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런 것 같다.
육체적인 교류도 건강한 관계에선 중요하고, 서로에게 변함없이 끌린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오랜 관계가 행복하게 지속되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남성들은 감정적 교류보다 그것을 더 좋아하거나 더 필요로 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우리는 남성들을 감정적 교류보다 육체적 교류를 훨씬 더 우선시하는 괴물로 생각하는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남성호르몬에 대한 이런 오명은 페미니스트로서 용납할 수 없다.
남성은 고쳐질 수 없는 욕망의 노예가 아니다.
그것이 내가 화학적 거세에 반대하는 이유다.
그 조치가 꼭 필요한 경우가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겠으나 그걸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이 끔찍한 사회적 질병에 대한 위험한 진단 오류가 생긴다.
남성들의 성범죄는 남성, 남성성, 남성호르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대로 된 교육 부재의 문제다.
그것들을 악마화하지 말아야 한다.
이 영상의 베스트 댓글은 대부분 남성들의 "그 정도는 아니다. 오버 좀 하지 말아라. 우리를 괴물로 만들지 말라"는 댓글들이었다.
이야기가 샜는데, 이 글에 영감을 준 일이 엊그제 있었다.
요즘 필립 이야기를 안 쓴 이유는, 특별히 쓸 말이 없어서였다.
이전과 같이, 이전보다 조금 더 자주 우리는 연락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서로를 생각하며, 나는 체코로 돌아가기 위해,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주어질 휴가 여행을 편한 마음으로 즐기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둘 다 바쁘지만 잊지 않고 서로를 챙기고 있고, 특별히 새로운 일이 없어서 쓸 글이 없었다.
엊그제 폰 용량이 부족해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나의 어릴 적 사진들을 발견했다.
오래 들여다보지 않아서 숨김 처리 된 앨범에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꼬마 내가 좀 귀엽길래 내 어릴 적 사진 다섯 장을 필립에게 보냈다.
나는 평소에 필립만큼 사진이나 영상을 자주 보내는 편이 아니다.
특별히 보낼 게 없어서 안 보내는 것이다.
필립은 밖에 나가거나 재밌는 일을 하면 사진이나 영상을 꼭 찍는 사람이고, 그걸 나에게 자주 보내는데, 나는 그러지 않는다.
나는 음식 사진도 잘 안 찍는 편이다. 누가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해 준 음식이 아니라면.
내가 이따금씩 보내는 사진은 필립이 특히 좋아했던 몸에 딱 붙는 바디콘 드레스를 입은 날 거울 앞에서 찍은 사진,
아니면 우리의 4월이 생각나는 재미있는 19금 밈 같은 것들이다.
필립이 사진이나 영상을 주르륵 보내면 미안해서 가끔 셀카를 찍어 보거나, 내 바로 앞에 있는 상황을 찍긴 하는데, 워낙 집 밖을 안 나가고 일만 하는 편이라 찍어놓고도 진짜 지루한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잘 안 보낸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발견한 사진이라 별 특별한 마음 없이 "이것 좀 봐라"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을 필립이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필립은 그날 퇴근을 하자마자 나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내 어릴 적 사진들을 보고 또 봤다고 했다.
전화도 먼저 잘 안 하는 사람인데 영상통화를 해서 놀랐다. 그 사진들이 그렇게 좋았을까.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면서 전화를 안 끊길래 내가 먼저 이제 일하라고, 그래야 제시간에 잘 수 있지 않겠냐고 하고 끊었다.
필립이 스스로 한 얘기가 있어서 나는 그를 여자 좋아하고 많은 사람 다양하게 만나길 좋아하는 날라리(?) 같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와 있을 때도 한순간도 나에게 손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롱디를 못 한다고 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내가 '괜찮다'는 말로 그의 마음속 깊이 존재하던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잠재워줬을 때, 그 말을 하던 내 눈을 보며 나에게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을 듣고도 나는 그에 대한 이 이미지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나에게는 육체적 연결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만 나는 기억하고선 그 연결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진만 보냈던 것 같다.
위에 쓴 글이 무색하게 나도 그런 실수를 했다.
11월쯤에 쉴 수 있을 것 같다길래, 뭐..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으로 오면 좋을 것 같다고 애교를 부렸다. ㅎㅎ
"내 친구들이 너를 너무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왜 자길 보고 싶어 하냐고 묻길래, 우리 사이의 일들을 다 말해서 궁금해한다고 말해줬다.
그는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많이 궁금해했다.
통화를 끝내고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말을 걸었다.
나는 말로 하는 표현을 잘하고 좋아해서, "네가 좋다, 잘생겼다, 넌 나에게 특별하다."라는 말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는 특별히 말로 감정적 교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겐 행동이 중요하다. 그런데 몸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이 그에게 감정적 교류가 되는지 나는 몰랐다.
별로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의 행동을 보고 나도 노력해 보면 되는 것이다.
일상 사진을 보내고, 한 주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 나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
그는 왜 나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냐고 속상해한 적이 있었다.
묻지 않아서 얘기를 안 했을 뿐인데..
그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 나의 가족사진을 그의 어머님께 보여드렸다.
그때 그는 어떻게 지금까지 자신에게 한 번도 안 보여 준 걸 자기 엄마한테는 만난 지 10분 만에 그렇게 보여주냐며 투덜거렸었다.
나는 내 생일도 잘 안 챙기는데, 그는 주변 모든 사람들의 생일에 직접 케이크와 선물을 만들어 간다.
내가 눈치가 많이 없었다.
이런 부분에선 내가 너무 무던하고 둔하다.
내 평소 성격과 너무 달라 좀 걱정되지만,
그런 부분을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