머리 쪽을 유유히 기어가는 쥐를 발견해버리고 말았다. 발 헛디디면 내 배위로 떨어질 위치였다. 그렇다. 쥐는 내가 룰루랄라 입구를 막을 때 이미 집안에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파는 내가 잠을 자는 침대형 소파였으므로 더 이상의 수면이 불가능해져서 방 반대편 의자에서 그쪽만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쥐 퇴치 용품이 전혀 없던 나는 그날 밤새 속수무책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다음 날 곡물 형식으로 된 쥐약을 사서 집에 놓고 사흘간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여행기간 동안 쥐들은 영역을 더욱 확장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테이블 위의 과자통(봉지가 아닌 플라스틱 통!)을 뜯어 끼니를 해결하는 대담함마저 보였다. 그리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끈끈이를 사서 집에 놓았고 (잠은 며칠전부터 친구집에서 자는 중) 하룻밤만에 두 마리가 잡혔다. 밝을 때 수금하러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오늘 밤은 몇 마리가 잡히려나.
파리와 쥐
위의 에펠탑 에피소드에서도 말했지만 파리의 쥐 문제는 꽤나 심각하여 정부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
http://www.hankookilbo.com/v/6cb49a3622c844739ac0d9223698cc0f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31/2017033100170.html
기사에 따르면 파리에는 주민보다 많은 쥐가 산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나의 이 애통한 마음을 파리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바퀴벌레보단 낫다며 심드렁하게 답하거나 쥐덫을 놓아 잡으라고 하고 만다. 쥐에게마저 쿨한 파리지앵이다.
서울과 쥐
한국에선 쥐 때문에 고생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만 살았기에 쥐는 거리에서도 본 적이 없었는데, 옥탑방에 산 적이 있는 남자 친구는 쥐를 제법 잡았다고 한다.
파리가 EU 규제 때문에 쥐를 못 잡고 있다면 서울은 70년대 대대적인 쥐잡이로 쥐를 소탕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쥐 관련 키워드로 검색을 해봐도 '시골쥐, 서울쥐 이야기'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요새는 한강둔치에서 다시 출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피크닉 가서 뒤처리는 깔끔하게 하자.
http://www.hankookilbo.com/v/aa043353eb194b44b20fbcf13be0f4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