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에 영어 옷 입히기

내가 같은 사람이면 내가 쓰는 한국어와 영어가 다르지 않아야 한다.

by 예나


“딱 누나 수준에 맞게 해 놨어.”


동생이 넷플릭스를 구독하며 내 채널을 하나 만들어줬는데, 그걸 키즈 채널로 해놓았다. 나는 사랑하는 동생에게 간단한 욕을 던지고 바로 키즈락을 풀었다. 그렇지만 얘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지금 내 넷플릭스 채널 마이 리스트의 70%는 애니메이션이다. 유튜브에서 나는 보통 아이들이 애정 하는 NASA, National Geographic, PBS Space Time과 Disney, Pixar, Doctor Puppet, Kirstenlepore, Shrigleyfilms 등 애니메이션 채널들과 다양한 Kids crafts채널을 구독 중이고 내 계정으로 들어가면 “5 Big Disney Princesses Family Secrets”같은 영상이 추천 영상에 뜬다.


반면 요리를 좋아하는 내 동생은 유튜브에서 “칼이 갈리는 원리”, “생선회 뜨는 법”, “인도에서 굶주린 이들에게 대량으로 음식 해먹이는 할머니”를 찾아보고 있다. 십수 년을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나와 너무도 다른 동생 유튜브 계정 화면에서 봤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언어를 써도 내 경험과 과거가 담긴다.


동생과 색깔에 대한 대화를 하다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동생이 “muted(쨍하지 않은, 밝지 않은)”라는 단어를 생소해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특별한 단어도 아니고 대학에서 그림 그릴 때 매일 쓰는 단어였다. 동생에게 “muted”는 소리가 작거나 없는 상태를 뜻할 뿐인데 색을 이야기할 때 그 단어를 쓰는 나를 이상하게 봤다. 미술 용어로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는 내 말에 “그렇군.” 하면서 나가는 동생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뭔가 당연한 상태였다. 동생은 영어로 미술을 배운 적도 없고 미국에서 그런 대화를 하는 친구들과 사귄 적도 없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인터넷에서 미리 사귀어놓은 유럽 전역의 친구들과의 인맥만 가지고 숙소비 걱정 없이 유럽을 여행하던 아이다. 이 이상한 아이는 유럽 나라를 가면 작은 펍에 들어가 그 나라 사람들에게 그 나라의 선거법을 물어본다고 했다. 엘 고어가 지고, 클린턴이 진 미국 대선을 목격하며 대선이 이렇게 허술할 수 도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 동생이 다른 나라들의 대선 방법이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먼저 꺼내지 않을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과학, 철학, 종교, 예술, 교육 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튜브나 TED를 볼 때도 그런 영상만 검색해서 본다. 동생은 정치, 인권, 요리, 성교육, 소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고 많이 하는 것 같다.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로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내가 주로 말을 하지만 요리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할 때면 나는 동생의 말을 듣는다. 같은 언어 안에 나와 동생은 각자 다른 세계를 담았다.






어차피 쓰는 단어만 쓸 거면 왜 단어책 첫 장부터 외우는지?


이전 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문화와 철학이 배어있다. 그런데 언어에는 그뿐 아니라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내가 쓰는 언어와 내 친구가 쓰는 언어가 같은 한국어라도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다는 것이다. 언어에는 거대하고 보편적인 사회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세계관이 묻어난다. 당연한 말이다. 똑같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인데도 정말 대화가 어렵고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 말을 천천히 하는 사람도 있고 빨리 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정치 이야기라면 불편해서 바로 일어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내가 배울 언어권 사람들은 식사 후 두세 시간 동안 차를 마시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철학적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고 어디서 들었다 해도 내가 그럴 필요는 없다. 그 나라 가서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 것이 아니면 그냥 나는 내가 평소에 하는 말들과 하고 싶은 말 위주로 배우면 된다.


나는 지금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내가 하는 것은 “매일 듣기”, “좋아하는 노래 찾아서 외우기”, 그리고 “나만의 레퍼토리 늘리기”이다. 넷플릭스의 언어 설정을 프랑스어 혹은 스페인어로 해놓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해당 언어 더빙으로 본다. 취미로 하는 것이라 급할 필요는 없다. 그 나라에 가서 살거나 공부할 계획도 없고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와 한국어 말고 다른 나라 말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글은 나와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방법들 중 마지막 레퍼토리 늘리기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투에 내 생각이 담기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어로 평소에 자주 하는 말과 좋아하는 주제에 대한 짧은 대본을 준비하고 그걸 내가 배우고자 하는 언어로 자연스럽게 바꾼 다음 연습하는 방법이다.


