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의 식단 VS 한국인의 식단
학창 시절과 회사생활을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했던 건 사실 공부도 일도 아니고 '밥'인 것 같다.
점심시간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기다리는 하루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고 점심 메뉴는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한국에선 너무 당연한 현상이어 의문을 가지지 않았으나 최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사'에 두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TV를 점령한 숱한 맛집, 요리 프로그램들이 이를 반증한다. 당연히 살려고 먹는, 또는 먹으려 사는 것인데 어찌 중요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으나, 달리 말하면 한국만큼 매 끼니를 정성 들여 먹는 나라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참 중요한 식사가 이번 비교의 주제이다.
누구랑 먹지?
한국의 회사에선 사내식당이 있어 부서원 전원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그래서 도시락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메뉴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조리사가 짜준 네 가지 식단 중 골라서 먹으면 되었다. 그때는 사내식당의 장점을 미처 몰랐는데 타지에서 자취하며 매끼 도시락을 만드니 그게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 거듭 느낀다.
부서별로 점심 먹는 멤버는 다를 테지만 우리 부서는 부장님이 다 같이 하는 식사에 큰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따로 나가서 동기들과 먹는 것은 일주일에 최대 한번 있을 수 있는 이벤트였다.(그마저도 눈치 보며 나갔지만) 그리고 애주가였던 부장님 덕에 누구보다 잦은 회식을 하였다. 5명 내외의 작은 부서여서 회식 자체가 2,3차까지 가지는 않고 10시 무렵에 끝나긴 하였지만, 저녁마다 거하게 기름진 음식과 술을 쑤셔 넣다 보니 늘어나는 옆구리와 숙취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의 간단한 식사문화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지금 있는 회사가 물론 전 회사처럼 큰 회사가 아닌 스무 명 남짓의 작은 회사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식사시간은 자유롭게 혼자 먹고 싶으면 혼자 먹고 같이 먹고 싶으면 같이 먹는 등 개인의 의사에 따른다. 현재는 주로 젊은 직원들끼리 먹는 편이지만, 상사와도 기꺼이 먹고 혼자 먹기도 한다. 식사시간은 한 시간으로 정해져 있긴 하지만 본인의 업무 진행도에 따라 자리에서 늦은 식사를 하기도 하는 등 굉장히 유연한 편이다. 저녁 회식은 직원의 송별회 때 가끔 하는 간단한 샴페인 및 다과회 (이것도 근무시간 내에 하고 모두가 칼퇴를 한다) 외에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무얼 먹지?
한국의 식단은 프랑스에 비해 오히려 푸짐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프렌치 코스 요리는 현지인들도 특별한 날에 먹는 것일 뿐 매일 그렇게 진수성찬을 차려 먹진 않는다. 비싸서 그렇게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또한 어디에나 식당이 존재하고 세계 최고의 신속한 배달 문화를 자랑하는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는 상권이 없는 곳엔 식당 찾기가 쉽지 않고 대부분 1층에 위치하고 있다. 하물며 야식배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 또한 대부분의 마트가 9시 부근에 닫으며 24시간 편의점도 없다.
파리지앵의 식단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침은 크라상과 에스프레소 또는 요거트로 정말 간단히 때우고,
점심은 겨울을 제외하곤 차가운 음식(샐러드, 샌드위치, 초밥, 냉파스타)을 먹는다. 겨울에는 수프, 키쉬 등을 먹는다. 또한 사내식당이 없다면 도시락을 싸오거나 점심시간에 나가서 간단한 도시락을 구매하는데 그래서 회사 주변엔 대여섯 곳의 샌드위치, 샐러드 프랜차이즈는 늘 붐빈다. 도시락은 파스타, 샐러드, 샌드위치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국물 요리는 수프, 쌀국수 외에는 아직까진 발견하지 못하였다. 국물이 있으면 요리가 덜 끝난 느낌이 든다나.
저녁은 개인별로 다른데 거하게 먹는 이도 간단히 먹는 이도 있다.
