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하려면 (제발,) 한국어부터

한국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영어도 잘한다.

by 예나

아이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키겠다며 집에서 한국어를 금지하는 방법을 선택한 부모들이 간혹 보인다. 하지만 이 방법은 내가 크게 반대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감히 확신하자면 이는 두 가지를 다 놓치는 확실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언어 세계관이 생기는 유아, 청소년 시기 동안 살아갈 곳이 한국이라면 올바른 한국어 기둥 없이는 절대 영어를 잘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영어도 빨리 배운다.

영어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은 한국어로도 자신의 생각을 출력해내는 일이 자연스럽다. 이는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하는 한국어 이상의 의미를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단어와 문법으로 간단명료하게 이야기해내는 능력은 언어적 재능이지 한국어를 배운다고 다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단지 뽐내기 위한 어려운 단어를 문장에 집어넣는다고 대화의 질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영어로 쉼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꺼내는 말이 다 들을만한 말인 것은 더욱 아니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도 어떤 간단한 질문을 했을 때 정확한 답을 말하지 못하고 주변을 겉돌거나, 5분 동안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4분 30초는 아무 의미 없이 언뜻 유창해 보이기만 하는 잡음을 섞어내는 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는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잘 흉내 내는 것으로 언어적 능력이 뛰어난 아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은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도 흔히 보인다. 어쨌든, 이런 아이들이 가장 부족한 것은 보통 두 가지이다. 자신의 생각을 실제로 발화해볼 기회의 부족과 독서 부족이다. 여기서 발화란 당연히 한국어를 통한 발화이며 독서란 당연히 한글로 된 책을 말한다.


언어는 창의력이다.

10개의 기본 영어 동사만 가지고도 언어적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50개의 다른 주제에 대해 200개의 문장을 순식간에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경우라면 같은 단어로 10 문장을 겨우 해낼 수 있다면 그날은 그 아이에게 영어가 잘 되는 운이 좋은 날인 것이다. 언어적 사고 훈련이 충분히 된 아이들은 같은 단어로 훨씬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반면 그런 훈련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go'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다'로 밖에 표현할 수 없게 된다. 한국어 기둥이 단단한 아이들, 즉 책도 많이 읽고, 집에서 부모님과 많은 주제에 대한 대화를 하며 다양한 표현을 듣고 말하는 연습이 익숙한 아이들은 언어적 이해가 깊기 때문에 'go'라는 단어에 대한 입체적이고 추상적인 인식이 가능하다. 시간의 흐름을 설명할 때도, 내 몸의 상처를 표현할 때도, 어제 한 게임 레벨업을 설명할 때도, 작년 파가 금파여서 파테크가 유행이었다는 걸 설명할 때도 'go'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유학 시절 내가 만난 이민 2, 3세 한국 아이들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꽤 좋은 한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는 했다. 왜 미국에서 자라는 2세들의 부모는 아이의 한국어 교육에 집중하는 것일까? 외국에 사는 이민자로서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애국심인 걸까?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한국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영어 하나만 하는 것보다 영어 한국어 두 개를 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라는 결론인 걸까? 그들이 아이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하는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부모님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아이가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가 자신의 모국어와 불일치하여 겪는 근심이나 설움은 대부분의 이민자 부모가 겪는 일일 것이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이민자 부모들은 자신의 언어와 자식의 언어를 일치시키는 것으로 관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할 것이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내 가치관과 세계관을 보여주고 나와 주변 사람들, 나와 사회의 관계의 모양새를 결정한다. 한국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하거나 권장하는 부모들을 보면 왜 아이들과 자신들 사이에 생소한 언어의 벽을 세우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 부모들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언어로 대화하며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교감의 기회를 왜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뻥 차 버리는 것일까? 물론 부모님의 모국어가 영어인 경우는 제외한 것이지만 부모 둘 중 하나라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영어보다 훨씬 먼저 한국어를 바르게 배워야 한다고 확신한다.


영어가 힘이 아니라 탄탄한 한국어가 진짜 힘이다.

한국어를 습득하며 배우는 것은 한국어로 쓰고, 말하고, 듣고, 읽는 것뿐 아니라 한국의 수천 년의 역사가 집적된 한국 철학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절대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한국어는 영어보다 특별하고 정교한 언어다. 세계 공통 언어가 되어버린 영어는 언어의 대중성을 위해 언어가 가질 수 있는 특수성과 섬세함을 내어주고 그 값을 치렀다. 이는 영어에게 있어서 슬픈 일이 아니라 언어의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어떤 언어라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사용하기 위해선 배움에서 까다로움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본래 가지고 있던 세세한 문화적 특성을 지우는 것이 용이하다. 반면 한국어는 그런 섬세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언어이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당연히 한국어를 입체적이고 창의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영어를 어렵지 않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할 때에는 자신만의 영어 표현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문화에게 그 단어/문장과 사용법, 의미를 설득해내기도 한다. 영어는 한국어 위에 있는 언어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만의 음식 이름이나 문화를 영어로 굳이 해석해서 설명하지 않고 'Kimchi(김치)', 'Bibimbap(비빔밥)', 'Mukbang(먹방)', 'Taekwondo(태권도)'로 사용하는 것이 옳고, BTS의 RM이 만들어낸 "You got no jams."이라는 표현도 틀린 영어가 아닌 이유다. "You got no jams."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 번도 '재미없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던 문장이지만 정말 재치 넘치고 아주 훌륭한 영어 표현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DlSqljhHD0 (1:50 "Jimin, you got no jams.")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은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영어책과 영어 말하기를 강요하지 않고 많은 한국어 책을 읽어주고 한국어로 다양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아이들의 질문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응답해줘야 한다. 영어 단어를 모른다고 혼내지 않아야 하고 한국어 교육, 한글 교육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듣고, 인식하고, 이해하고, 동의하고, 반박하는 일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다음을 확신한다.; 그런 아이들은 영어를 시작하는 시기가 평균보다 늦더라도 한국어 기둥이 탄탄하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질 높은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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