단어를 외울 때에도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내 평소 한국어 대화 습관을 관찰한 다음(녹음을 해보는 것도 좋다.) 그 안에서 영어로 뭔지 잘 모르겠는 단어들만 찾아서 외우는 것이다. 단어 외우기는 하루 한두 개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외우는 단어라면 평소 사용하는 말이고 생각하는 것이니 하루 스무 개를 외워도 금방 할 수 있다. 특정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단어장을 사서 첫 장의 첫 단어부터 차근차근 외우는 일은 언어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배우고자 하는 언어로 내 레퍼토리 만드는 방법


레퍼토리를 만들려면 일단 “내 말투 찾기”“적기”부터 한다. “내 말투 찾기”에서 내 말투는 평소에 알고 있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언어 배울 때 욕부터 배운다지만 평소에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이면 욕을 굳이 배우지 않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평소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이면 영어 할 때 갑자기 점잖아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말투면 그냥 재미있는 욕부터 외우면 된다. 위에 적은 것처럼 친구와 대화할 때 녹음을 해서 들어보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고 내 말의 습관이나 레퍼토리를 한국어 버전으로 먼저 정리한다. 그리고 미국 대학 다닐 때 내가 하루 동안 쓰는 말을 녹음해서 들어보며 내 생각과 말투를 비판적,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하는 김에 마음에 안 드는 언어 습관이 있다면 그걸 고쳐볼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에선 중요한 부분이 아니므로 넘어간다.


그리고 “적기”. 내가 평소에 하는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서 노트에 적어보자. 길이가 길 필요는 없고 내가 외울 수 있는 만큼, 한 번에 A4용지 반 이하의 분량에서 시작한다. <나의 소개>부터 <이번 대선에서 기호 0번을 뽑고자 하는 이유>에 이르기까지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라면 적는다. 한국어로, 그리고 내 말투로 적는다. 글투와 말투가 다르다면 말하는 걸 먼저 녹음한 후 옮겨 적어도 된다. 여러 가지 “키워드”가 존재하는 나만의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도 좋다. 나의 평소 생각을 정리해도 좋고, 지난주에 있었던 황당한 일도 좋다. 여기서 키워드라는 건 물론 이야기 주제나 글 안에서 눈에 띄는 해시태그 같은 것을 말한다. 심장 같던 나의 첫 고양이 수니는 5년 전 내 생일에 죽었다. 상실감에 몇 달 쓰러져 있다가 밖에 나오니 여기저기서 틈나는 대로 수니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졌다. 이 이야기를 영어 레퍼토리로 적어서 외워놓으면 누가 “상실”, “고양이”, “생일”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꺼내서 말하기 연습을 할 수 있다. #상실 #고양이 #생일 #우울 이런 해시태그들이 존재하는 나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노트에 적는다. 문장은 간결하게 적는다. 문장이 복잡하고 길어지면 다음 단계에서 내 말투가 줄어들고 딱딱한 번역투로 마무리된다. 내가 평소 복잡하게 길게 말하는 스타일이라도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가장 간단명료한 문장을 찾아서 정리해서 적는다.


이렇게 적은 글을 구글 번역기 등 사용하는 번역기 앱을 이용해서 배우고 싶은 나라의 말로 바꾼다. 그래서 바꾼 말들 대충 훑어본다. 그럴듯하게 나온 것 같다면 다음 단계는 “말투 고치기”이다. 지금 수업을 받고 있다면 선생님에게 부탁해도 되고, 그 나라의 언어를 모국어로 삼는 친구를 <헬로톡>과 같은 앱에서 한 명 구할 수도 있다. 오래 사귈 필요도 없고 소울메이트를 찾을 필요도 없다. 말투만 봐주면 되니 겁먹지 말고 가볍게 생각한다. 채팅을 시작하면 인사를 하고, 내가 너희 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번역기를 썼는데, 이걸 읽어보고 편한 말투로 바꿔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면 된다.(너무 개인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한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 상대방에게 갑자기 툭 던지는 것도 실례니까, 예의는 지키자.) <헬로톡> 앱의 특성상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과 매칭이 되기 때문에 나도 한국어를 언제든 가르쳐주고 도와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부탁하기 쉽다. 그렇게 몇 명에게 부탁해서 몇 가지 버전을 가지고 나면 그걸 노트에 다시 옮겨 적는다.