현재 다니는 회사에선 매주 금요일 아침 직원 회식을 대신한 직원 아침식사를 하는데, 매주 한 명이 그날의 아침을 준비해 오는 것이다. 아침 메뉴는 주로 다양한 빵, 과일, 오렌지 주스, 요거트이다. 한 번은 한국식 아침을 맛보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꽤나 고민을 했다. 프랑스 인들에게 아침부터 된장국과 쌀밥을 먹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고민하다 파리의 파리바게트에서 비싼 돈을 주고 (일반 빵의 2 배값이었다.) 단팥빵과 소보로를 사 갔는데 파리바게트의 현란한 홍보기사와는 달리 반응이 별로였다. (놀랍게도 프랑스엔 단팥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달짝지근한 콩이라는 개념은 그들에게 너무 낯선 개념이었던 것이다.)
반면, 한국은 다들 알다시피 아침, 점심, 저녁의 구분이 따로 없으며 삼시세끼 밥심이 중요시되는 편이다. 아침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추앙받는 대한민국 아닌가. 특히 어르신들의 국밥에 대한 사랑은 지대하여 여름이면 이열치열이라고 국밥, 겨울이면 춥다고 국밥, 그렇게 일 년 내내, 삼시세끼 국밥을 먹는다. 평균 연령 40대 중반의 우리 팀은 그래서 점심 회식으로 천엽이 가득 들은 선짓국을 먹곤 하였다. 사내식당에서는 건강식단으로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나오긴 하였지만, 단연코 대부분이 밥을 먹는다. 샐러드만 집어 들면 다이어트하냐며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재미도 없는 품평과 핀잔을 한가득 듣기 일쑤였다. 또한 샌드위치는 간식 정도로 치부되었지 그걸 점심으로 먹는 것은 해외파 상사들 외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파스타는 일부 전근대적 사고의 남성들에게 이성과 데이트할 때 먹는 비싸고 기름진 음식 정도로 치부되어 외국에 살다오신 상무님 외에는 어느 상사하고도 같이 먹은 적이 없다.
도시락 외의 외식에 관해 이야기하면 파리에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국적의 식당들이 즐비한데, 개인적으로는 모로코 음식과 베트남 음식을 재발견하여 굉장히 즐겨 먹는 중이다. 아시아 음식으로 대표되는 것은 스시와 중국식 볶음밥과 데리야키 볶음 국수 그리고 쌀국수이며 한식은 최근 들어 인기를 얻는 중이다. (특히 비빔밥은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그들은 모든 한국인이 야채가 풍성한 건강 식단을 매일 먹는 줄 안다.) 또한 파리는 내륙이어서 그런지 정말 고기 문화이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조금 슬픈 환경이지만,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부위별로 즐길 수 있어서 다시 고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해산물은 이들에겐 크리스마스에나 먹는 특별한 요리인데 크리스마스에는 생굴과 삶은 소라, 새우, 게다리 등을 먹는다. 생선을 제외한 해산물은 날것으로는 먹지 않으며 마크에서도 삶은 새우만 판다. (삶지 않은 해산물은 냉동을 구매할 수 있어 다행히 새우장을 담가 먹을 수 있다.) 이들에게 사시미&스시는 연어와 참치로 대표되며 나머지는 고급 일식집에서 비싼 값을 내고 먹어야 한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스프레드가 있어서 요오드 부족을 생선알 스프레드로 달래는 중이다.
이렇게 간단하고 합리적인 (혹자의 입장에선 다소 빈약할 수도 있는) 식사문화를 보며 느낀 건, 파리지앵에게 끼니는 일상생활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한 수단이며 제대로 먹고자 하면 식전주부터 디저트까지 3시간 이상 천천히 즐겨가며 먹는다는 것이다. 매끼 요리를 해야 하는 자취생의 입장에서는 간편한 요리가 통용되는 프랑스식 끼니가 고되지 않고 편리하다. 요리를 원래는 참 좋아했는데 매일 하려니 이제 여가가 아닌 노동이 되어버려서 이젠 웬만하면 스토브 불을 켜지 않는다. 프랑스인의 삶의 여유의 비밀은 어쩌면 요리에 할애할 에너지를 아껴서 개인의 행복에 더욱 몰입할 수 있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아, 그리고 설거지도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