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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채팅에서 실제 데이트로 가기 전>

온라인 데이팅에서 다른 관계 발전의 의미

by 예나

데이팅 앱 프로필을 보면 남자들이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끝없는 채팅만 이어지는 건 싫어해요. 직접 만나는 걸 선호해요.”

당연한 얘기다.


여자들은 좀 다르다.

물론 여자들도 안다.

문자로 할 수 있는 소통에는 대단한 한계가 있고, 지루해지기도 쉽고, 내 매력을 어필하거나 상대 매력을 올바르게 파악하기도 어렵다는 걸.

실제로 만나서 그 사람이 어떻게 웃고, 말하고, 걷고, 움직이고, 먹고 마시는지 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걸.

그러나 다시 말하듯, 여성에게는 온라인이나 앱에서 남성을 만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성들이 느끼는 그 두려움에도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성들이 온라인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에 여성은 더 조심스럽다.

높은 공감 능력과 소통 지능을 원하는 여성들은 까다롭게 남성을 선택한다.

그래서 나도, 10년을 넘게 데이팅 앱을 써왔지만 실제로 만난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대낮에 약속을 잡는다.


데이팅 앱에서 남자들이 또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 이 앱 사실 자주 안 쓰는데/이 앱 불편한데(개소리임), 인스타나 카톡/왓츠앱으로 옮겨서 대화할래?”

진짜 이건 개소리다.

앱을 자주 안 쓰긴 무슨. ㅎ 그리고 데이팅 앱 진짜 편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ㅎ

이 말의 진의는 내가 보기에 이렇다.

‘나 가짜 프로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네가 진짜 인간인지 일단 확인해야겠고, 여기서만 대화하다가는 며칠 내로 분명 너는 나를 까먹고 흐지부지 될 테니, 연락 유지를 위해 내가 조금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앱으로 넘어가자.’


처음에는 나를 의심하는 게 불편하고 짜증이 났는데, 남성들이 가짜 프로필이나 스캐머들 때문에 겪는 고초를 듣다 보니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앱으로 넘어가는 것 자체는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나에게는 많지 않다.

저런 질문을 하면, 그러고 싶을 만큼 상대방이 마음에 드는지 일단 내 마음을 점검한다.

왜냐하면 데이팅 앱에서(내가 보기에) 다른 앱으로 넘어가는 것은 그 행위 자체가 ‘관계 발전’이기 때문이다.

프로필이 마음에 들어서 오른쪽으로 스와이프 했더라도, 대화를 하다 보면 그 관계 발전을 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내 번호나 인스타그램 주소를 알려줄 이유는 1도 없다.


나는 먼저 그걸 부탁하지 않는다.

항상 남성이 먼저 다른 앱으로 옮겨가자고 한다.

이는 다시 위의 여성이 경험할 수 있는 위험과 관련되어 있다.

그냥, 여성은 무조건 데이팅 상황에서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하면 이해가 쉽다.


하지만 필립은 나에게 인스타나 번호, 카톡, 왓츠앱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또, 한 번도 나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거나, 목소리를 들려달라거나, 영상 통화를 하자고 재촉하지 않았다.

이런 부탁도 스캐머/가짜 프로필 제거용으로 남성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나도 데이팅 앱을 쓰며 많은 남자들에게 들어본 말이다.

필립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필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다른 앱으로 넘어가는 ‘관계 발전’을 하고 나서도 연락이 끊기면 나에게는 그걸로 이 사람과의 가능성이 끝이 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른 앱으로 넘어가는 단계를 남겨놓으면, 대화가 언제 끝나더라도 서로 언매치(매칭을 취소해서 내 앱에 그 사람의 프로필 기록을 없애는 것)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를 제안하는 것으로 감정에 다시 불 붙이기가 쉬울 것 같은 느낌이다.

뭔가…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다른 앱으로 넘어가서 흐지부지 되면 나는 아예 그 사람의 존재를 까먹고 있다가 한참 뒤 “아 이런 애가 있었지”하고 그냥 차단 엔딩을 맞이할 것 같은데, 필립과 그렇게 마무리하기엔 아쉬워서 그랬다.

프로필과 사진이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고, 매칭 뒤 대화가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뜻이고, 그만큼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나는 프로필도 마음에 들고, 대화도 마음에 들었다면 먼저 만나자는 말을 어렵지 않게 먼저 하는 편이다.

즉,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걸 굳이 남자가 먼저 하길 기다리지는 않는다.

물론 상대방이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고, 내가 마음에 든다면 오케이 하는 것이지만, 내가 마음에 드는데 상대방이 아직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바로 내가 먼저 이번 주말에 시간 되는지 물어본다.

나는 데이트나 연애에 있어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데 아주 적극적이고 소심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필립의 프로필과 대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데도 만나자고 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여기서부터 운명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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