단어 공부는 이렇게 만든 글 안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 외우면 된다. 어차피 내가 말할 때 쓸 단어는 이런 레퍼토리를 쌓아둔 이 노트 속 이 단어들이기 때문에 당장 영어로 정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congress”, “republican”, “democratic”같은 단어들이 안 외워져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전문적으로 보일 필요는 없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그런 욕심이 없지 않은가. 영어 대화 중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도 그 주제에 흥미가 있으면 배우는 자세로 질문하며 들으면 되고, 관심 없으면 대화에서 잘 빠져나가면 된다. 그 언어로 이 얘기 저 얘기 다 멋지게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게 아니면 나만의 이야기들이 담긴 레퍼토리를 하나씩 늘려나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새 언어를 배울 때 이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






특별한 나의 영어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인 학생과 영어로 <밸런스 게임(Would you rather Q and A)>을 하던 중 있었던 일이다. 한 질문에서 그 아이가 <후회 많은 100년의 삶>보다 <후회 없는 20년의 삶>을 택했다. 상상이긴 하지만 30대 중반에 죽겠다고 결정한 아이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아이는 “Because with regret, time is slow. So with regret, 100 years is too long.”라고 답했다. 틀린 문법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쳐주긴 했지만) 내가 볼 땐 이 답변은 아이의 가치관이 묻어 나온 아주 아주 아-주 좋은 영어 문장이다. 자기 생각을 간결하고 완벽하게 영어로 표현해냈다. 이런 문장을 들으면 나는 울컥할 정도의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질문을 어른들에게 해보면 이만큼 좋은 답변이 나오기 쉽지 않다. 어른들도 한국어로 쉽게 정리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부족한 영어로 아이가 이렇게 순식간에 표현해내다니! 후회가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한다는 걸 아이가 어떻게 아는 건지 생각해보면 살짝 슬퍼지기도 하지만, 놀랍다. 이 아이가 모든 질문에 대답을 잘하는 건 아니다. 말문이 막히거나 질문을 패스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평소 생각해온 것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언어이지만 이런 좋은 대화를 영어로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쌓인 '나만의 영어'는 특별하다. 내가 쓰는 영어가 나의 언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맞고 틀리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영어를 무시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나의 영어에는 그 언어권 나라의 문화뿐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모국어로 소중히 쌓아온 내 세상과 경험과 세계관이 묻어있다. 이렇게 언어를 배우고 이해해나가면 그 언어가 친밀하고 소중해진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잘 계획해서 만든 레퍼토리는 내 생각이 담긴 잘 쓴 글과 같다. 내 노트에 적은 수니 글도 옷만 프랑스어로 갈아입었을 뿐 한국어로 말할 때와 똑같은 그리움이 담겨 있다. 어떤 언어로 말해도 나는 나의 말을 하고 있다.


언어는 살아있다고들 한다. 인간이 쓰는데 쓰는 인간이 살아있고 언어를 쓰는 사회가 살아있으니 언어도 살아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인간이 사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 형성되고 역사에 반응하고 미래에 적응하며 진화하고 바뀐다. 동식물계에 종, 속, 과, 목 등 분류 체계가 있는 것처럼 언어계에도 분류 체계가 있어 보인다. 한 개인의 수많은 선택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나”는 아마 그중 가장 작은 단위 구분에 해당할 것이다. 새로운 언어계를 접하는데 나의 인생을 쏙 빼고 그 언어가 본래 가진 문화와 특성만 받아들인다면 평생 이질감이 들 수밖에 없다. 본래 그 언어에 없는 표현이라도 내 언어로 자주 쓰던 말이면 그냥 내 식대로 한번 만들어서 써보자.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RM의 “You got no jams.”처럼. (https://youtu.be/QAvBhXzytnU :Can you guess these Konglish words?)


모두가 해야 하는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걷어내고 나만의 영어를 시작했으면 한다.




keyword
이전 06화영어를 잘하려면 (제발,) 한국어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